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불안과 공포 / 일붕 서경보 큰스님

2014. 6. 11. 20:2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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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불안과 공포    / 일붕 서경보 큰스님

 

   

      인간이 자기 속에 무한하고 완전,원만한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한하 환희와 희망을 부여해 주는 것이지만은 이와같은

무한,완전한 불성을 발휘할수 있는 희망을 과연 실현 시킬수가 있는 것일까?

 

 결코 그것을 실현할수 없다는 이유는 없다.  농부가 뿌리는 씨앗은 반드시

그것이 생장하여 열매를 맺을수 있는 옥토에 뿌리는 것으로서

그것이 자랄수 없는 메마른땅에 뿌려진다는 일은 없다 .

 

여러분들속에 불성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는 그 자체가 그 씨앗의 성장과

결실을 약속하는 것이다.부처님이 설파하시 인과의 법칙을 알았다면

이를 믿지않으면 안된다.여러분이 가능한것은 ' 된다' 고 확신하는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후에는 결의가 필요하다. 여러분들 앞에 가로놓인 장애는

심적인 것이다. "안된다 ' 고 생각하는 장벽 ,우유부단이라는 장벽,불신,

불결단,의지박약의 장벽,이와같은 장벽을 타파할때 비로소

불성발현의 개가가 오르는 것이다.

 

자기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이 동시에 '타인멸시'의 관념을

수반하게 되면 그것은 도리어 자기내재의 불성을 가지고 생장시키고

결실케 하는 방해가 된다 . 자기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면 동시에

모든 인간도 불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과  존재하는 모든것은 모두 내성을

가지고 있다 . 그 내성에 있었서나 본성에 있었서 서로 형제인것을

자각해야 할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었을때

' 유정비유정 동시성도 산천초목 국토실개성불  '  이라고

만유를 찬탄한 것처럼 일체의 情이 있는것과 정이없는것을

예배하는 심정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 심정에 도달했을때 여러분은 만유일체아 조화되는 것이다. 만유일체와

조화되었을때  만유일체로 부터 축복받으며 만유일체가 여러분에게

줄수있는 혜택을 받을수 있다. 잘 받아 들이수있는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마음이 좁아서 오직 남의 결점만을 헐뜯고

비난공격하고 부러워 질투하는 惡情이 타올라서

 

피투성이 투쟁을 일로삼을때 ,인간은 자기내재의 불성은 그 쟁투정신에

 흐려져서 그 불성의 씨앗은 분노,질투,증오 의 독까스를 맡고

질식해 버리는 것이다. 인생의 불안은 어느 시대이고 존재하는

인류의 병이다.개인간의 갈등이나 가정의 다툼이나 국가간의 분쟁도

그것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일생의 불안을 극복할수가 있다면 이 지상에는 바로 평화로운

세계가 될것이다. 불안이라는것은 대체로 미래에 일어나는 불행,손실,

질병,평화 등에 관련되어 일어나는 것이며, 낙천적인 사람은

그다지 불안,공포에 괴로워 하지 않으나

 

신경질에 비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직 그 불행이나 질병이

닥쳐오기 전부터 그것들이 닥쳐올것을 예상하여 그것을 마음의

세계에 까지 실물이 찾아온것 이상으로 과대하게 느껴져 괴로워 하는것이다.

 

 이 불안과 공포라는 병은 조그마한 마음의 간격으로 부터 들어온다.

가정의 마찰, 경제의 변동,침략의 소문, 누군가가 말한 중상,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이런 것이 필연적으로 자기를 불리한 경지에

빠뜨릴지모른다는 불안 . 그것이 병원체의 포자가 되어

 

인간정신의 전체에 침식하는 것이다. 대체로 새로운 계획에는 반드시

불안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겁쟁이는 큰 사업의 계획자는 될수없다.

아직보지못한 세게는 행복을, 그리고 극락정토를 그리는 사람만이

참으로 미래에 큰 사업을 이룩할수 있는 사람이다.

 

불안을 그리고 공포를 품는것은 주로 마음의 문제로서 사건 그 자체,

외계 그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신앙심이 없으면 의심하는

 마음이 불안,공포의 원인이다. 이 나쁘게 보이는 것도 결국

선한것의 새싹이 된다.

 

이 세상에 선인은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쁘게 보는것은

보는 쪽의 마음이 반영되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므로

이쪽의 마음만 일전하면 반드시 착해지게 마련이라는 진리를 모르는데서

불안,공포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 반대로 이 세게에는 惡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믿기만 한다면 불안과 공포는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것이다.따라서

결국 불안,공포는 신앙의 결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할수있다.

 

올바른 신앙을 참으로 갖도록한다면 불안공포는 자연히 해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불안공포의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자기가 상대 ,

즉 외계 , 경적境適 등의 것도 있으며 특정한 인간의 것도 있다.

 

보다 힘이 약해서 그것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짓눌러 버릴는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뿌리를 박고있는 것이다.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열등감이라고

할수있다 .자기속에 '무한한 힘이 내포되어있다'

 

또는 '자기는 언제난 적의 두 배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는 자신을

가질수있다면 당연히 그와같은 불안공포는 소멸되어야할 성질의 것이다.

