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시로만 친견한 큰스님

2014. 1. 25. 13: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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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로만 친견한 큰스님

 

 

법륜월(法輪月) 장지영|우바이, 조계사

 

 

 

“삼가 큰스님 각영전에 예배드리옵니다.”

-아아, 나에게 복이 없었던가? 업이 두터웠던가? 이렇게 큰스님 진영 앞에서 뒤늦은 참배와 아쉬움을 표하다니.-

 

 

나는 광덕 큰스님 생전에 한번도 직접 법문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친견한 적은 더욱 없다. 다만 우연한 계기로 송암스님께서 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원고지를 앞에 놓고 큰스님과의 간접적인 인연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참으로 불법 인연은 묘하고 묘하다는 생각만 거듭하게 된다.

 

 

부처님께서도 ‘나와 맺을 수 있는 인연은 이미 다 맺어 놓았으나 그래도 못 맺은 인연은 미륵보살이 나올 때 다 맺어진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미륵보살이 오셨는가? 경의 말씀대로 56억 7천만 년 뒤에 오시는가?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불교계에 오신 광덕 큰스님이 미륵보살이 아니신지!

 

 

이제 큰스님 가신 뒤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과 인연됨을 감사하고 미륵보살일지 모를 광덕 큰스님께는 오히려 죄송하기만 하다. 그분이 미륵보살이라고 해도 미처 내가 몰랐으니 말이다.

 

 

지난 1980년대 초, 나는 『대방광불화엄경』을 공부하고 마지막 ‘보현보살십대행원’을 불도 수행의 좌우명으로 삼아 정진하기 시작했다. 사바 세계의 거친 파도 위에서 때로는 난류를 타고 때로는 한류를 타고, 또 때로는 한류와 난류를 교차하면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실천궁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장보살! 불광사에 계시는 광덕 큰스님 좀 친견해 봐요!”

미리 날짜까지 정해놓고 친견을 서둘러 주던 그 도반 보살의 청을 거절한 죄, 오늘에 와서 이렇게 아픈 심정으로 참회할 줄은 정말 몰랐다.

 

 

1980년 후반 해인총림에서 쓰던 광덕 큰스님께서 번역하신 『보현행원품』을 읽고 나는 환희심에 온몸을 떨었다. 그 후 해인총림에서 발간한 행원품을 계속 읽었다. 물론 처음에는 한글로 읽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처음에는 좀 어려웠지만 한자로 읽는 습관을 들여 한문 독경의 맛을 들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한자의 어눌함에서 다소 벗어나 살짝 눈이 뜨이기도 했다. 그로 말미암아 더욱 용기 백배하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수행체험이었고, 알고 보니 그 또한 큰스님의 은혜이셨다.

 

 

내가 불법을 만나서 여러 선지식들을 친견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불광의 큰스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단연 『보현행원품』 때문이리라. 나는 그때 너무나 감사하여 『보현행원품』 법보시를 시작했다. 물론 나도 하지만 주변 불자들에게도 적극 권했다. 적게는 한 권에서 많게는 수백 권씩 자타일시로 권선하고 다녔다.

 

 

또 1990년 중반이던가, 큰스님께서 편역하신 『지장기도집』을 조계사 봉향각에서 발견했다. 얼른 펼쳐보니 책 앞부분에 영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문일답으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이런 깊은 이야기는 스님들만 알고 우리 불자들은 잘 알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그 중요한 사실이 『지장기도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마침 궁금증으로 목말라 하던 차였기에 나는 그 책도 적게는 한 권에서 많게는 수백 권을 사십구재 법보시로 선택하도록 널리 권했다. 지금까지 나온 다른 지장경보다 훨씬 잘되었다고 강조하고 애독하도록 도반들과 지인들에게 적극 권유했다. 1980년에서 1990년대까지 위의 두 권이 나의 법보시 주 대상이었다.

 

 

평하여 말하기가 외람스럽지만 경에 대한 큰스심의 한글 번역은 문장이 좋고 신심이 깊어서 읽으면 저절로 환희심이 솟아오르고,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큰스님의 안목을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법열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리듬과 박자의 감각은 마치 시 구절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이와 같이 나와는 오직 문서로 인연된 광덕 큰스님!

