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1. 20:35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아래부분 녹취의 청화큰스님 동영상 (사진출처: 성륜사 청화불교대학 본정법사님께서 개설하신 mujuch.com 금강카페에는③ 영상법문 보기 http://cafe.daum.net/vajra/30QH/230 에 게시되어 있다.) 수행자는 어떤 힘으로 일어설까. 청화 큰스님 | |||||
“…시련을 빨리 떠나야 쓰겠다. 그런데 그런 시련이나 고난 등은 절대로 무의미한 고난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 그런 것이지 안다고 생각할 때는 어떠한 고생도, 자기가 아픈 것도, 또는 (?) 것도. 심지어는 죽어서 가는 것도 이것도 의미가 다 있단 말입니다. 죽어서 가면은 그냥 그것은 아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내 생명 끝이 아닌가.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끝이 아니라 죽어지면은 다시 다른 생명의 새로운 생명을 또 받는단 말입니다. 따라서 죽음 자체만 해도 그것은 손해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성품을 미처 못 보고 겉만 보기 때문에 겉에서, 중생 속물 차원에서 분별하기 때문에 손해다, 이익이다 하는 것이지. 본 바탕에서 본다 생각할 적에는 어떤 고난도 절대 손해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 고난에 처해 있는 우리 불자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은 위선을 지극히 싫어합니다. 다 부처님 말씀을 저는 옮길 뿐입니다. 제가 지어서 드리는 말씀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의 바이블도, 바이블도 어떤 고난이나 시련이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총이란 말입니다. 정말 은총인 것입니다. 맹자도, 맹자도 말하기를 하늘이, 하늘이 우리한테, 우리한테 큰 소임을, 큰 행복이나 큰 복이나 줄라고 할 적에는, 큰 복이나 큰 소임은 그냥 경륜이나 시련이 없이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한테나, 저마다 어느 누구한테나 내뱉는 말씀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역시 뭐라 해도, 우리가 경험도 많이 하고, 또는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고 말입니다이. 어려운 고난, 어려운 것을 해가지고서, 그래가지고서 우리가 무거운 소임을 맡아서 능히 감당한단 말입니다이. 그러기 때문에 맹자님 말씀도 하늘이, 하늘이 인간에게 무거운 무거운 그런 소임이나 또는 막중한 그런 행복을 줄라고 생각할 적에는 먼저 고난도 고난을 먼저 주고서 그 마음을 공고히 다진다 이리 말씀했단 말입니다. 꼭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고난 그러믄 우선 우선 싫어한단 말입니다. 고난으로 해서 우리가 얼마나 얼마나 인생을 많이 배우는지 모릅니다. 고난으로 해서 우리 인생이 얼마만치 무상을 느끼고, 행복스런 사람들은 절대로 무상을 못 느낍니다. 헤어져봐야 쓰고, 실패도 해봐야 쓰고. 아파도 봐야 쓰고, 그래야 무상을 느낀단 말입니다. 허무와 무상을 느끼는 것이 이것이 얼마만치 우리 생명, 우리 생명의 양식인지 잘 모른단 말입니다이. …(중략)… 의 제자니까 빈틈없이 공부를 했겠지요. 그러나 정작 자기 생명의 본 고향에 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은 그런 분도 못 했거니 우리는 그렁저렁 살면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자포자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은, 가는 길은, 성불의 길을 피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게으름부려서 잘 안해도 제법 그렁저렁 그래도 무던히 행복헌데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지마는 그 행복이 오래갈 수 없습니다. 오래갈 수 없고 또는 그 행복이 완전할 수 없고 말입니다이. 그렁저렁 살았다가는, 금생에는 그렁저렁 넘길랑가 모르겠지마는 그냥 죽을 적에, 죽을 임시에는 그렁저렁 사는, 그렁저렁 산 그런 업장 가지고서 또 내생가서 할 수 없이 우리가 생을 산단 말입니다. 몇생을 되풀이해서 되풀이해서 고생고생하다가, 종당에는 또 우리가 성불을 안 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이. 몇만생 헤매도 역시 성불되는 것입니다. 본래가 부처기 때문에 꼭 성불되는 것인데 금생에 안해놓으면 그와같이 된다 말입니다. 또 기왕에, 기왕에 성불할 바에는 금생에 해치워버린다. 금생에 해치우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바꾸어져야 씁니다. 바꾸어져야. 우선 마음을 바꾸어서, 우리 의식을 바꾸어서 말입니다이. 의식을 바꾸어서 제가 서두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여실지견이라. 실다운 지혜를 우리 지혜로 한다 말입니다…” (청화큰스님 1992년 7월 5일 태안사 정기법회 동영상 27~31분) | |||||
..세상은 대체 어디로 치닫는 것일까. 크고 작고 가깝고 먼 뉴스들 때문만이 아니다. 작은 가정인데도 복잡다단한 현실과 끈을 갖게 되니 새로운 일들이 늘 일어났다. 나로선 작년말부터 계속, 특히 처리해야 할 공문서들이 홍수처럼 몰려와 머리카락이 빠지는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이런 것도 어디한번 해보실텨? 스피딩티켓도 받아 온라인 트래픽스쿨 시험까지 봐야 했다ㅡ.ㅡ..
