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3. 21:2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힘 있는 대장부로 살라 - 바라는 기도
수행자는
힘이 있습니다.
내면의 힘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삶의 그 어떤 경계라도
쉽게 수행자를 뒤흔들 수 없습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거나,
진급철이 다가오거나,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닥치면
백일 기도다 뭐다 해서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봅니다.
이런 때를 계기로
진실된 마음 내어 기도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 세속적인 바램(욕망)들로 인해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도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입시기도나, 진급기도 같은 기도는
그 목적이 '합격'이나 '진급'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고 정진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입시기도나 진급기도를 할 때
합격하기 위해서, 진급하기 위해서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낙방을 하게 되었을 때
낙담을 하고 괴로워 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스님을 원망하며
심지어는 종교를 바꾸겠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먼저 백일기도를 시작할 때
명확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합격하고 진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며 진급이라는 경계 앞에서
당당해 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점 말입니다.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에도 내 중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고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
그만큼 내 마음공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수행 정진을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백일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처음에는 꼭 합격하고 진급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기도를 시작하셨는데
한참을 정진하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고
까짓 결과야 어떻게 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노라고 말씀들 하
십니다.
기도 정진을 올바로 하게 되면
당연히 이런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정진을 하면 잡는 마음, 바라는 마음에서,
놓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 당당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기도 정진은 내 그릇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합격을 못 하더라도, 진급 못 하더라도
크게 휘둘려 괴로워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만큼 그릇이 큰 것이지요.
그러나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결과에 크게 얽매여 세상 이제 다 산 것 처럼,
바라던 결과가 아니면 더 이상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꼼짝달싹 못 하고 괴로워 합니다.
부처님은
합격시켜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진급시켜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이렇게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외면하는 것입니까.
합격이며 진급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내가 공부한 만큼, 내가 열심히 산 만큼
온당한 결과를 받는 것이
그것이 수행자로서 당당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인연법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불자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입시며 진급철이 오면
백일기도를 하고 스 님들께서도 백일기도를 시키시는 이유는
그만큼 업장을 소멸시키고,
그릇을 키우도록 하기 위함이며,
마음공부를 시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백일기도를 지극한 마음으로 하게 되면
무조건 합격을, 진급을 한다기 보다,
내 안에 있던 불합격에 대한, 탈락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녹게 되고,
그런 평온한 마음은 내 마음을 밝은 쪽으로 몰아갑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보다는 밝은 마음을 가지는 편이
법계를 더욱 밝게 울릴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한 지극하고 간절한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고 법계를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명확한 인과응보까지 다 덮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간절함이 내 안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어 자성부처님을,
또 우주 법계를 울려퍼져 법신부처님을 감동시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진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기도한다고 무조건 합격하고 진급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온당한 진리를 말이지요.
기도 정진을 지극한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만큼 업장이 녹게 되고,
또 내 마음공부가 익어가며 그릇이 커져
어떤 결과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한 마음자리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의 목적인 것이지
합격이, 진급이 목적인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힘이 있다고 서두에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는 데에도 힘이 있어야지요.
그 힘이라는 것은
내면에 중심이 딱 잡혀
그 어떤 경계에도 휘둘리지 않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꼭 합격해야만 할 것 같고,
꼭 진급해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고,
그 길이 아니면 세상 어찌 살아가나 걱정스러울 것이지요.
이 길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그 한 생각 때문에
때로는 비열하고 치사한 짓 까지
차마 밝히기 어려운 야비한 짓까지 서슴지 않기도 하지 않던가요.
이 길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바로 그 마음을 놓아 버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그래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있도록
어떤 결과 속에서도, 어떤 상황 경계 속에서도
당당하고 평화롭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당당합니다.
아무리 높은 직장 상사 앞에서라도,
심지어 내 목줄을 잡고 있는 진급 심사위원 앞에서라도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한 자기 중심을 잡고 살 수 있는거예요.
세상의 겉에 드러난 껍데기에
자기의 영혼까지 팔아서는 안 됩니다.
내 양심까지, 내 맑은 영혼까지
세속적인 가치에 다 빼앗겨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힘겹고, 답답하고, 마음대로 잘 안 됩니다.