다행히 근대심리학은 ,현재의식의 밑바닥에는 잠재의식이라는

넓은 영역의 의식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넓은 영역의 마음속에는 무한한 힘이 내포되어 있다는것을

밝혀준것이다. 잠재의식은 과거의 어떤 작은일이라도 기억하고 있으며

,또 경험하지 않은것이라도 알고있으며,위기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가 하는 신통자재한 힘을 가지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의식은 '무한한힘'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주어진 역활을 바로

수행할 뿐으로서 그 이상 적극적으로 자진하여 작용하여 아무 일이나

하지는 않는다.그것은 무한한 에너지 이지만 우리들 자신이 자각되는

마음으로 모형을 제공한 것과같은 모양의 상태가 되어

모습을 나타내 주는것이다.

 

그 사람이 만약 현제의식에 '손실 '의 생각을 일으켜서 그것을 잠재의식에

전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내부에 있는 잠재의식적 에너지는 공포의

감정을 일으켜 마침내 현재의식이 마음에 그린 바와 같은  '손실 ' 을

 현실화 하게 된다.가령 어떤 큰 사업을 하는 상인이 많은 상품을

창고에 넣어두었다고 하자 .

 

그런데 시국의 영향을 받아서 상품의 가겻이 폭락하기 시작했을대 ,

그 상인은 놀라서 '손실 '의 관념이 마음,현재의식에 떠오른다 그러면

그 현재의식의 '손실'의관념이 내재하는 잠재의식면에 떨어져 버린다.

 

잠재의식은 '손실'의 관념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 공포 '의 감정을

불러 일으켜서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를 혼란한 폭발력으로

그 사람의 행동이 지배되기때문에 그 사람은 당황하여 창고속의

상품을 싼값으로 팔아버린다.

 

그와같은 시국적 환경속에 있으면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공포상태로 던져버린 상품을 극히 유리한 조건으로 매점하여 거부가

되기도 한다.공포라는 것은 잠재의식에 발현된 에너지의 혼란된

폭발이므로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따라서 사건에 대하여

 

적당한 판단을 하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손실 ,패배, 질병의 현재의식이

그려져 잠재의식의건반을 두드리는한 ,잠재의식의 금선은 공포의 가락을

연주할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공포의 감정을 연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식이 손실이나 패배나 질병을 그리지 않도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불안공포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식인 손해,패배,질병을 마음에 그리지 않도록 마음의 왕국을 지배하는것이 필요하다.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진리를 아는일이다이것은 일체의 나쁜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한마디로 실상을 말한다.가상에 속하는

육체의 눈으로는 보고 들을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육체의 눈과 귀로 보고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설명할수가 없다. 진리란 절대의 권위를 가지고  자주적이고 아무것에도 속박되지않는 자유인 이라는 실상이다.

 

실상의 세계에 있었서는 이에 인간은 자유이기때문에 가상세계나

이상세계에서 그 자유를 휙득하기 위해 싸울필요는 없는 것이다.

현상의 相이 아무리 묶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실상은

묶여있지 않는 것이다.묶여있지않는 상태 ,해탈의 상태를 佛 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으 실상은 부처인 것이다. 현상인으로서는 자각으로부터

실상인으로 다시 태여나는것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가는곳을 알기보다는 더욱 보기 어려운

 '실상으로서의 인간' 을 알지못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을 만났을때 ,모든 불안과 공포가 일소되어 버린다 .다시 한마디로

말하자면 진리, 즉 실상을 깨달았을대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다.

비근한 예이지만 이런일이 있다 .

 

신념이 두터운 중년부인이 불공을 드리고 해가져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절의 마당에서 개구리 한마리를 밟아죽였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살생을 했노라고 후회하고 염불을 외고 하였으니

워낙마음이 착하고 어질며, 신심이 두터워  잠을 이루려고 해도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밟아 죽인 개구리를 날이 새면 달려가서 묻어라도 주었야 겠노라고 

마음을 먹고 새벽에 절로 찾아갔다 . 어젯밤에 개구리를 밟은 자리에

가보니 개구리는 없고 섞은 오이 반토막이 짓밟혀서 오이씨가 터져나와

있었다. 그 부인은 그제야 어둠속에 밟은 것이 개구리가 아니라

 

섞은 오이였음을 깨닫고 마음을 놓았다 .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바와같이 실상을 깨달으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일에 실상을 파악하고 가상에 얽메여 불안과 공포에 괴로워 하고있다.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2권 

 "선이란무엇인가 "에서 발췌

 

 

   

마음의 메아리 /  법정스님

 

내 마음이 따로 있고 네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은 모두 하나이다

한 뿌리에서 파생된 가지가 내 마음이고 당신의 마음이다

불우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 함께 눈물짓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눠진 한 쪽 가지가

아파하기 때문에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메아리이다.

 

 

불성 (佛性)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물질적 이합집산일 뿐,  불변하는 것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 불법(佛法)은 영원한 부처의 성품, 즉 불성을 제시한다.  

불성이란 변하지도 윤회하지도,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도 않는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이다. 

 

모든 생명의 어디에도 잠재해 있는 것이다. 

이는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성품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성은 우리들의 없에너지에 가리워져

깨끗하고 고아한 본래면목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닦는 이라면 (若眞修道人)

 세상의 허물을 보지 말고        (不見世間過)

마땅이 자신의 허물을 보아라  (當自見己過).

 

 

My heart will go on(타이타닉 OST) - Celine 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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