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

2013. 12. 14. 11: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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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

 

 

어제 한 거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카페에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신다고

인사 겸 덕담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 거사님이

“스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덕 짓는 것이 무엇인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음, 그거야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 아니겠소?”

 

“스님, 금생에 부처님 말고 성불한 사람이 또 있습니까?”

“네, 거사님 성불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번뇌를 소멸한 아라한과를 얻은 분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지금 최근세에도 그러한 분이 있습니까?”

“세상에 들어내 놓지 않은 분들 중에 수행 정진하여 견성하시고

 번뇌를 다 소멸하여 아라한까지 도달하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스님, 그렇지만 그 길은 일반재가불자들에게는 너무 어려운길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쉬운 길이 아미타불에 의지해서 극락으로 가는 것이지요.”

 

“네, 스님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해 누구라도 아미타불을 지심으로 염불하면

그 공덕의 힘으로 극락왕생한 후 그곳에서 다시 닦아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성불하는

것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 내용이 정토삼부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스님,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쉬운 길을 가지 않지요?”

“네, 그것은 사람들의 근기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수행법이 다르다고요?”

“ 그렇습니다. 거사님. 모든 수행법은 근기에 따라하면 됩니다.

   그 수행의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1.

“ 마음이 순수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저 보시 많이 하고 착한일 많이 하면 그 업으로 천당에 간다.’ 또는

‘아미타부처님은 무량광이요 무량수란 뜻이므로 아미타부처님을 오매불망

잊지 않고 부르면 자신이 아미타부처님과 같이 한없는 지혜와 자비의 광명에

들게 되고, 한없는 수명의 복을 지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고 한 부처님 말씀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깁니다.

 그 결과 삼매에 쉽게 들게되고 임종시에 극락왕생하게 됩니다.

 (임종시에 마이타에 의지한 돈독한 믿음으로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에 이름)

그러한 분들은 신심이 강하여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한길을 갑니다.

 

바른 신심을 내어 한 곳으로 가는 것이므로 어쩌면 가장 수승한 수행법일 수

있습니다. 삼매에 도달하는 길이 염불이 아주 빠르기 때문입니다.(耳根能通)

우리 거사님 같은 분이지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스님”

 

 

2.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번뇌가 많아 머리로 온갖 사량 분별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근기의 사람들에게는 이치에 타당한 합리적인 이야기를 해주어 스스로

그 길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불자님이 말합니다.

‘스님, 세상에는 나쁜 짓만 하고도 잘사는 사람이 있고, 착한일 하고도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대체 왜 그러합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말뜻에는 ‘착한일한다고 과연 천당에 갈까? 나쁜 일해도 잘만 사는데’라는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스님은 부처님의 법문을 인용하여 업이 나타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법합니다.

 

즉 전생에 복을 많이 쌓은 사람은 이생에 나쁜 일을 해도 전생의 복이 다할 때까지 잘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전생에 나쁜 업을 쌓은 사람은 이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전생에 지은 업의 영향으로 어렵게 살 수가 있습니다. 또 이생에 지은 업이 금생에 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다음 생이나 그 다음 생에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갚고 싶은데 상대가 인간 세상에 아직 나타나지 않으면 갚고 싶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은 인과는 인연이 닿으면 반드시 다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업자득의 원리가 이 우주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 내가 지은 업의 결과요, 지금의 내가 지은

업의 결과에 따라 미래의 내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됩니다.”

 

“스님, 그러한 분들은 어떤 수행을 구체적으로 좋아합니까?”

“네, 바로 현재 자신의 몸과 느낌과 마음의 알아차림과 인연법의 흐름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 가슴에 탁 와 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들은 알아차림 수행 즉 위빠싸나 수행하기를 즐깁니다.

 

들은 이를 지극정성으로 닦아 결국 모든 번뇌를 여의고 아라한과에 이르게 됩니다.

아라한이 되엇다는 것은 윤회하는 원인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이를 무생법인을 증득한 사람이라 합니다.”

 

 

 

3.

“스님, 그런데 자신이 착한 일 하고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일했다고 상을 많이 내거든요. 좀 민망한 경우도 있어요.”

 

“네, 거사님 옳은 말씀입니다. 착한 일을 하고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많아지면 그 결과 이기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과 연을 지을 때 지혜롭게 지어야지 미련한 생각에서 지으면 내생에 결과를 받을 때도 미련한 일만 생기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지혜롭게 인연을 짓고 지혜롭게 결과를 받으려면 반야의 지혜를 알아야 하느니라. 즉 세상은 고해(苦海)요, 영원한 것은 없이 항상 변화하며 모든 존재는 연관되어 함께 변해가니 어디에도 집착하고 머물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無常)무아(無我)고(苦)라는 삼법인(三法印)의 도리요, 공(空)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 수행법이 팔정도입니다.”

 

“스님, 공(空)의 도리나 무상, 무아의 도리를 잘 알아 수행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수행으로 잘 나아갑니까?”

 

네, 거사님 참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 분들은 분석하기 좋아하고 따지기를 좋아 합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삼법인과 공의 원리에 입각한 수행법이 위빠싸나나 참선입니다.

