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3. 21:0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무아와 재탄생 (10)
10.
One group of people believes that there is self, there is atman, there is a soul which is born as this person. once the body dies, this thing doesn't die. It goes to a new birth. Most people believe this, they take it as the basis of their beliefs. The Upanishad texts believed this. In Buddhism, however, there isn't such a thing. Buddhism does not believe there is a self or soul which is born and then dies. Thus, the rebirth of this or that person doesn't occur, because that person doesn't exist here in the first place. This is called "physical birth." It is something that should not be spoken of as "rebirth."
일군의 사람들은 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자아, 아트만, 영혼이 있다고 믿습니다.
몸이 죽더라도 이 사물(자아)은 죽지 않고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믿고, 이것을 자기 믿음의 기초로 여깁니다.
우파니샤드 경전에도 이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러한 사물(자아)은
없습니다. 불교는 태어나고 죽는 자아나 영혼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먼저 여기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의 재탄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육체적 탄생이라
불립니다. 이 육체적 탄생을 재탄생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The Lord Buddha forbade his disciples to believe that consciousness or a spirit goes to be born. A certain bhikkhu named Sati stated that "As I understand the Dhamma as taught by the Blessed one, it is this same consciousness that runs and wanders through samsara (the cycles of birth and death), not another." When other monks objected, Sati stubbornly clung to his "pernicious view." When this was brought to the Buddha's attention, he himself interviewed Sati. The later repeated his view, to which the Buddha scolded him richly. "Misguided man, to whom have you ever known me to teach the Dhamma in that way? Misguided man, in many talks have I not stated consciousness to be dependently arisen, since without a condition there is no origination of consciousness?" (Mahatanhasankhaya Sutta, Majjhima-Nikya #38 (M.i.258). Translation after The Middle Length Discourses of the Buddha, tr. nanamoli & Bodhi (Wisdom, Boston: 1995), p. 350. .... "Paveritam vinnanam samsaritam cavitam") Clearly, the Buddha did not accept that the "same consciousness" is reborn from life to life.
붓다께서는 제자들에게 동일한 의식이나 영혼이 탄생을 계속한다고(윤회한다고)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띠라는 수행승(빅쿠)이 "내가 붓다께서 가르치신
담마를 이해하기로는 삼사라(탄생과 죽음의 사이클)를 윤회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동일한 의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수행승(빅쿠)들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수행승 사띠는
이 해로운 견해에 완고하게 매달렸습니다. 이 사실이 붓다께 알려지고 붓다께서
사띠를 만났을 때, 사띠는 이런 그의 견해를 반복했습니다.
붓다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따타가따가 누구에게 그런 식으로 담마를
가르쳤다는 것인가? 어리석은 자여, 많은 법문에서 의식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며
조건이 없이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하땅하상카야 숫따, 맛지마 니까야) 라고
사띠를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붓다께서는 '동일한 의식'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재탄생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Sadly there are passages even in the Tipitaka itself which say "this person was born" in such and such a place. When there are these contradictions, you must find out which understanding is correct. As to which one is correct, look for yourself. According to the main principles there is no atta or atman. So one can't really speak of physical birth as "rebirth." Mental birth can't be spoken of as "rebirth," because it's the birth of a different citta. The material or functional birth of the ayatana is not the same thing, either. For example, the eye that sees a form this moment and the eye that sees a form another moment is not the same eye. Hence, we do not speak of repeated births because it's never the same eye. There's no essence or self to any of these eyes. There's no "new" and no "repeat," there's only the hetu-paccaya(causes and conditions) at some time and there is birth. only when there are the hetu-paccaya, is there birth. A hundred births, a thousand births, ten thousand, a million, but never of the same person. Never of the same atta and never of the same thing. This is the non-existence of rebirth. [32]
유감스럽게도 삼장 자체에서 조차도 '이 사람이 이런 저런 곳에 태어난다'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런 모순이 있을 때는 어떤 것이 바른 이해인지 알아
보아야 합니다. 어느 것이 바른지에 대해 스스로 찾아 보아야 합니다.
주 원리에 따르면 자아(아따 또는 아트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적 탄생을
재탄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 탄생도 재탄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찌따(마음)의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감각 기관이라는 물질적 또는
기능적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이 순간 형색을 보는 눈과
다음 순간 형색을 보는 눈은 동일한 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코 동일한 눈이 아니므로 탄생이 반복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눈들 중 어떠한 것에도 자아나 본질은 없습니다. 새로운 것도 없고
반복된 것도 없고, 단지 어떤 순간에 '헤뚜 빠짜야(원인과 조건)' 만이 있어
탄생이 있는 것입니다. 수백, 수천, 수만, 수백만의 탄생이 있지만 결코
동일한 사람은 없습니다. 결코 동일한 자아도 없고 동일한 사물도 없습니다.
이것은 재탄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녁노을 / 도종환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 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 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대의 단층 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산을 물들이고 느티나무 잎을 물들이는 게
저무는 해의 손길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구름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나는 내 시가 당신의 얼굴 한 쪽을 물들이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내 노래가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당신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저녁노을이기를,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길 소망했습니다
시가 끝나면 곧 어둠이 밀려오고 그러면
그 시는 내 최후의 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내 시집은 그때마다 당신을 향한
최후의 시집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떨었습니다
최후를 생각하는 동안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한 세기는 저물고 세상을 다 태울 것 같던 열정도 재가 되고
구름 그림자만 저무는 육신을 전송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스러져 가는 몸이 빚어내는
선연한 열망
동살보다 더 찬란한 빛을 뿌리며
최후의 우리도 그렇게 저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무는 시간이 마지막까지 빛나는 시간이기를,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하늘 위에 마지막 순간까지
맨몸으로도 찬연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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