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양식, 보현행원/현석스님

2014. 8. 6. 17: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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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gunri, iksan  

 

삶과 죽음의 양식, 보현행원

-현석스님

 

 

 


 

디어 극락전 연지에 수련이 피어 올랐다. 못 가득히 여기저기서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띈 흰 꽃들이 황금빛 꽃술을 머금고 푸른 잎 사이사이 살며시 올라와 생명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암으로 고통 받다가 세연世緣을 달리하신 분들을 여러 차례 접하다 보니 남의 일로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 고민을 해 보았다.

 

 

 

막상 어려움에 당면했을 때 본인이나 주변 사람의 입장으로는 어떻게 힘을 쓴다는 것이 망막하게 느껴진다. 의술에 맡기든가 아니면 기도를 하는 정도가 고작이요, 강물이 서로 알지 못하고 바쁘게 흘러가듯이 남의 일로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겨우 심마니 같이 심산유곡으로 산삼을 찾아 다녀볼까 하는 생각을 내면 기특한데 그것도 정상적인 일상의 틀을 벗어나야 가능하지 그렇지 않고는 무리이다.

 

 

 

병들어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 세상의 누가 질병과 죽음을 비껴 간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시황제도 불로초를 얻어 영원한 생명을 구하려고 했으나 결국엔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도연초徒然草>의 구절이 떠오른다.

 

“어리석은 사람은 임종이 다가오는 것을 슬퍼하는데 이는 언제까지나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물이 변화한다는 이 법을 간과한 때문이다. 환상처럼 덧없는 일생 동안에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묘를 뒤덮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사라질 줄 모르고 늘 그대로 반짝이며, 화장터에서 연기가 흩어질 줄도 모른 채, 사람의 목숨이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머문다면, 아마 애련의 정서 같은 것도 없으리라. 이 세상이 무상하다고 하나 바로 그 무상한 점이 좋은 것이 아닌가?”

 

 

 

죽음은 역시 인생의 대사大事답게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회피해선 안 되고 누구에게나 자다가도 들이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우선 순위로 준비해 두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냥 살다가 죽으면 그 뿐이라는 사람은 부처님과의 인연을 스스로 끊는 것과 다름 없다.

 

 

흔히 “극락왕생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정해져 있고,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요즘 들어 장례에 대한 개념이 많이 부각되어 장례식장이다, 지장상조회다 해서 장례문화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실정이다. 또한 대학원에 장례문화학과까지 개설되고 있는데 잘 살펴보면 정작 죽은 이에게는 좋다는 안동포 한 벌 정도 입힐 뿐이지 다 산 사람들을 위한 치장이다.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봐도 죽은 자에게는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어디 죽은 자를 위해서 보험 혜택으로 극락행 표라도 지급되는 것을 봤는가? 신경 써야 될 주인공은 바로 죽은 자인데… 죽은 자가 중음신으로 가만히 장례식장을 살펴보면 서운한 생각도 들고 집착도 생길 것이나 갈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좋다.

 

 

 

보통 죽은 이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다 돌아가신 호상인 경우는 자연스런 분위기인데 반해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별안간 당한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도 어이가 없어 난처해하며 들이닥친 변고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우왕좌왕하는 게 다반사이다. 이렇게 슬퍼하기만 하고 정신 없는 사이에 누가 제대로 영가의 앞길을 헤아려 주겠는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정성을 다해 연고자들이 독경이라도 해 드리면 물론 공덕이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명을 달리하기 전에 본인이 직접 마음을 내어 염불을 한다면 더욱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불자들의 몫인 것 같다.

 

 

싯달타 태자는 성을 넘고 출가 수행하여 2,500년이 넘도록 건재하게 법왕法王의 지위를 누리면서 사람들에게 모범 답안을 보이고 계신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가르침 가운데 중요한 것의 하나가 삶에 대한 체념의 자세이다. 체념이란 괴로운 현실 앞에서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염두에 두고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그대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바쁜 현대인들이 손쉽게 ‘삶과 죽음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 길 떠날 때 미리 배낭을 꾸리듯 평소에 “이 세상 모든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찬탄·공양·청법·수학하며, 오래 머물러 주시길 간청하고, 자기 업장을 참회하며,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고, 중생의 뜻에 따라주며, 널리 회향함”의 보현십원을 외워보라.

