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을 항상 외야 합니다. 운전을 할 떄도 밥을 먹을 떄도 화장실을 갈 때도 어느 때나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불념이념(不念而念)이라 구태여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염불이 그대로 지속됩니다.
십념왕생(十念往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수많은 업장을 지었다고 해도 죽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은 본래 부처이고 불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 명호를 외면 그 순간에 우리 마음은 비약(飛躍)이 됩니다.
마음은 분명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처님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람들 눈에 보이라고 모양을 나투신 것이지, 참다운 부처님은 법신불, 이른바 불성인데 그 부처님은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습니다.
사람들을 김아무개다 박아무개다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마음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김아무개에게 있는 마음이나 박아무개에게 있는 마음이나 원래 똑같이 모양이 없는 것이고, 그 마음은 법신 부처님 불성과 똑같이 우주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부처와 똑같은 것입니다.
어느 누구의 마음이든지 우주에 충만해 있고, 동시에 그것이 바로 불성이기 때문에 수많은 공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누구의 마음이든지 자비도 있고 지혜도 있고, 폐병이나 나병의 균을 이길 수 있는 힘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수많은 공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고 불성이고 부처인데, 하물며 돈을 좀 버는 것이나 높은 지위를 얻는 일 같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만능의 자리이기 떄문에 건강이나 재주나 운수나 그런 것은 사실 큰문제가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재물이나 명예나 지위를 얻는 것에 집착해서 마음을 잘 못 쓰면 그때는 정작 우리가 정말로 가야 될 고향 길을 더디 가게 되고, 업만 짓는 일에 생명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금생에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 재물도 있어야 하고 명예도 추구하게 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마음 자세는 항시 부처님 가르침대로, 성자의 가르침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다 부처님 가르침만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참 생명으로 가는 길을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최상의 개념인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외야 합니다. 운전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어느 때나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불념이념(不念而念)이라, 구태여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염불이 그대로 지속됩니다. 그래야 염불소리에 이끌려서 온 신장(神將)들이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고 지킵니다. 어느 순간에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것이 세상인데, 항상 속으로 염불을 하고 있으면 그 염불소리 때문에 액운(厄運)을 피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몽수경(夢授經) 에도 천라신지라신(天羅神地羅神)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염불을 하면 이 공간에 있는 신이나 땅에 있는 신들이 우리를 못 떠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염불을 많이 하고 극락세계에 갈 때는 아미타불과 그 보살들이 우리를 마중 나옵니다.
따라서 부처님 명호를 외는 생활이라는 것은 자식에게나 부모에게나 일가친척에게나 친구에게나, 어느 누구한테나 가장 좋은 선물이 됩니다. 아미타불은 나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인공인 동시에 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고, 또는 우주의 주인공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우리 극락세계의 주인공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정말로 빠짐없이 또는 끊임없이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간단한 가운데 지속시키는 끈기로 해서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산란하기 떄문에 우리가 본래 주인공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인데, 화두나 염불공부를 통해 우리 마음이 일념이 되면 그때는 삼매에 들어갑니다.
삼매라는 것은 우리의 산란한 마음을 다잡아서 우리 마음을 오로지 하나의 경계에 머무르게 하는 것입니다. 삼매에 들어가야 본래면목 자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삼매에 못 들어가면 말로만 제법 아는 소리를 하는 데 그치게 됩니다. 본래면목 자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꼭 삼매에 들어야 하고,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주문이면 주문으로 하여 오로지 일념으로 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본래 불성 자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끊어짐 없이 염불을 하면 금생에도 행복하지만, 그 염불공덕이 금생의 인연이 다하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훤희 우리 갈 길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극락세계입니다. 훤한 극락세계, 바로 광명세계 (光明世界)입니다. 빛으로 빛나는 세계입니다. 우주라는 것은 지금도 부처님의 광명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들이 '나' 라는 것에 얽매여 자기 몸에 집착하고 자기 생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교주이기도 합니다. 극락세계의 교주이자 전우주의 교주이고 동시에 우리 마음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진여불성 자리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 주인공이나 극락세계의 교주나 전 우주의 주인공 자리나, 모두 똑같습니다.
진여불성 자리는 물질이 아니기 떄문에 공간성이나 시간성이 없습니다. 다 하나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일정한 모양이 있어야 그것이 크다거나 작다거나 예쁘다 밉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일정한 모양이 없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없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부처님 법신 자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양은 없지만 우주에 어느 때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충만해 있습니다. 우주라는 것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에서 아미타불을 찾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여, 원래 우리 마음이 갖추고 있는 행복을 빠짐없이 수용하시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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