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출가 / 선과 교

2014. 8. 20. 18: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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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이 참 출가이다


示衆云 似地擎山不知山之高峻이며 如石含玉不知玉之無瑕

若能如是하면 是眞出家니라


반산보적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다.

“땅이 산을 들어 받치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하고,

돌이 옥을 머금고 있으나 옥에 티가 없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만약 능히 이와 같으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니라.” - 직지심경


해설 ; 출가인의 정신세계를 말씀한 내용이다.

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그것은 땅이 받쳐주기 때문에 높다. 그러나 땅은 산을 그토록

높게 한 그 공을 아예 모른다. 무심할 뿐이다.

옥이 아무리 티가 없는 명옥(名玉)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돌이 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 이와 같은 공이 있더라도 돌은 그것을 모른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이 아무리 큰 공덕이 있고 수행을 많이 쌓았더라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하고 계행을 청정하게 갖고 대중들을 위한 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저 땅과 같고 저 돌과 같이 무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출가인의 마음이다. 

 

 

 

 

 

2 선과 교

 

巴陵 因僧호대 祖意 敎意 是同是別가하야 師云 鷄寒上樹 鴨寒下水

源同派別이니라 [如云 登之於口 謂之敎傳之於心謂之禪이라 達其源者

無禪無敎 列其派者 禪敎 各執이니라/백운]

 

파능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학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파능 선사가 말씀하였다.

“닭은 추우면 횃대에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속으로 들어간다. 근원은 같으나 갈래가

다르니라.”[예컨대 입에 올리면 그를 일러 교라하고 마음에 전하면 그를 일러 선이라 한다.

그 근원을 통달한 사람은 선도 없고 교도 없지만 그 갈래를 나누는 사람들은 선과 교를

각각 집착하느니라. - 백운화상

 

해설 ; 파능호감(巴陵顥鑑) 선사의 선과 교에 대한 법문이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선불교가 생기고 선불교로 말미암아 교학과의 관계와 차이에 대한

논란도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파능 선사에게 이 문제를 물었다.

날씨가 추워지는 것은 한 가지 일인데 닭과 오리가 추위를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듯이 선과 교가

근원은 같으나 그 갈래가 다를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직지> 편찬하신 백운 선사는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면 그것을 교라 하고 마음에

전하면 선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받아드린 서산 스님은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敎是佛語)라고 표현하였다.

역시 같은 뜻이다.

“그러나 그 근본을 알면 선도 없고 교도 없지만 그 갈래를 나누는 사람은 각각 집착한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불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선이라 하든 교라 하든 관계가 없는데 불교의

근본을 모르는 사람들은 일일이 집착하고 고집하여 꼭 선이라야 한다느니 꼭 교라야 한다느니

하여 세상을 혼란하게 한다. 무엇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취지를 바로 알자는 방편이다.

방편을 붙들고 근본 취지를 망각한다면 물결을 집착하여 물을 망각한 사람과 같다.

 

- 해설 무비스님

 

간절한 소망과 지속적 관심

 

"선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니,

구지스님은 손가락을 하나 세웠고,

조주스님은 "뜰앞에 잣나무"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손가락은 보지만 선은 보지 못하며,

뜰앞의 잣나무는 알아듯지만 선은 알아듣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익혀 온 습관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눈 코 귀 혀 몸 의식에 감각되고 열려지는 것만 보고,

듯고 알아차리는 습관을 익혀왔다.

익숙한 습관은 따라가기가 쉽고, 쉬운 만큼 그것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선 공부란 습관적으로 익숙한 감각과 의식을 따라가는 것을 벗어나,

감각과 의식위에 나타나는 것의 참 모습을 온전히 알아 차리는 것이다.

세계의 참 모습이 감각과 의식을 떠나 있지는 않지만

감각과 의식만으로는 그  참모습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오히려 감가과 의식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때,

세계의 참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감각과 의식으로 나타나는 모양에 머물지 않고,

오직 바로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감각과 의식의 모양없는 참모습을

알아차리려는 간절한 소망과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소망과 관심이 날을 지나고 달을 지나 충분히 익어가서 때가 되면,

문득 모양없는 참모습을 눈앞에 홀연 알아차리게 된다.

이 때는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꾼 것처럼 알고는 있으나 드러낼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모양 없는 참 모습은 항상 나에게 있었던 것임도 확인할 수 있다.

 

감각으로나 의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말로도 나타낼 수 없으나,

온전히 알아차리고 있고, 온전히 활용하고 있고,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있다.

감각이나 의식으로 파악할 수 없고 말로 나타낼 수 없기에 모양 없는 참모습은

늘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보통의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처럼 보인다.

 

공부란 이렇게 익숙한 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힘은 오로지 모르는 그것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지속적이고 순수한 관심을 잃지 않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이제 다시 보자, 선이란 무엇인가?

"손을 내밀어 물 한 잔 마셔라"

 

 

2002년 9월  김태완

 

 

 

 

인간은 사랑에서 왔기에

남을 사랑하는 데서

자기 완성에 이를 수 있다

 

- 김수환 추기경

 

굼벵이효능 둘 어혈 개

 

 

굼벵이는 지극히 더러우나

변하여 매미가 되어

가을 바람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으나

변하여 반딧불이가 되어

여름 달밤에 빛을 낸다.

 

진실로 깨끗한 것은

언제나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은 것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생겨난다.

 

- <채근담>에서

 

 

 반딧불이, 곶자왈의 밤

 

 

반딧불이는

애벌레 때 물에서 살다가

비 오는 야밤에 땅 위로 올라와

풀이 쌓인 땅 속에 집을 지어 번데기가 되고,

다시 100일이 지나면 마침내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반딧불이는

썩은 짚더미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 오대석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