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광의 포교사- 대자혜(大慈惠) 김순숙|우바이, 서울구치소교화위원

2013. 12. 26. 08: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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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광의 포교사

 

 

 

자혜(大慈惠) 김순숙|우바이, 서울구치소 교화위원

 

 

 

월간 「불광」을 구독하면서 언젠가는 불광사를 한번 찾아가리라 생각했던 것을 실행에 옮긴 1983년 가을, 아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맘때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흠모하는 임을 찾아가듯 설레는 가슴을 안고 불광사를 찾아갔다. 보광당 법회장소에 빼곡이 들어찬 신도들 사이를 이리저리 간신히 비집고 들어섰을 때, 멀리 불단 앞에 장엄한 법좌도 아닌 조그만 의자에 큰스님께서 앉으신 모습이 보였다. 꽤 멀리서 보았지만 정말 자비스럽고 온화한 모습이셨다. 큰스님께서 의자에 앉아서 설법을 여시는 첫말씀이 무척 인상 깊었다.

 

 

“형제 여러분!”

 

 

아! 온 세상을 부드러운 깃털로 포근히 감싸 안아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비 위신력 넘쳐나는 알 수 없는 힘찬 목소리, 그리고 우리를 동일체로 불러주시는 겸손함에 순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흔히 만나지 못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나는 만사 제쳐놓고 일요일마다 열렬하게 불광법회에 빠져드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큰스님의 전법 발원에 힘입어 그렇게 소극적이고 남 앞에 나서 본 적이라고는 한번도 없었던 내가 법등 임원을 자임했고, 마침내 법등 임원을 거쳐 구법회 임원까지 맡게 되었고 수행하게 되었다. 절에 다니기 전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진 변화였다. 나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불가사의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큰스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바라밀 교육을 비롯하여 명교사 후보생 교육, 포교사 후보생 교육을 시켜서 마침내 법사가 되게 해 주셨다. 특히 1년간 포교사 후보생 교육은 어느 곳의 불교대학원 교육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이었음이 가장 큰 자랑이었다. 강사나 후보생 모두가 찬탄했고 기뻐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나 유익했고 자랑스러웠다. 포교사 후보생 교육을 수료한 법우들을 만나면

 ‘ 우리는 복이 많아서 큰스님께서 포교사 공부까지 시켜주셨다’고 말하면서 행운아들이라고 입을 모아 자찬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우리는 항상 감사하면서 큰스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맹세한다. 그리고 큰스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은 오직 전법이라는 생각을 자기고 한층 열심히 수행 정진한다.

 

 

거듭 말하자면 큰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륜회라는 이름의 모임이 있다. 그것은 불광 포교사들의 모임이다. 우리가 포교사답게 전법으로 최상의 보은을 삼는 삶을 살자고 다짐하며 지금까지 ‘불광 바라밀 상담실’ 을 성실히 운영하고 있다. 법륜회를 구심점으로 해서 병원으로, 복지관으로, 경승실로, 이웃돕기, 경조사 참여, 교도소 교화활동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큰스님께서는 언제나 전법 발원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셨다. 한 톨의 민들레 씨앗이 날아가서 수 없이 많은 민들레를 꽃피우듯이 내 하나가 밝아져서 내 가정이 밝아지고 내 이웃이 밝아지고 사회가 밝아지고 국가가 밝아지고 세계가 밝아지는 불국토를 이루는 역군이 되라는 간곡한 말씀이셨다. 나는 그런 큰스님의 정법 호지 발원을 받들어 구치소 재소자 교화법사로 활동한 햇수도 어언 14년 된 것 같다. 어느 때는 정말 어렵고 힘겨워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큰스님의 말씀이 뇌리 속에 떠올라 스친다. 그래서 다시 또 힘을 내곤 한다.

 

 

“대자혜 보살님, 자신이 잘나서 전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대자혜 불자의 진정한 수행입니다. 대자혜라는 법명답게 무한히 베풀며 살아야 해요.”

 

 

언젠가 교도소 법회에 떡을 해 가야 하는데 떡값이 부족하여 떡값을 얻으려고 큰스님을 뵈러 갔을 때, 큰스님께서 선뜻 떡값을 내주시면서

 

 

“떡 신도라도 많이 만들어라.”하시면서 격려해 주시던 모습과,

“장하다, 부디 어둠을 밝히는 데 주저함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활동하세요. 그리고 개인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시며 나의 자만심을 경계해 주시던 자비하신 말씀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조금 거슬러 올라가 좀 지난 얘기를 하나 하자면, 큰스님을 만났다는 사실은 내게 있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대사건이었다. 그동안 나는 참으로 어리석게도 온갖 집착과 갈등으로 고난스럽게 살면서 이 모든 것이 나의 업이려니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참으며 산다는 아집을 가지고 있었고 밖으로는 너무도 안일하게 살았다.

 

 

“환경을 탓하지 말라. 자신이 바뀌면 모든 환경이 다 바뀐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을 당하더라도 참아서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대하는 것이며 능히 안에 있는 무한의 힘과 무한의 기쁨을 내어 쓰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나에게 단박에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어 놓은 천둥 같은 사자후였고 어두운 앞길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이었다. 이 말씀은 내 삶의 지표를 바꾸어 놓았고, 내 삶의 새로운 신조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초심자 법우들에게나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수없이 설명하는 대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불법은 말과 생각과 이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체험을 통한 감동이며 체험을 통한 자기 발견이다.”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어느 것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부족 덩어리였던 내가 큰스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과거의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졌다. 그 체험 하나를 밑천삼아 큰스님 은혜에 보답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하여 빙산의 일각도 안 되겠지만 작게나마 어두움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재소자 교화활동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큰스님은 건강이 편안하지 못하여 항상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했던 모습마저도 우리에겐 큰 가르침이었다. 언제나 편안하고 밝고 천진한 모습이었기에…….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도피안사


 
         
        크리스마스 선물 
        - 이성진 詩 
        선물이야
        눈감아봐 
        쪽
        올 크리스마스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이 마음 
        변하지 않을께
        평생을 아끼며 
        행복한 순간 순간을 
        기억하며
        훌쩍 지날 
        세월 이라지만
        영원히 변치않는 
        이 마음이
        선물이야
        눈감아봐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