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와 생사 / 춘식스님

2014. 11. 3. 21: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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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와 생사 / 춘식스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나보다. 따스한 봄날을 앞당겨 맛보며 휘파람 불면서

절에 올라갔다. 지난 주 스님을 찾아와 공부하던 보살님이 와 계셨다.

아마 매일 와서 예불하고 30분 남짓 <혈맥론>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나도 옆에 앉아서 귀동냥을 했다.   

 

“근본 성품은 자기를 말한 것이다. 본래의 나. 본래 이것은 누가 만든 게

아니다. 본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닦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래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것을 마음이라 하고, 자기라 하고,

부처라고 하고, 근본 성품이라고 한다.”

 

“본래 이것뿐이니까 팔만대장경도 모두 이것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저 이름일 뿐이니까 팔만대장경에 무슨 실(實)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천경만론(千經萬論)이 오직 마음을 밝혔을 뿐이니, 말끝에 계합해서

이것을 알면 경전의 말씀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불법은 이런 것이다 하고 집착한단 말이다.

불법은 제 마음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해도 이것이고, 저렇게 이야기해도

이것이다. 이것이라 해도 이것이고, 이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것이다.

이것뿐이다. 일체의 말은 실이 아니니 그 말에 속지 말아라.”

 

“가르침과 비춤을 따라가면 종지(宗旨)를 잃어버린다.

근본으로 돌아와야, 자기로 돌아와야, 종지를 요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게 아니다. 본래 있는 나, 이것이란 말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있지 않느냐? 본래 있는 자기이지, 부모가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은 게 아니다.

내가 많이 닦아서 그것을 밝게 하는 것도 아니다. 본래 한 물건,

나 하나뿐이니 밝아져도 일찍이 밝아진 적이 없고, 어두워져도

일찍이 어두워진 적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이것뿐이니까!

밝음과 어두움은 환이지 실이 아니다. 전부 자기 자성일 뿐이다.

내가 내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천경만론이 아무 소용없다.

또 깨달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미 성불해 버렸으니까.”

 

“임종이란, 이 몸뚱아리가 죽는 것을 말한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이 몸뚱아리가 죽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 줄 아는데 잘 몰라서 그런다.

나라는 것은 나고 죽음이 없다. 본래부터 이것뿐이어서 다시

다른 물건이 없다. 이것이 열반이고, 이것이 생(生)이고,

이것이 사(死)다. 그래서 이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공부를 해서 견성을 해야 된다.

그래야 죽을 때에도 그것이 환(幻)이고 꿈인 줄 알아서 찰나 간에도

그런 일이 없는 것을 안다. 나고 죽는 것은 꿈이란 말이다.

그런 일이 없어! 그런 일이 없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괴로워하겠느냐 이 말이다.”

 

“법신이라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것은, 부처라고 하는 것은

본래 청정하다. 이것은 항상 밝고 고요하고 깨끗하다.

두 모양이 없다. 뭐가 있어야 과보를 받을 텐데, 인과응보 이것

자체니까, 이것이 나타낸 모양이니까, 생사윤회 속에 있을지라도

생사윤회를 한 일이 없다 이 말이다.

깨닫지 못하면 이런 말이 다 소용없다.

깨치지 못하면 업보를 못 면해, 생사윤회를 받게 된다.”

 

“스님들이나 재가 처사나 보살들 중에 공부하다가 고요하다,

광명이 비춘다, 이러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깨달음인 줄 알고

집착하게 되면 근본 성품을 잃어버린다.

남에게 말하지도 말고 취하지도 마라. 무엇을 얻으면 안 된다.

밝은 경계가 나타나도 꿈이고, 어두운 경계가 나타나도 꿈이니까

집착하지 마라. 무엇이든 집착하면 안 된다. 일체가 자성이 나타난

바인데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꿈속에서 꿈을 분별하는 것과 같다.”

 

“널리 배우고 많이 아는 것이 도리어 공부에는 방해가 된다.

아무 이익이 없다. 참선을 하면 밝은 지혜가 생기고 잡스러운데

집착을 하지 않는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분별하고 집착하는

게 많다. 세상사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자기의 업을 쉬지 못하고

업을 따라가게 된다. 업을 따라가면

자기 정신을 어둡게 하기 때문에 공부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법문을 마치시고 스님과 점심 공양상을 마주했다.

말없이 공양을 드시다가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다.

"심 처사, 출가가 무엇인 줄 아는가?

일체의 것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 출가다."

 

나는 말없이 스님의 눈을 바라 보았다.

스님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며 이어서 말씀하셨다.

"이 공부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 이 말을 명심해라.

대사각활(大死却活)이다. 모름지기 크게 깨닫는 것으로

극칙을 삼아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말아라."

 

따스한 날씨에 얼어붙었던 땅이 녹는다.

 

 

 

 

 

 

 

 

전북익산 국화축제에서 찍어왔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