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박힌 낡은 못을 뽑아내자 / 정목스님

2014. 2. 20. 12: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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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출처:김순겸 화가>

마음에 박힌 낡은 못을 뽑아내자

 

찻잔은 차는 순간 비워지고,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입니다.

봄 또한 생명으로 터질 듯 가득해지면

찻잔을 비우듯 가을과 겨울이 모든 것을 비워버리지요.

인간의 생각도

그렇게 채워졌다 싶으면 비워지고,

왔다가 사라지는 것의 연속입니다.

꽃이 언제 피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가 왜 노래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꽃은 때가 되면 피고,

새도 제대로 이유가 있으니 노래한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이유를 모른다 해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어떤 것, 명상은 그렇게 우리를 저절로 깨어나게 하는 어떤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명상법이 있지만 그것은 가르쳐서 되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껍데기가 벗겨지며 저절로 나오는 것이며, 봄이 되면 꽃이 피듯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피는 것이 명상이다.이 책에 나오는 명상법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특정한 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오랜 전통 속에 꾸준히 알려지고 전해지면서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고 응용되며 전해져온 것이다. 새로운 명상법이라 해도 그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며 단지 사람들에게 더 쉽게 전달하려고 발전해온 것이다.

 

 

 

"배가 부딪치려 하니

어서 저쪽으로 방향을 틀어요.

내 말이 안 들리는 거요?

이러다간 우리 둘 다 배가 부서지겠소"

 

 

마주 흘러오던 배와 쾅하고 부딪히고 만다.

화가난 뱃사공은 벌떡 일어나

"그러게 내가 방향을 틀어 피하려고 하지 않았소" 하며

큰 소리를 친다.

그러나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배가

저 혼자 물살 따라 흘러와서 부딪혔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금방 화가 가라앉는다.

 

빈 배(虛舟)

장자(莊子)의 외편(外篇) 산목(山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배가 강물에 떠 있는 이상

부딪힐 위험은 언제나 있다.

상대의 잘못일 수도 있고,

나의 잘못일 수도 있고,

강물의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상대의 배와 나의 배가 부딪혔을때

배가 비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서로 갈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면

꼴상스러운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워 놓고 男女, 男男, 또는 女女가 서로

상대의 잘못만을 탓하며 언성을 높인다.

그런데,

살짝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흥분할 이유도 없다.

장자의 빈 배처럼

자동차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다.

 

 

 

 

 

 

이렇게 명상

우리의 잔을 빈 찻잔처럼 텅 비게 만들고,

단지

지금 이 순간만을 우리 앞에 놓아둔다.

과거도 미래도 다 사라지고

명상을 통해

우린 오직 지금이 순간에 현존한다.

진정한 기쁨은

그렇게 텅 비어 있는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 같은 것이다.

 

 

"스님,

명상을 해서 얻는 게 무엇입니까?"
명상을 통해 얻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얻고자 하는 그 마음이 비워지는 순간

내면에 있던 순수함이 저절로 드러나며

마음에 힘이 생기는 것이죠.

 

도겐 선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명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도,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평화와 축복 그 자체이다"

 

 

 

운전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내용이다.

걱정거리가 생겨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버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무사히 목적지에 왔으니

의식이 완전히 잠들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상태를

깨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


무의식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은

사실

허깨비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는 행동만이

제대로 된 내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나 아닌 다른 것이 주인이 되어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간 것뿐이다.

걸을 때 걷는 것을,

먹을 때 먹는 것을 알아차리자.

 

 

 

디오게네스→ "무엇하러 가십니까?"

알렉산드로스 대왕→ "인도를 정복하러 가지요"

디오게네스→ "인도를 정복하고 나면 뭘 하실 겁니까?"

알렉산드로스 대왕→ "다른 나라를 정복해야지요.

                               그리고 좀 쉬어야겠어요"

 


지금 당신 눈앞에 시계가 있다면

초침을 한번 바라보세요.
그렇게

1분간을 오직 초침에만 집중하세요.
오로지 째깍거리고 있는

그 시곗바늘에만 주의를 모읍니다.

 

실제로 해보면

1분간 초침을 따라가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초, 20초 흐를수록

초침 보는 것을 망각한 채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기도 할 것이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렇다.

한 스승은

인간이 48분 동안

중단 없이 깨어 있을 수 있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48분.

참 쉬운 일 같나?

하지만 우리에게는

수없이 떠오르는 잡념들 때문에

48초조차도 쉽지 않다.

하지만

깨어 있음을 놓친다 해도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돌아오면 된다.