세상의 방향은 조금씩 나빠져가고 있다고 하지만, 청화큰스님께선 그래도 발전하고 있다 하셨다. 현대물리학에서 입증한 바 물질의 본질이 에너지 광명인 것은 곧 불교의 광명이며 불성과도 일치하는 것이니, 그것을 지닌 인간이, 인간의 역사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고 하신 것이다. (정통선의 향훈 p336)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해도, 세월호의 충격은 계속이었다. 지난 4일 부처님오신날, 미 북가주 산부르노 여래사. 세속인보다 거풀이 거푸 벗겨져 너무도 얇을 막을 가지신 젊은 비구니(소원)스님은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보다 몇배나 심하게 할퀴어진 모습이었다. 잠을 못 들고 눈이 짓무를 정도로 내내 울었다 하셨고, 매일 홀로 극락왕생기도를 올리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 이미 목이 걸걸해 있으셨다. 그 날 한 혼혈자녀가, 여래사에서 보호하는 우리모두의 자식으로 잘 자라나고 있음을 알리는 기특한 ‘아리랑’ 피아노를 연주할 때, 난 평정을 잃고 마음이 좀 고달프단 생각을 했다. 나 혹 한국사는거 아닐까 스스로 착각할 정도로 온라인 금강에서 시공 떠난 마음의 생활을 하지만, 그 선율을 듣자 문득 아 내가 멀리 와 있구나 느꼈다. 미국 생활.. 겉보기는 우아하고 멀쩡하게 서 있지만, 그렇게 몇초간 서 있기 위해 너무도 많은 준비와 노력과 댓가와 책임(+플러스 공문서!)이 전제되어야 했다. 뜬금없이 일의 전후를 추리 못할 일들이 발생할라치면 미국생활 10년이 넘었어도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처럼 아뜩한 심정이 된다. 많은 보호를 받으며 공으로 사는 듯한 내가 이런 정도니, 열악하신 사정의 다른 분들은 오죽하랴. 고달픈 건 여기도 마찬가지야~ 하고 한국에서도 말씀하실 것이다. 마음의 고향을 중심에 두고 늘 안심 속에 평화로움을 갖고 사는 것만이, 평생 고달픔만을 안고 사는 실향민과 같은 삶이 안되도록, 헛돌게 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린 좀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청화큰스님께선 말씀하신다.
...5월 보리방편문 모임을 가졌다. 산호세 수선회 선방에서 4분이 모였다. 시간이 계속 조율되면서 정기공부모임으론 얼추 두 달만이었다. 도착해 그간 각자 달리 산 모습을 나눴다. 모임은 오랫만이었지만 각자 공부 안에서 구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뭘할까 물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반야심경 약해(링크)와 보리방편문(링크) 합송을 끝내니, 문득 드는 생각이, 대개 불자들 정진모임들이 시간이 흐르면 결국 친목모임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대로 정진모임으로 지속하려면 참으로 많은 복과 노력이 따라야겠구나였다. 마침 자성법사님께서 금강심론 강독과 함께 좀더 정진분위기로 나아가자고 제안하신다. 오온五蘊 중 색色이 공空함 부터 대입하기 위해 좌복시간을 길게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사리자舍利子야, 색불이공色不異空이요 공불이색空不異色일새 색즉시공色卽是空이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 사리자舍利子야, 색色이란 공성空性의 여여상如如相으로서 색체色體가 별유別有함이 아니오 공체空體의 환화幻華일새, 색色이 공空과 불이不異하고 공空이 색色과 불이不異하야 공空 그대로 색色이오 색色 그대로 공空이라 … 금타대화상의 반야심경의 약해 중/ 금강심론 p51)”
...모임이 끝나 모처럼 삼보사에 내려갔다. 자갈명상길에서 여경보살님께서 그러신다. 보원보살은 작은 걸 배워도 참 크게 좋아해~. ..그랬다. 흐뭇하게 배운 것이 있었다.
“우린 대체 무슨 힘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의 구체적인 답이었다. 꺠어나 눈뜨기 싫을 정도로 현실이 괴롭지 않고서는, 어제/오늘/내일 상황이 똑같다는 사실이 끔찍해 숨막히는 절망의 상황을 절절히 느껴보지 못하고서는, 이 질문은 좀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불자수행인은 무슨 힘으로 일어설까.