열반의 슬픈 소식을 불교방송에서 들었지만 범어사 다비식 날이 조계사 백일기도 회향, 방생일과 겹쳐 동참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십구재 때는 꼭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마침 조계사 주지 지홍스님께서 큰스님의 제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지만 주지스님은 그때 조계사로 오신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신도들에게 가자고 말씀을 못하셨나 짐작해 본다. 만약에 말씀을 했더라면 우리 조계사 신도들이 버스로 몇 차는 갔을 터인데…….

 

 

나는 큰스님의 49재 일을 달력에 기록해 놓고, 재 5일 전 지홍스님께 처음 글월 올리고 큰스님 영전에 공양금을 전했다. 49재가 마침 초하루였는데 시간에 늦지 않게 잠실 불광사에 도착하니 이미 불광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날 불광사를 처음 찾은 나는 예불을 할 때나 경전을 읽을 때나 옆사람이 하는 것을 눈치껏 살펴가며 운율을 맞추느라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조계사 신도가 불광사에서 바보가 되었다고나 할까.『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51미륵보살을 만나 일탄지에 여태껏 알았던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과 같았다고 하면 실감이 될지 모르겠다.

 

 

앞에서 말했지만 나는 불광 대중들이 한글로 외우는 『천수경』을 따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은 책을 보지 않고도 천재처럼 다 외우는데 나만 책을 들고 읽는 것도 더욱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렇지만 나는 큰스님의 신도들과 함께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서 일심으로 염불했다. 『천수경』중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나올 때가 되어서야 조금 따라 했지만 속으로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그 신도들을 찬탄하고 있었다.

 

 

아, 그렇다!

모든 경문이 한문으로 씌어 있고 의식문 또한 어렵기만 한 한문이니 그동안 나를 포함한 우리 불자들은 뜻을 모른 채 소리만 따라 했을 뿐이었구나 하는 때늦은 자탄이 일었다. 우리 대한민국 불자들은 부처님의 진실한 뜻도 모르고 그냥 많이 읽으면 좋다고 하더라 하는 마음으로 수행해 왔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큰스님의 원력 가운데서 경문과 의식문을 한글로 바꾸는 불사가 있었으니 가히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대한 불교조계종의 일번지 신도였지만 모든 대중들에게 한글 의식을 가르치고 익숙시키셨으니 가히 큰스님께서는 우리 시대의 큰 선지식인 것은 이로써 더 분명한 일이다. 만약 지금부터라도 우리 한국불교 전체가 한글로 의식을 집전하고 아침저녁 경전을 독경한다면 불교의 발전은 눈부시게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일 중의 하나가 한글대장경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큰스님의 진정한 뜻을 도피안사에서 한글대장경 봉안 불사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하셨다. 나는 조계사 신도임에도 흔쾌히 그 불사에 동참했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권유했다. 그것이 광덕 큰스님의 뜻을 따르고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큰스님의 그런 뜻이 조계사의 그 많고 많은 신도 가운데 이 법륜월에게 통하여 동참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아무튼 큰스님과 나는 한글대장경 불사 동참으로 영적으로 통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큰스님의 교화가 우리 조계사까지 미쳐서 모든 경전을 한글로 읽고, 모든 의식도 한글로 모든 신도들이 일제히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큰스님! 이제 우리 곁으로 어서 오시어 구국구세하소서.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옵기 위하여 하얀 코끼리 타시고 보현의 깃발을 걸고 다시 오시지요.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

 

 

불기 2545년 7월 20일

법륜월 장지영 합장

 

함께 울어주는 따뜻한 사람

저는 30대 초반의 유치원교사 입니다.
가벼운 우울증이 있어 간혹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곤 합니다.

그냥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다가,
저녁에 TV를 보다가,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제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때
주변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요?"
"내가 무슨 실수 했나?"

대부분 이렇게 '이유' 를 물어봅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는 유치원 아이들은 다릅니다.
친구가 이유 없이 울음을 터트릴 때
주변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습니다.

그냥 함께 웁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옆 사람의 눈물을 함께 해주고 있습니다.

- 서안나 (새벽편지 가족) -





어린아이들의 이러한 조건없는 눈물이
누군가의 슬픔에 대한
가장 순수한 반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 그 시절이 남아있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