그저 돌아와서 다시 지켜보라.

이 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당신의 삶에서

깨어 있는 순간이 째깍거리는 초침처럼

조금씩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뜨거운 모래밭을 걷고 있었다.

목 마른 부처님은 제자 아난에게

물웅덩이로 가 물을 떠오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물을 뜨려는 순간,

수레가 지나가면서 흙탕물로 변하고 말았다.

손으로

물을 휘저어 맑은 물을 뜨려고 했지만

애를 쓸수록 물은 더 뿌옇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돌아가서

부처님에게 먹을 수 없는 물이므로

가다가 마실 물을 찾아보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다시 가라고 명했다.

 

 

"아니다. 아난아.

그 웅덩이 물을 가져오너라.

분명 마실 수 있는 물이니라"

 

아난은

과연 어떤 광경을 목격했을까요?

흙탕물이 맑은 물로 변해 있었다.

아난은 무릎을 치며

좀 더 맑아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자

웅덩이 물은 수정처럼 맑아졌다.

아난은

이 물을 떠서 기쁜 마음에 춤을 추며

부처님에게로 달려갔다.

느껴지는 게 많죠?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것과

마음을 다루는 원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흙탕물처럼

뿌옇게 일어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흙탕물이 스스로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아프리카의 설화 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연못에 살던 하마가

신나게 놀다가 한쪽 눈알을 잃어버렸다.

하마는

잃어버린 한쪽 눈을 찾기 위해

연못을 휘젓고 다니고,

물가에 사는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혹시 내 눈알 못 봤니?"하며 묻고 다녔다.

결국

눈알을 찾지 못한 하마가 풀이 죽어 앉아 있는데,

악어가 다가와서 말했다.


"하마야,

나처럼 가만히 기다려봐.

그럼 네가 찾고 싶은 걸 발견할 거야"

 

하마는 꼼짝도 하지 않고

연못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물이 맑아지면서

서서히 연못의 바닥이 보이고

바닥에 떨어진 잃어버린 한쪽 눈을 발견했다.


아난이

구하려 했던 맑은 물과

하마가

찾던 한쪽 눈알은 우리의 본래 마음이다.

 

평화롭고 자비로운 본래 마음은

멀리 딴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 내면에 있다.

다만

우리 마음이

매 순간 흙탕물을 일으키고

그 물을 억지로 가라앉히려고 허둥대다 보니

본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분노의 흙탕물이 일어날 때,

그저 조용히 마음을 응시해보자.

 

 

 

그래도 마음이 불안한가?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습관처럼

불안한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땐,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를 하나 떠올려

그 속으로 마음을 데려오자.

호수, 하늘, 나무, 숲, 자애,

사랑, 밝음, 관용, 고요함 등등.

영감을 주고 기운이 나도록 만드는 단어를 떠올리자.

 

 

아주 작은 아기 코끼리가 서커스단으로 잡혀왔다.

서커스 단장은

아기 코끼리가 하도 날뛰어서 작은 기둥에 묶어두었다.

아기 코끼리는 있는 힘을 다해

줄이 묶인 기둥을 뽑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직 힘이 약한

코끼리는 기둥을 뽑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코끼리는 큰 몸집이 되었지만,

여전히

작은 기둥에 묶여 있다.

왜?

코끼리는

저 기둥을 절대로 뽑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말 슬픈 이야기다.

 

 

혹시

지금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는 어떤 생각에 묶여

이 코끼리처럼

자신을 작은 기둥에 묶어놓고 있지는 않나요?

 

 

 

 

옛날에

티베트의 한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소와 하나가 될 때까지

명상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오매일념(寤寐一念)

그 화두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한국의 간화선(看話禪) 수행법과 비슷하다.

 

앉아서도, 서서도, 밥을 먹을 때도, 잘 때도

오로지 '소(牛)'만 생각했다.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자,

토굴 밖으로 나오라고 스승이 말했다.

수행자는

얼른 나오질 못하고 쩔쩔매었다.

 

 

"스승님,

토굴 입구에 뿔이 걸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우리의 무의식은

마치

나무에 박힌 못처럼 한번 박히면

누군가

노력해서 빼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하는 마음의 습관은

그래서

좀처럼 고치기 힘들다.

낡은 못을 빼고 새 못을 박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가진 낡은 생각의 틀,

마음의 습관부터 발견해야 한다.

내 마음자리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낡은 못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새 못도 박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명상은

마음에 박힌 낡은 못을 뽑아내는 일입니다.


 

          
                   산사의 바람소리 - 정목스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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