그러한 기질의 사람들은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말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일에

 의심에 의심을 하는 화두선이나 또는 인과의 이치를 철저하게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위빠싸나가 더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스님 듣고 보니 저는 거의 의심 없이 잘 받아들이는 것이네요.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모르고 믿으면 맹신이 되고,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만심을 증대합니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을 확실히 믿으려면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배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거사님”

 

 

 

4.

“거사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수행한 결과 자신은 참으로 마음이 편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은 인연인 무생법인을 얻었으니 자신에게는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중생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이익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아라한과를 얻으시고 21일간 선정의 기쁨에 머물러 계시다가 스스로

 이 기쁨을 누리고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하시다가

'아니야 저 고통 받는 중생에게 이 법을 전해주리라.'

 이렇게 마음속의 중생에 대한 한없는 자비심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법의 길로 다시 세상에 나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라한으로 족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는 대비심과

양심이 부처님을 진정한 성자의 길인 부처님의 길로 나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살기 좋아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동체대비심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혜가 부족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이나 정토삼부경에서는 많은 불보살이 등장하여 한편으로는

보리(지혜)를 닦고 한편으로는 한없는 자비심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합니다.

이를 상구보리하화중생이라 합니다.”

 

“스님, 이들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네, 그것도 근기에 따라 염불수행, 위빠싸나, 호흡선, 참선 등을 합니다만

 항상 오매불망 떨어지지 않은 것은 중생제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제도가 없는 수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한편으로 처절하게 자신을 닦고 닦아 갑니다.

이들을 우리는 대승보살(보디사트바)이라 합니다.”

 

 

 

5.

“스님, 저도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미타염불수행을 15년간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아미타불 염불수행을 권하고 있습니만 잘 안됩니다.”

 

“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거사님, 위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수행법을 택하니 그 점도 헤아려야 하겠지요.

 

  그런데 순수하게 무조건 믿고 염불하다 보면 쉽게 삼매에 들고, 그 결과 번뇌도 사라지고 저절로 자신의 몸과 마음과 느낌을 알아차리게 되고, 나아가 인연법도 저절로 터득하게 됩니다.  

 쉬운 것을 마다하고 어려운 것을 택하는 것은 바로 이시대의 사람들의 근기가 의심을 하고 합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아시고 포교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거사님”

 

“스님말씀 듣고 보니 정말 저도 모르게 제 생각에 집착한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이제 근본불교의 가르침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사님,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근본불교가르침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대승 불교는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태동한 불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근본불교와 대승불교를 융합한 불교의 새로운 페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승불교의 장점과 근본불교의 장점을 다 결합한 수행법입니다.”

 

 

“스님,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거사님 뭐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근본불교니 대승불교니 따지지 않고 그 사람들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스님, 그러면 사람들의 근기 파악이 참 중요하겠습니다. 그 근기는 어떻게 파악합니까?”

“참으로 좋은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자신이 잘 몰라요.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불교경전 중 화엄경이나 유식학도 있고 또 현대심리학, 개운명리심리학, 심상학 등이 있습니다. 이 학문의 요점도 미리 배워두면 자신의 성격은 물론 가족의 성격이나 주변사람들의 성격을 잘 알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격을 고려한 맞춤식 수행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염불을 어떤 이에게는 명상을 또 어떤 이에게는 참선을 권유하되, 구체적인 것은 해당 전문 스님이나 법사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염불중에서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약사여래불 등 어느 불보살을 정근할 것인지를 지도해 줍니다.

물론 염불수행도 칭염법, 염불관법, 자성미타관법 등이 있습니다.

 

“스님, 참으로 불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성경 1권이면 다 되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허허, 중생의 근기가 다르니까 그렇지요.”

 

“스님은 어떤 수행을 하십니까?”

“허허, 그것이 궁금하시군요?

 

스님은 아미타불 수행을 합니다만 [칭염법, 호흡법, 관법]을 다 사용하여 수행합니다.”

“스님, 저도 스님의 아미타수행법 배울 기회를 주십시오.”

“네, 거사님, 언제나 환영합니다.”

 

 

 

6.

불자님들

보통사람들은 바라는 바가 많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욕망입니다.

가지려고 해서 갖지 못하면 공연히 화가 납니다.

 

사람들은 가진 것도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서

또 얻으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지나친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심지어 부질없는 욕망으로 인해

자신이 가진 것 까지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삶이 지혜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개인적으로 참으로 훌륭한 삶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서 수행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무슨 수행을 하던 좋습니다.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하면 성취가 빠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행이 다가 아닙니다.

항상 우리 주변에 그러한 법을 몰라 허우적대는 중생의 소리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7.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합시다.

 

그래서 불보살은 발원을 하며 발심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를 실천하고

한편으로는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법을 합니다.

 

한마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이것을 하기로 결심하고

남은여생을 모두 이곳에 매진하기로 맹세하는 것이 바로 발보리심입니다.

줄여서 발심(發心)이라 합니다.

 

 

 

불자님들

천수경에 나오는 보살의 네 가지 서원을 함께 새겨봅시다.

중생무변서원도 :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 :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 :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 :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