보살의 길은 험난한가

2013. 11. 28. 18:2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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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

 

보살의 길은 험난한가

 

 불자는 자신이 불성의 실현자이며 삼보의 가호를 받는 자임을 믿는 자이다. 그는 줄기찬 행으로 불성 본분을 실현해 간다. 그래서 불자는 성불의 길을 가는 자라고 하고 또는 불국정토를 이루는 역군이라 한다. 불자는 꿋꿋한 신념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살아가며 이 땅에 빛이 되고 역사의 개척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자의 영광스러운 앞길에 영광과 고난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곧잘 예상한다. 세속사회에 순응하기보다 거슬리는 삶이기에 불자의 길은 어렵다고 한다. 드높은 이상을 세간에 실현하는 것은 어려움의 길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리고서 보살의 길을 어려움의 길, 고난의 길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보살의 앞길이 과연 고난의 길일까. 살펴볼 일이다.

 보살이 행하는 길, 반야바라밀의 진실에 고난과 장애가 있는 것일까. 원래로 반야 진실 앞에는 일체 무장애다. 청정 원만이 원모습이 아닌가. 그렇다면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진실의 길을 가고 있을진대 어디메에 고와 재난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께서도 명백하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이 가는 길에 일체 장애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계시지 않는가.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반야바라밀을 수지, 독송하고 실바야심을 여의지 않으면 군사가 싸우는 군진중을 가더라도 목숨을 잃거나 다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선남자 선여인은 바라밀을 행하여 탐진치사견의 칼이나 화살을 없앴기 때문이다.

 또한 반야바라밀을 수지, 독송하고 실바야심을 여의지 않으면 설사 독약을 만나거나 불구덩이나 물에 빠지거나 칼로 죽이려 하여도 이 사람은 다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대명주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대명주를 배우면 스스로도 괴로움이 없고, 남도 괴롭게 하지 않아 둘이 다 편안 하리라….]

<마하반야바라밀경 대명품>

 

 참으로 명백한 선언이시며 확고한 증언이시다. 불보살의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바르게 기억하고, 잊지 않으며, 흔들림없이 행하는 곳에 일체 장애는 본래무(本來無)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 행자에게는 삼독 사견의 뿌리가 없으므로 군진 중에서도 위험이 없다 하셨으니, 부처님 법을 바로 믿고 행하는 일점이 요긴한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바로 믿고 배워서 실천하는 이 한 점에 보살의 무장애는 실현되는 것이다.

 

 불자는 모두가 성불을 지향하고 정불국토의 구현을 기약한다. 그리고서 수많은 수행. 난행을 불구하고 정진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일체 육체적. 물질적. 감정적. 장애는 본래 무()이며, 부처님의 원만 구족한 대자재 광명 뿐인 반야바라밀 법문에 대해서는 등한히 하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보살의 길은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 말이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모름지기 반야바라밀 법문을 배워 보살의 무장애를 증거하고 정불국토 구현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바라밀 보살에는 고난이 없고 장애가 없고, 일체 성취뿐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유념할 것은 부처님 말씀에 반야바라밀은 대명주이며, 무상 대명주라 하신 점이다. 대명주란, 원래는 법문을 몸에 표현한 것을 의미한다. 반야바라밀의 법문을 입으로 외우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반야바라밀 법문을 몸으로 표현하여야 명주의 위덕을 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보살도를 닦되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배워 정견(正見)을 가져야 하겠으며, 또한 반야바라밀 법문을 행동으로 표현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자의 길, 보살의 길은 다시없는 영광의 길, 수승한 길이다. 스스로 빛나고 세간을 빛내며, 역사와 시대를 빛내는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고난의 길은 아니다. 일체 장애가 끊인 바라밀의 위신력을 행하는 길이다. 우리 모두 보살의 길에 매진하자. 그리고 고행의 길이라는 생각들을 털어버리자. 그래서 여래광명 실현자로서 위대한 불자, 평화 진실을 구현한 영광 국토의 구현자로서의 긍지를 새로이 하자.

 

<86>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316 – p319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삶의 지혜가 묻어 나는 글
사람들은 '그때' 라고 지나버린 후회스런 말을 자주 한다
그때 참았더라면, 그때 잘했더라면,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조심했더라면,
훗날에 지금이 바로 그때가 될텐데 지금은 아무렇게나 보내면서,
어리석게도 오늘도 자꾸 그때만을  찾고 있다.

게으른 사람에겐 돈이 따르지 않고,
변명하는 사람에겐 발전이 따르지 않는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겐 희망이 따르지 않고,
간사한 사람에겐 친구가 따르지 않는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에겐 사랑이 따르지 않고,
비교하는 사람에겐 만족이 따르지 않는 법이다.

빈 깡통은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않고,
속이 가득차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가 나는 깡통은 속에 무엇이 조금 들어 있을 때다.
사람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나,
많이 아는 사람은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무엇을 조금 아는 사람이 항상 시끄럽게 말을 많이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면 꽃처럼 살면되고,
세상을 편안하게 살려면 바람처럼 살아라.
꽃이란 자신을 자랑하지도 남을 미워하지도 않으며,
바람은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험한 산도 아무 생각없이 쉽게 오른다.

고민이란 놈은 가만히 보면 파리를 닮았다.
게으른 사람 콧등에는 올라 앉아도,
부지런한 사람 옆에는 얼씬도 못한다.
파리채를 들고 한놈을 때려 잡으니,
게으른 사람 콧등에는 또 다른 놈이 날아오네.

고집이란 놈은 제 멋대로 하려고 하는  
버릇없는 놈이고 힘이 무척 센놈이다.
그놈을 내가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고
저 놈이 날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무지개는 잡을 수 없기에 더 신비롭고,
꽃은 피었다 시들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젊음은 붙들 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우정은 깨지기 쉬운 것이기에 더 귀한 것이다.

내 손에 손톱 자라는 것은 보면서,
내마음에 욕심 자라는 것은 보지 못하고,
내 머리에 머리카락 엉킨 것은 보면서,
내 머리속 생각 비뚤어진 것은 보지 못한다.

모든 걸 베푸고만 사는 나무같은 
친구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먼저 누군가의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잘 자라지 않는 나무는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잘 날지 못하는 새는 날개가 약하기 때문이다.
행동이 거친 사람은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도,
좋는 생각에 좋은 생각을 더하면 복이 된다는 걸 몇 사람이나 알까?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가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도,
사랑에서 희생을 빼면 이기(利己)가 된다는 걸 몇 사람이 알까?

세월이 더하기를 할수록 삶은 자꾸 빼기를 하고,
욕심이 더하기를 할 수록 행복은 자꾸 빼기를 한다.
똑똑한 사람은 더하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빼기도 잘하는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은 벌기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누어 주기도 잘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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