결론은 결국, ‘습習’이다. 몸 따라 마음이, 혹은 마음 따라 몸이 출렁일 때, 청화큰스님 법문공부를 하는 우리는 늘 아미타불阿彌陀佛 염불이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으로 요동을 다스리니 별 문제 없겠지만, 종교와 상관없는 일반인들에게 몸의 패턴의 바뀌는 때, 도반님들 표현대로 몸과 마음의 지진(다른 말로는 갱년기)으로 점점 몸의 기운이 작아질 때, 또는 타격으로 심신이 다운이 될 때, 우선 몸이 먼저 일어나 산을 가거나 절수행을 하면 심신이 180도가 바뀌는 패턴을 알게 된다고 J보살님께서 얘기하신 덕분이었다. ‘절’! 난 몸이 굽혀지니 마음도 따라간다는 하심下心만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 내려갔으나 맨바닥을 박차고 그대로 일어날 줄 알게 하는 습이었던가! 내려가면 일어나고, 또 내려가면 일어나는 이 몸의 컨트롤은, 주저앉음에서 지체없이 서게 만들어주는 수행인의 내공이었다.
또 하나는. ‘걸음(포행)’의 재발견이었다. 카멜삼보사 토요저녁 참선시간,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가르쳐주신 대만 주지스님의 정숙포행(위파사나 포행)방법이었다. 1. <!--[endif]-->입을 제대로 다문다 (절로 앞니 뒤로 혀가 말아올라가지게 됨을 알 것이다). 눈은 정면보다 약간 위를 응시하고 특별한 사물에 촛점을 맞추지 않으며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비추도록 한다. 손은 앞으로 모으던 뒤로 모으던 편한대로 한다. 2. 서서히 숨을 들이쉬며 오른발을 떼되 다리가 아닌 골반대퇴부로 움직이는데, 자기 발바닥 사이즈보다 작게 숨만큼의 시간동안 천천히 무게중심을 옮겨놓는다. 3. 이제 숨을 내쉴 차례. 역시 발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만큼 왼발을 떼되 다리가 아닌 골반대퇴부로 움직이고. 특히 이 내쉬는 때엔 모든 것을 다 내버리듯이, 온전히 하심하듯이 하는게 중요하다 강조하셨다. 이렇게 포행하면, 법당 한바퀴에 15분~20분 걸릴 것이다 하신다. ..과연 그랬다.
호흡과 맞춰 골반으로써 다리를 움직이려니 매우 익숙치 않아 법당 바닥을 죄 양말로 닦아놓았지만 그렇게 내내 집중하니 망상의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한바퀴 후 좌선 (합해 한시간). 시계가 댕~하니 일어나서 또 한바퀴 후 좌선. 하루 단 한 발자국이라도 이렇게 걸음딛기를 잊지 말고, 오른발 떼며 들이쉴 때엔 일어서는 용기를, 왼발 떼며 내쉴 때엔 한티끌도 남김없는 하심을 염두에 둔다면 장차 이 작은 각도가 인생에 얼마나 큰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생각만도 놀라웠다.
..그간 매달 한번은 후기, 여의치 않으면 일기를 올려 도반님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지난 4월은 남가주 금강선원 얘기와 현각스님 법문 등 청화큰스님과 관련한 단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한없이 비끄러져 결국 손을 들었었다. 그것을 멈추게 한 것은 경주법사님의 ‘약사여래의 서원誓願, 2014년 2월 20일 한국종교방송; 그런데 서버에서 없어졌네요)’ 법문 중 한 대목이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부처님 때도 그러한 일(비극적이고 엄청난 사건들)은 늘 존재했다는 말씀이셨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꽂혔다. 곰곰했다.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그 고난(망상)의 자리에서 정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일 터였다. 결국 위의 청화큰스님 말씀처럼, 막중한 행복을 얻기 위해 감당될 그래서 그대로 전환될 힘을 얻고자 한다면 닥친 고달픔과 고통이 무언지 제대로 직시할 일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이 눈 깜짝할 새이기도 하지만, 과정이 막상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늘 이 모습을 염두에 두라시는 듯, 책 속 청화큰스님께서 직접 동영상으로 살아나시는 ‘바로 이 자리’ 모습을 종종 떠올린다. 아래처럼 기사 후 친절히 적힌 괄호안 스케치 덕분으로…. (인터뷰가 끝난 시간은 오후 2시, 스님은 곧바로 좌선에 들어 무심삼매로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정통선의 향훈 p316)
찬란한 빛을 받다 그대로 빛이 되어버린 내 책상 앞 나무꽃
|
무정물이 되면 불성은 어디에 있나? / 설정스님 (0) | 2014.06.18 |
---|---|
산은 산, 물은 물 (山是山 水是水) - 청화큰스님 (0) | 2014.06.11 |
자신이 만든 불안과 공포 / 일붕 서경보 큰스님 (0) | 2014.06.11 |
바로 알고 바로 보십시오 /청화큰스님 (0) | 2014.06.04 |
절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나? (0) | 2014.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