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山是山 水是水) - 청화큰스님

2014. 6. 11. 21: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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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 물은 물 (山是山 水是水) - 청화큰스님

 

오늘은 여러분들이 들어서 잘 아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씀을 두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성철(性徹) 큰스님이 지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무엇이나 우리가 근거를 알아야 엉뚱한 소리를 않습니다. 이 말은 성철스님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돈오돈수(頓悟頓修)는 성철스님이 만들고 돈오점수(頓悟漸修)는 보조스님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피상적으로 수박 겉핥기식의 싸움이 몇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깊은 뜻도 있겠지만 쉽게 소박하게 말하면, 돈오돈수란 것은 성철스님이 맨 처음 말한 것이 아니고 육조단경에 벌써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명문으로 나와 있는 말입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도 보조 국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불교 전반적인 흐름이 다 돈오점수입니다.


그러면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다른 것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돈오돈수라는 것은 우리 중생이 너무 높낮이를 따지고, 계급을 따지고, 이것저것 따지니까 단박 따지지 말고, 앞뒤ㆍ고하를 가리지 않고, 마음에 부처님자리만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이 돈오돈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돈오점수는 우리 중생이 본래 부처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즉 먹는 것이나 무엇이나 이것저것을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너무 본질만 따지고서 형식을 무시하고 차서(次序)를 무시하는 사람한테는 돈오점수를 얘기해서 점차 닦아 올라가는 것을 말해야 하겠지요. 도인들은 그야말로 선()ㆍ교() 방편이라 기가 막히게 그 사람의 정도에 맞게 말한 것을 우리 후대인들은 그걸 모르고 돈오돈수는 옳고, 돈오점수는 그르다, 또는 그 반대로 말을 합니다.


성자의 말을 가지고 범부들이 싸우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 법문이나 예수님 말씀이나 성자의 말이란 것은 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중생의 근기 또는 시대에 따라서, 거기에 걸맞게 중생 제도의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말씀입니다. 이것이 삼반견해(三般見解), 즉 세 가지 견해입니다.

 

山是山 水是水

산시산 수시수


老僧三十年前 未參禪時

노승삼십년전 미참선시

見山是山 見水是水

견산시산 견수시수

乃至後來親見知識 有入處

내지후래친견지식 유입처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견산불시산 견수불시수

而今得箇休歇處 

이금득개휴헐처 

依前見山祇是山 見水祇是水

의전견산지시산 견수지시수

大衆這三般見解是同是別 

대중저삼반견해시동시별 

有人緇素得出 許與親見老僧

유인치소득출 허여친견노승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卷23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지도(智度) 또는 도피안(到彼岸)의 지혜, 곧 실상(實相)을 깨달은 지혜로써 생사의 차안(此岸)을 건너 해탈(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배나 뗏목 같으므로 도피안이라 합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말은 벌써 중국 송나라 때 불교 내에서도 그와 유사한 것이 있었으나, 정식으로 쓰인 것은 송나라 때 청원 유신(靑原惟信) 선사 때부터입니다.


이분도 위대한 분입니다. 이 분도 몇 십 년 동안 공부를 해가지고 비로소 이런 견해를 터득한 분입니다.

 

Pablo Sarasate (1844~1908)

1. Zigeunerweisen (Aires Gitanos), 집시의 노래  Op. 20  7'52
2. Caprice Basque,  바스크 기상곡 Op.24   5'56
3. Danzas Españolas, Op.22  No.3 Romanza Andaluza,  4'17
스페인 무곡 제3번 안달루시아의 로망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