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헌신을 배우자 - 광덕 큰스님 법문에서

2013. 10. 31. 15: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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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

 

순수와 헌신을 배우자

 

신록이 물결치는 산과 들, 6월은 천지가 왕성히 성장하는 달이다. 불자들에 있어서도 () 4 15일이 하안거 결제이니, 이 달은 정녕 대전진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계절이다. 올해 이 여름의 정진이 우리 모두 한층 성장하고 부처님 광명을 보다 가까이 우리 생활에서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진다. 고인이 이르기를 [한번 벗기고 또 벗기는 것이 누겁을 정진한 것보다 낫다]하였는데 이 여름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진정 한거풀 한거풀 미혹의 그물을 벗겨가는 큰 정진의 철이 되어야 하겠다.

 

[본생경]을 대하면 부처님께서 여러 생을 반복하시면서 살을 베고 뼈를 깎는 정진과, 중생을 위하여 헌신한 모습을 대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몸소 이런 수행을 우리 앞에서 행하여 보이시므로 우리 수행의 규범을 몸으로써 설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에게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다음 2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법을 위하여 스스로를 비우고 일체 망념을 비우고 무상보리만을 추구하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선혜행자의 구법이 그 하나이다. 연등불께 공양하고자 길을 닦던 중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부처님이 오신다. 이네 선혜행자는 이때야말로 나의 전 심신을 부처님께 바치고 보리를 구할 때 라고 결심한다. 그리고서 진흙 위에 엎드린다. 연등불은 그의 원하는 바를 아시고 그의 성불을 예언하신다. 이것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석가모니불의 수기(授記)인연이다.

  우리는 여기서 몸을 땅에 던지고 머리카락으로 진흙을 쓸으며 무상보리를 구한 뜻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무상법을 구하여 일체를 버린 것을 뜻한다. 온갖 소유, 집착, 아전을 무상법 앞에 말끔히 비운 것이다.

 

본생담중 또 하나의 유형의 대표로 볼 수 있는 것은 살타왕자의 보시다. 굶주림 호랑이와 그의 갓난 새끼 일곱마리를 아사직전에서 구하기 위하여 몸을 바쳐 호랑이에게 먹힌 사실이다. 허기져 죽게 된 중생에게 몸을 던졌다. 이것은 중생의 아픔을 내 어려움으로 느끼고 중생을 건져줌을 자기 참 생명의 기쁨으로 삼는 보살심의 표정이다. 살타왕자는 이 헌신보시로 보살도를 완성했다.

 

  부처님의 본생담에 보이는 이 두 유형은 무상보리를 구하고 불국토 성취를 구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명백한 수행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의 마음을 비워 불법 앞에 심신을 바치는 선혜행자의 정진은 모름지기 오늘의 우리 정신이 되어야 하겠다. 중생의 고난을

구하고자 목숨마저 던졌던 통쾌한 보시바라밀의 실천은 오늘의 우리 수행을 밝혀주는 강력한 충격이고 횃불이 아닌가. 뼈아픈 반성과 함께 힘과 용기를 주는 압도적 힘의 설법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이켜 볼 때 너무나 부끄러움이 큰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자기 입장이나 현대라는 시각에서, 자기를 집착하고 법문을 대한다. 불법을 인간과 세계에 봉사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인간의 우치와 세계의 의혹을 그대로 두고 거기에 불법을 이끌어 이득을 얻으려 한다. 이야말로 본말전도다.

 

불법은 중생이나 세계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진실]이며, 진실의 완성을 이룩하는 가르침이 아닌가. 그릇된 인간과 세계를 긍정하고 그에 시종 구실을 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와 역사를 본래의 [진실에로 회복] 시키는 법문이 아닌가.

 

우리는 모름지기 선헤행자를 배워야 한다. 진흙앞에 엎드리고 머리를 풀 듯, 아집. 사견을 버리고 법문 앞에 순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서 밝은 광명은 우리의 생명과 역사의 평원에 가득 퍼질 것이 아닌가.

 

  또 한가지는 온갖 행위에 있어서 이기적 타산의 극복이다. 저 때에 살타왕자가 여덟생명을 구했을 때 거기에 무슨 타산이 있었는가. 다른 생명의 아픔을 자기 생명의 아픔으로 느끼고 저들의 생명을 내 생명으로 사는 크고 뜨거운 보살의 체온이 있을 뿐이다. 거기는 오직 동체성의 윤리가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자비다. 구하는 바,

바라는 바, 아무 것도 없이 그의 몸을 바쳐서 검은 머리와 백골만을 남겼었다.

우리도 단 한 번 만이라도 이러한 순수한 행, 청정행, 보살의 행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통쾌할까. 이 여름 우리의 정진이 이런 생명본분의 수행이고 싶다.

 

자그마한 선행을 하고도, 그나마도 당연히 하여야 할 의무적인 일들을 하고서도 남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거나 존중 받기를 바라는 심정은 없는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아집을 비우는 수행은 출가한 스님들 만의 전문 수행이 아니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세간사업을 하든, 가정생활을 하든, 이 수행은 항상 닦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아헌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생활 속에서 혹은 출세간 수행에서 뜨거운 자비심은 키워가는 것이 아닌가. 불법의 핵심은 지혜와 자비라고 했고 수행의 요목도 지혜와 자비를 닦는 일이라 했다.

 

우리 모두 이 안거 수행기간에 출가수행에서든, 재가수행에서든, 무아헌신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법문을 새겨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 수행하는 불자로 해서 진정 순간 순간이 성불하는 시간이 되고 국토가 불국토로 바꿔지는 그런 안거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84>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296 – p299 수행의 길에서, 불광출판사

 

*내 앞에 멈춘 것들을 사랑하자

 

싫다고 떠나는 것, 멀리있는 것을 애써 잡으려 하지 말자.

스쳐 지나간 그리운 것에 목숨 걸지도 말자.

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욕망이든, 물질이든,

흐르는 시간 속에 묻어 두자.

 

지금 내 앞에 멈춘 것들을 죽도록 사랑하며 살자.

오랜 시간이 흘러 나를 찾았을 때

그때도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우면 그때 열어보자.

아마도 떠난 것들. 그리운 것들이 순서대로 서서 나를 반겨주리니

 

그때까지 미치도록 그리워도 시간 속에 묻어두고

지금 내 앞에 멈춘 것들에 몰입하며 죽도록 사랑하며 살자.

 

 - 김정한 치유에세이 ' 있었나요 내인생'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