 

 

 

그러면 “세상에서 살 때는 공중의 달이 구름의 가림을 벗어나듯 장애가 없을 것이며, 임종하는 최후 찰나에 육신은 다 흩어져 어느 하나도 따라오지 않되 이 열 가지 원은 서로 멀리하지 않고 아무 때에나 선도하여 순간에 극락세계에 왕생하리라”고 한 《화엄경》〈보현행원품〉의 구절과 같이 어두운 밤길에 갈길 몰라 저승사자에게 질질 끌려가지도 않고 아무 막힘 없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

 

 

 

보현십원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실천함이겠는가?

청암사 승가대학 계간지인, '청암'에 실린 글입니다.

 

 

 

 

고려 시대 화엄의 대종장이신 균여 대사가 민중들에게 보현십원을 노래하게 하여 병든 자가 암송하여 병이 나았다거나, 사람들의 입으로 전파되어 담벼락에 종종 쓰였다는 《균여전》의 기록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균여 대사는 민중들에게 골치 아픈 교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장롱 면지로 묵히게 하지 않고 기본 상식과 운전 실기만으로도 먼길 가는데 무리가 없도록 잘 선도해 주셨다.

 

 

 

이제 고통 바다 살고 있는 우리 불자들이 안락한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관건은 보현행원의 장거리 연수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普賢 07.02.11. 00:42
죽음에 이르러 단지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죽은 자가 하늘나라에 잘 살고 있다고 믿는 것도 얼마나 자기 중심적 사고인지...실상을 알면, 감히 살아 있을 때 함부로 살지 못할 것을... 실상을 알면, 함부로 죽지 못할 것을...
 
현우 07.02.11. 01:20
화엄은 정말 어렵고도 또 지난합니다. 일체만상이 다 부처님인데도~ 부처님 말씀 이해하기 어려우니 어려움 중에 또 어려움을 느낍니다. 커다란 한 바가지 물을, 넓고 큰 계곡에다 흩뿌려도 아무런 흔적 하나 남지 않건만, 그 물방울 방울방울마다 부처님 참뜻이 가득합니다. 행으로 또 행하면서 ^**^보현행원 한 길을 걸어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普賢
07.02.11. 08:08
세상은 어려운 게 하나도 없어요. 중생의 자리에서 보면 천지가 벌어지고 어려운 것 투성이이지만, 부처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됩니다. 그럼 나는 왜 못 보느냐? 내가 중생이다, 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그래요.
너무나 많은 세월을 상처 받은 탓에, 우리는 못난 중생이란 생각에 세뇌되 어 있습니다. 그러니 안 보이는 겁니다. 내가 부처다! 나는 모르는 게 없다!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선이요 화엄입니다. 보현행원을 하다 보면, 내가 본래는 부처였음을 알게 되요. 그래서 부처성(佛性)을 점점 회복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에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밝게 떠 오르게 되지요. 마음의 달이 뜨는 겁니다. 보현행원의 길을 가겠다는 그 마음, 꼭 잊지 마시옵소서...

 

 

자연이 들려주는 말 / 척 로퍼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당하게 서서 열매를 맺으라

안으로는 이겨내고 밖으로는 유순하게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라

경계와 울타리를 넘어서 날아 오르라

 


 

태양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생명들을 돌보라

너와 따스함이 다른이에게 스며 들도록

 


 

냇물이 흐르는 말을 들었습니다

천천히 흐름을 따르라

순응하되 머뭇거리거나 두려워 말고


 

작은 풀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겸손하라 그리고 단순하라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도 소중히 여기며

 

 


 

 

  

화(禍) / 정목 스님

 

 

우리의 내면엔 부자도 살고 있지만

도둑도 거지도 살고 있습니다

마음의 거지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마음의 도둑 또한 만족할 줄 모릅니다

 

불길같이 일어나는 화는

마음의 도둑,  마음의 거지들이 일어서는 것입니다

숨은 채 웅크리고 있던 그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일어설 때 저항하지 마세요

지긋이 바라보며 그들을 향해

"화가 났구나,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하며

토닥거려 보세요

화는 저항할수록 커지지만 토닥거리면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