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라!]

2014. 4. 30. 17:0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728x90

[힘들 땐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라!]


 

힘들 땐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해 보십시오!
마음이 괴롭고 우울할 때, 걱정, 불안 근심으로 마음이 안정이 안 될 때,
자세를 바로 하고 합장하며,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해 봅니다.

 

 

무너지지 않는 자리,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된 자리,
언제나 희망만 존재하는 절대 진리의 그 자리를 생각하며,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워 봅니다.

 

 


불안에 휩쓸리지 말며, 암담한 미래에 붙잡히지 말며,
한사코 내 생명의 자리, 이미 모든 것이 원만히 끝난 마하반야의 그 자리를 불러봅니다.

 

 


이 때 염송하는 횟수는 한 번에 천념(千念) 정도가 적당합니다.
천념 정도 염송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 분 정도.
그 정도의 빠르기로 마하반야를 염해 보십시오.
(너무 빠르면 이런 경우엔 효과를 보기 어려움)

 

 

걱정, 불안이 밀려오면 그것을 붙잡지 말고 부처님께 바치며,
모든 두려움, 절망을 부처님께 드리고 나는 빈 몸으로 간다는 심정으로,
나는야 모릅니다, 부처님 당신께 모든 걸 바칩니다!
부처님 당신만 믿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어두운 마음, 올라 올 때마다 마하반야를 외치며 부처님! 다 가져가십시오!
라고 외쳐 봅니다.

 

 

그리고 끝없는 진리 자리, 끝없는 생명의 자리,
끝없는 밝음의 자리를 생각하며 거기에 마하반야를 갖다 놓습니다.

 


마하반야 마하반야 마하반야 바라밀!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마하반야바라밀!

 

 


부처님 우리 부처님!
오로지 저는 부처님만 믿고 갑니다!
부처님이 다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 고민 다 가져 가시고 오직 부처님의 무량 자비만 제게 피어나소서!

 

 

 


감사합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내 생명 진리 생명 부처님 생명!
마하반야 마하반야 마하반야 바라밀!

 

 

 


이렇게 한번에 30 분, 천념 정도 해 봅니다...

 

 

마하반야의노래.

쯔모루 09.02.23. 21:59
마하반야바라밀을 할려고 해도 습관적으로 관세음보살이 나오네요...나는야 모릅니다. 부처님께 모든 걸 바칩니다. 부처님만 믿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普賢
09.02.24. 11:13
관음이나 마하반야나 진리 실상에서는 똑같은 말입지요. 하지만 범부 중생의 경계에서는 단어의 영향을 받습니다.관음은 의존적이요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기대게 만들지요. 반면 마하반야는 스스로 타오르게 만듭니다. 자립적인 것이지요. 하지만 부처님 가피가 함께 함은 두 가지 모두 똑같습니다.

 

왠만하면 마하반야를 하시기를. 관음염불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세상은 부처님 가피도 중요하지만, 가피에 앞서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 내가 일어나냐 가피가 따라와요. 나는 일어나지 않고 일으켜 주기만 바라는 게 타력염불입니다. 실상의 자리에는 그런 게 없으나, 범부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 일어서기보다 자꾸 누가 나를 일으켜 주기를 원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마음에는 가피가 오기 힘듭니다. 스스로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가피가 오는 게 쉽지요. 그러니 마하반야를 권해 드리는 겁니다.

 

우리나라 일반 염불법은 조금 잘못되어 있어요. 이런 걸 지적하시는 선지식들이 없는데, 특히 정토염불은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광덕큰스님께서 마하반야염불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세간 속에..나 광덕큰스님 난에 가시면 마하반야의 가르침을 여러 가지 접할 수 있습니다. 읽어 보시길..._()_ 
 

시봉 이야기



구품화(九品華) 석경옥|우바이, 불광사


6. 현관문



지금은 보현사 요사채를 새로 지어 예전에 살던 낡은 건물은 없어졌지만 몇 년 전 큰스님께서 생활하던 낡은 집은 초라하기가 그지없었다. 수리를 좀 해 보려고 해도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를 낼 수조차 없었다. 특히 현관문은 낡고 부서져서 사람이 출입할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여간 조심하지 않고는 집이 들썩거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비단 현관문뿐만이 아니었다.



큰스님께서 계시던 요사채 전체가 지은 지 오래되고 햇볕이 들지 않아서 마루에는 여기저기 곰팡이 냄새가 났고, 거처하시는 방은 좁고 어두워서 낮에도 전깃불을 켜고 원고를 쓰곤 했다. 누가 보면 누추하고 초라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지만 큰스님은 조금도 불편해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했다. 괜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불만을 하고 불평을 토로했던 것이었다. 큰스님을 빙자해서 말이다.



나는 그날도 좀 늦게 절에 도착해서 대웅전에 참배 마치고 서둘러 큰스님 방으로 향했다. 문제의 현관문을 열고 마루에 올라서려는 순간 큰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집이 다 부서지는 줄 알았네. 무슨 문을 그렇게 요란스럽게 열고 들어와요? 방으로 들어오지 말고 다시 현관문 열고 나가서 조용히 들어와 봐요.”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달아오른 얼굴을 숙인 채 다시 밖으로 나가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처음보다는 소리가 덜 났지만 이번에도 괴상스런 소리가 내 가슴을 움츠러들게 하고 말았다. 큰스님은 처음과 같은 불호령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시 나갔다가 들어오는 연습을 해야 했다. 겨우겨우 몇 번만에야 간신히 그 낡은 문을 소리 없이 여는 기술(?)을 습득했다. 정말 진땀나는 일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큰스님께 문안인사와 베풀어 주신 귀하신 가르침에 한없는 감사의 예배를 정성껏 올렸다. 습관에 굳어져 그만 잃어버렸던 조심성과 어른 앞에서 갖추어야 하는 예절을 되찾아 주신 존엄하신 진리의 스승님을 다시 우러렀다.



나이는 들었어도 천방지축으로 생각 없이 엄벙덤벙 살아왔고, 평소 경망스러웠던 성질을 그때서야 또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제멋대로 굳어 버린 나의 두터운 껍질을 벗겨 주신 은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교할 바가 없다. 돌아보면 그때는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철없이 날뛰던 나를 곡진하신 자비심으로 이끌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형언할 수가 없다.

이제 언제 다시 큰스님의 자상하신 보살핌과 인도를 받을 수 있을까. 차라리 큰스님 계실 때 꾸지람이라도 많이많이 듣기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마저 솟아오른다. 한번 스쳐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가르침의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경망스럽기 짝이 없던 내가 선세에 지은 선업이 조금이라도 있었기에 그렇게 훌륭하신 큰스님 밑에서 배움을 얻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8권-인천(人天)의 안목, 글-송암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