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6. 09:0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열반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악마는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
악마는 말하지 않고 설(說)하지 않고 죽는 것처럼 되는 것을 열반이라고 보아,
여래가 열반에 드셨다는 것도 그와 같이 여긴다.
그러나 이 세상의 현실을 버리고 침묵한 채 말하지 않는 것이 열반일 수는 없다."
-열반경 고귀덕보살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17 부처님은 심한 고통을 무릅쓰고 춘다의 집을 출발하여 구시나가라 성을 향하여
최후의 행진을 시작하셨다.
아난다와 춘다와 많은 제자들이 눈물을 뿌리며 뒤따랐다. 어느 나무 밑에 이르렀을 때
부처님께서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등이 아프구나. 잠시 쉬어가자."
18 이때 풋쿠사라는 외도가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듣고 낡은
믿음을 버리고 우바새[信者]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풋쿠사는 중병으로 괴로워하시는 부처님을 위하여 노란 담요 두 장을 바쳤다.
부처님께서 감사해하고 담요를 몸에 두르자, 부처님의 얼굴과 몸에서 찬란한 광명이
솟아났다.
19 땀을 흘리며 카쿠티 강에 이르신 부처님은 몸소 강물에 들어가 목욕하시고,
춘다로 하여금 가사를 네 겹으로 깔게 하여 그 위에 누워 잠시 쉬시고 다시 행진을 계속하였다.
기력은 극도로 쇠진하고, 땀이 흘러 발자국을 적셨다.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고,
이렇게 스물 다섯 번을 거듭하여 부처님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침내 구시나가라 성
발데 하(河) 언덕에 이르셨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Sals, 沙羅雙樹] 사이에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깔고 그의 모국
가빌라 성(城)을 향하여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오른 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발을 포개어
모로 누웠다.
그때 사라나무는 제철도 아닌데 꽃이 피어 부처님의 몸 위에 흩날리고 하늘에서 노래 소리가
은은히 울려왔다. -장아함경 권2-
끝없는 행진
20 많은 사람들이 해탈 열반을 찾아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가정도 세상도 훌훌 벗어버리고 구름따라 물결따라 흘러가는 것이 수행의 길이고
무위자연(無爲自然), 세상만사 굳이 애쓰지 않고 인연좇아 두둥실 살아가는 것이
'집착 없는 삶'이고 '청정한 행(淸淨行)'인 양 찬양되기도 합니다.
과연 세상 먼지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열반의 길이고, 앉아서 죽고 서서 죽는 것이
생사 해탈의 경지인가요?
21 우리들의 벗, 부처님은 어찌 사셧습니까?
그는 단 한 번도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길에서 나고
길에서 살다, 또 길에서 가십니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발자국마다
땀방울로 적시며 가고 쉬고, 가고 쉬고 하기를 스물 다섯 번이나 거듭하며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언덕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행진하십니다.
마가다 같이 화려한 나라와 베살리 같이 풍성한 거리를 버리고, 부처님은 어찌하여
외롭고 가난한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언덕을 향하여 죽어가는 육신을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언덕, 이 곳은 버림받은 땅, 고단하고 외로운 민중들의 고향,
바로 이 곳에서 그들은 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지막 한 중생의 짐을 지고, 이 세상 끝까지 비틀거리며 행진해 가는 것이 바로
대열반[大涅槃, maha-nirvava]의 길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22 세상이 무상하고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생각도 삿되거니와[虛無空見], 이 세상
이대로가 아름답고, 이 생명 그대로가 영원하다는 생각도 삿된 것입니다.[惡ㅇ定].
아름다운 세상(부처의 나라)은 갈고 뿌려서 개척해가야 할 희망이고, 무한 생명의
기쁨(열반)은 지금 여기서 땀 흘려 창조해야 할 구체적인 생의 책무인 것입니다.
가정과 세상과 역사의 짐을 기꺼이 지는 것이 내 인생의 책무이고, 마주 선 이 현실을
긍정하고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곧 열반인 즉, 그런 까닭에 말하지 않고, 교화하지 않고
침묵한 채, 죽은 모양 되는 것을 열반이라 하는 것은 악마의 짓이라고 하였고, 참선 맛에
매달림은 보살의 속박이요, 방편(구체적인 방법)을 갖고 이 세상에 뛰어듬은 보살의
해탈이라 하였습니다.
23 지금 여기서 내가 진 짐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애써 아끼고 저축하며,
이웃을 위하여 조그마한 애정을 바치는 이 평범한 인생, 바로 이것이 해탈의 경지이고
대열반의 첫걸음인 것입니다.
사람을 피하여 산골을 찾고, 얽매임이 두려워 훌훌 벗고 떠나려는 것은 악마의 길은
될지라도 결코 부처의 길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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