마음대로 안 되니 세상아니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 중심까지 잃고 헤매여서는 안 됩니다.
입시철이 다가오고,
진급 때가 다가오면 더욱 열심히 정진하세요.
합격하게 해 달라고,
진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진급을 하든 떨어지든
내 안에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당당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기를,
그렇게 큰 마음, 큰 사람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사십시오.
힘 있는 대장부로 사시기 바랍니다
설악산에서 (1)
사행천을 따라 가야동 계곡 구곡담 계곡을 곁에 하고 백운동 계곡 흑선동 계곡을 지나면 곰골 길곡 십이선녀탕 계곡의 내설악 물줄기가 모여들어 백 개의 못이 되는 백담(百潭) 여물치 열어목이 함께 손을 잡고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으로 향할 때 물이 크게 휘돌아쳐 산줄기가 섬처럼 일어서는 은선도.
존 재
하나의 존재가 있다. 이것은 약(藥)이다. 그러나 약은 어떤 실체나 근원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실체가 없다는 말은 독(毒) 이라는 의미도 아닌 것이며,아무 것도 아니거나 허공과 같이 본래 부터 없는 것이라는 의미도 아닌 것이다.약이라고 말할 때는 이미 언제나 약으로 작용하는 어떤 실체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 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고정된 실체란 본래 없는 것이다. 일정한 조건과 인연 속에서 약성을 작용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작 용할 수도 있는 것일 뿐이다.
상대적 사랑
남녀 간의 사랑이 대부분 헌신적이라 하지만, 알고보면 철저한 거래관계인 것이다. 베풀어준 사랑에 대한 응답이 없거나 불충 분하면 반드시 원망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소유욕에 기 준을 두면 무엇이든 적게 베풀고 많이 얻으려 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손해보는 감정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상태로의 사랑은 한계가 있는 상대적 사랑이며,진정한 사랑이 아니 것이다. 아낌 없이 베품으로서 얻어지는 기쁨만이 영원한 사랑인 것이다.
2
설악산에서 (2)
내설악 외설악 설악동 이 얼마나 설레이게 하는 곱고 아름다운 이름이던가 나는 그 산이 좋습니다 사랑스런 그 산이 좋습니다 파아란 하늘을 통채로 호흡하고 멀리 출렁출렁 바다가 노래하고 수려하고 웅장한 산 산중의 산 노랑 옷은 노랑 옷대로 아름답고 붉은 옷은 붉은 옷대로 아름답고.
누가 괴로운가
누가 괴로운가. 괴로운 나는 있는가. 괴로움은 나의 괴로움이 아니고 조건 지어진 현실일 뿐이다. 괴로움은 나의 마음이 아니고 순간의 마 음이다. 괴로움은 나의 느낌이 아니고 순간의 느낌이다. 괴로움은 내 가 느끼는 것이 아니고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다. 괴로움을 있는 그 대로 지켜보면 그것은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하다. 괴 로움을 알아차리면 있던 괴로음은 과거가 되고 괴로움을 보는 새로 운 마음이 일어난다. ㅡ 묘원 ㅡ
만 족 / 법정스님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면 항상 넉넉하고 즐거우며 평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있을 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령 천국에 극락에 있을 지라도 그곳이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누가 주는가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자는 남이 아니고 자신이다.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결정한다. 행복과 불행은 현재 이 순간의 마음에 있다. 행복을 찾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불행해진다. 항상 행 복한 상태로만 있을 수 없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 이다. 행복이 있어도 그것은 괴로움의 시작이다.언제 행복이 달아날 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자는 행복을 구하지 않고 현재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것이 구속되지 않는 자유 이고 참 행복이다. ㅡ 묘원 ㅡ
|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발심수행장·수행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아미타불 끊임없이 불러라 / 청화스님 (0) | 2014.11.03 |
---|---|
보살이 되는 32가지 법 (0) | 2014.11.03 |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는 염주 / 지안스님 (0) | 2014.10.28 |
염불(念佛)의 십종이익(十種利益) (0) | 2014.10.28 |
수행심리-바른견해/지운스님 (0) | 201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