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광덕 큰스님

2013. 11. 21. 17: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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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광덕 큰스님

 

 

성덕행 김인숙(性德行 金仁淑)|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큰애야, 오늘은 특별한 스님이 집에 오시니 미리 와서 기다려라.”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나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십대 초반에 한국을 떠나서 20년 이상 외국생활을 하고 막 귀국한 나로서는 불교도 어색한 종교요, 더구나 귀국 후 곧 아버지를 잃은 나는 사찰이나 스님 앞에서는 도무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옳은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가 불교와 스님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고 하시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특별한 스님’ 에 대한 기대보다는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드리겠다는 효심에서 부지런히 신문로 친정으로 향하였다.

 

 

신문로의 친정에는 평소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큰 온돌방을 이미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았고, 방 가운데는 스님이 앉으실 방석도 단정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특별한 스님’과의 만남은 1975년 어느 늦은 봄날에 있었다.

 

 

그렇게도 흰 피부색, 마치 얼굴 속이 환히 들여다보일 것만 같았다. 승복을 입으셔서 잘은 모르겠으나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큰 키에, 그러나 너무나 야위셔서 그 육신이 지탱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 스님의 유난히 긴 손과 손가락들을 보면서 피아노를 전공하셨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긴 목과 마르신 얼굴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서 관세음보살님이 환생하시면 저러한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스님의 애도의 말씀과, 어머니에게는 불자로서의 삶의 방법에 관하여 여러 말씀들이 있었으나 그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광덕 큰스님께서는 지금의 불교는 젊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즉 새로운 불교의 앞날에 관한 걱정을 하셨으며, 잠실이라고 하는 곳에 포교당과 사찰을 지으시고 나아가 유치원도 운영하시겠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때만 해도 불교에는 영 관심도 없었고 이해도 못할 때라 나는 두 분의 대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마치 기독교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시에 저렇게도 가냘픈 몸에서 어떻게 저러한 정열이 쏟아져 나오는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스님께서 본인의 뜻하시는 그 많은 일들을 과연 다 이루시게 건강이 허락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어머니는 스님의 새로운 법당 신축을 위하여 필요한 시멘트를 기꺼이 보시할 것을 약속하시고, 또 스님의 뜻하시는 방향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불교가 나갈 올바른 길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한국에 광덕스님 같은 분이 열 분만 계시면 우리나라 불교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면서 스님의 건강을 매우 걱정하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광덕 큰스님보다 친정어머니가 1981년에 훨씬 더 빨리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께서는 병고 중에도 나에게 광덕스님과의 약속을 큰 남동생에게 말하여 꼭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않으나 잠실의 불광사가 기공식을 하고 동생인 김석원 쌍용회장의 배려로 원만히 골조공사가 끝났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몇 번 불광사에 가서 큰스님을 뵈온 적이 있다. 아무리 오래간만에 찾아뵈어도 나를 알아보시고 자주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큰스님께서 그 많은 신도들을 어떻게 다 기억을 하시고 이름까지도 기억을 하시는지 정말 놀라운 일이기만 했다.

 

 

불국생(佛國生)이라는 불명을 한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면서 생활하신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또 어머니께서 그렇게 존경하시던 큰스님께서도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 그러한 분들이 조금만 더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사셨다면 우리 불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큰스님께 관한 글을 쓰고 있자니 저절로 불국생 어머니 생각도 난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도피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