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중생위해 하루 천번 죽고 사는 분

2014. 12. 6. 10: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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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Zolan oil painting of children

 

보살, 중생위해 하루 천번 죽고 사는 분

 

 

몸과 마음으로 끊임없이 정진하며

진리 구하는데 지치지 않는 정진력ㅁ

 

<대지도론>제16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몸으로도 정진하고 마음으로도 정진하라.

다른 사람들의 정진도 정진이기는 하지만,

오직 보살의 정진만을 ‘정진바라밀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보살은 몸과 마음으로 정진을 쉬지 않기 때문이다.”

 

곧이어 <대지도론>에서는 몸의 정진과 마음의 정진을 자세하게 나누어 설명합니다.

한 번 볼까요?

첫째, 보시와 지계는 몸의 정진이요, 인욕과 선정과 지혜는 마음의 정진이다.

둘째, 밖의 일을 부지런히 닦는 것은 몸이 정진이요,

스스로 안으로 집중하는 것을 마음의 정진이라 한다.

 

셋째, 거친 수행은 몸의 정진이요, 섬세한 수행은 마음의 정진이다.

넷째, 복덕을 위해 하면 몸의 정진이요, 지혜를 위해 하면 마음의 정진이다.

 

다섯째, 처음 보리심을 내어 불생불멸의 지혜를 얻기까지의 신분으로 정진하는 것이

몸의 정진이니, 육신을 지닌 채로 무생인(無生忍, 불생불멸의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육신을 버리고 법의 성품을 몸으로 삼는 법성신(法性身)을 얻어서

 부처를 이루기까지의 정진은 마음의 정진이다.

 

여섯째,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냈을 때는

보시와 지계와 착한 마음으로 복된 과보를 얻어서 그것을 중생에게 보시한다.

그런데 중생들이 흡족해하지 않으면 이렇게 서원을 한다.

“사람들은 재물이 부족해서 온갖 죄악을 짓는데

나는 재물이 적어서 저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저들의 주림을 채워주지 않으면 진리를 따르거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요, 그리 되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 해서라도 재물을 많이 구해서 저들에게 많이 주자.

그래서 저들을 흡족하게 해줘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재물을 구하려고 망망대해의 외딴 보물섬이나

보물이 묻혀 있다는 깊고 험한 산, 인적이 끊어진 동굴을 찾아갈 뿐만 아니라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도 그곳에 재물이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리하여 엄청난 부를 마련해서 중생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심지어 약초나 주술로 구리를 금으로 만드는 비법을 익혀

온갖 재물을 만들어 중생들에게 베풀거나

주인 없는 재물을 구해서 나눠준다면, 이것이 몸의 정진이다.

그런데 수행해서 여러 가지 신통력을 얻어

스스로 온갖 맛난 음식이나 재물을 구해온다면 이것이 마음의 정진이다.

 

일곱째, 재물이나 보석 등을 잘 모아서 다른 이에게 베풀면 이것이 몸의 정진이요,

이렇게 보시한 공덕으로 부처님 경지에 이르면 이것이 마음의 정진이다.

여덟째, 이 육신을 가지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이것이 몸의 정진이다.

 마음이 몸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신이 아닌 법의 성품을 몸뚱이로 해서(법성신)

육바라밀을 실천하면 이것이 마음의 정진이다.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

 

아홉째, 모든 이치를 잘 알고 수행법을 잘 닦되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 이것이 몸의 정진이요,

온갖 선정과 지혜를 구할 때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마음의 정진이다.

열째, 이웃이나 동물들을 위해서 온갖 수고로움이나 괴로움을 겪어도

저들을 위해 게으름피지 않으면 이것이 몸의 정진이요,

착한 법을 좋아하며 믿음을 일으켜 의심을 품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면서

부처님과 같은 성현에서부터 미물들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구하는 데에

싫증이나 염증도 내지 않으면 이것이 마음의 정진이다.(<대지도론>제16권)

 

“보살은 중생을 위해 하루 동안에 천 번을 죽고 천 번을 사는 사람”입니다.

저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며, 진리를 구하는데 마음으로도 싫증내거나

지치지 않으면 이것이야말로 보살의 정진이요, 정진바라밀이라는 것입니다.

 

 

이미령 | 동국역경원 역경위원ㆍ책 칼럼니스트 

[불교신문2957호/2013년10월30일자]

 
법정스님의 명상 중에서 2
안으로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조용히 살피는 일
우리는 이 일을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마음은 최초의 생각에서 싹튼다
이 최초의 생각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본래 자신으로 돌아가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훈련이다
명상은 사찰에서 산방에서만 하는 절차가 복잡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을 열기 위해서 겹겹으로 둘러싸이고 얽혀 있는
그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서 자신을 무심히 주시하는 일이다.
연꽃은 아침 일찍 봐야 한다
오후가 되면 벌써 혼이 나가 버린다
다른 꽃에선 맡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기롭고 신비스럽다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그것은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다
명상은 마음의 문을 열고
연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일과 같다.

 

 

 

 

이 세상 전체가 80년 평생을 머물러야 하는

거대한 총림이요 또 수도원이다.

서로 의지하며 또 참지 않고서는 함께 살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붙박이건 떠돌이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와 남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법연 선사는 

 “20년 동안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 보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하고 이런 소박한 구절을 남겼다. 

 

- 원철스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도 멀지 않다>중에서

 

 

 

 

내 몸이 비어지면 - 이성선

내 몸이 다 비어지면
그대 곁에 가리라
겸허한 손 깨끗한 발로
그대에게 가서
쉬리라.
잠들리라.
그대 영혼의 맑은 사랑을
내 빈 그릇에 담고
내 꿈을 그대 가슴에 담아서
잠속에 눈부신 나비가 되리라.
금빛 침묵의 땅에
꽃처럼 떨며 열려서
사랑을 고백하리라.
티 없는 눈빛으로
그대와 함께 걸어 강에 가서
엎드려 물을 마시리라.
노래 부르리라.
다 비우고 빈 몸으로 깨어나
새 악기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