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은 어디에

2015. 1. 31. 04:2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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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은 어디에"
                                            


[질문]
만약 불성(佛性)이 지금 이 몸에 있다고 한다면,
이미 몸 안에 있으면서도 범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니,
어째서 나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
다시 해설하여 깨닫게 하소서.



[대답]
그대의 몸 안에 있는데도 그대 자신이 보지 못할 뿐이다.
그대가 배고프고 목마른 줄 알며, 춥고 더운 줄 알며,
성내고 기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또 이 육신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인연이 모여 된 것이므로 그 바탕이 둔해서 감정이 없는데,
어떻게 보고 듣고 깨닫고 알겠는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불성이다.

그러므로 임제(臨濟)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수·화·풍 사대(四大)는
법을 설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허공도 또한 그런데,
다만 그대 눈앞에 뚜렷이 홀로 밝으면서
형용할 수 없는 그것만이 비로소
법을 설하고 들을 줄을 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란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그대 본래의 마음이다.
불성이 지금 그대의 몸에 있는데
어찌 그것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는가.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옛 성인들이 도에 들어간
두어 가지를 들어 의심을 풀어 줄 테니 잘 듣고 믿어라.

옛날에 이견왕(異見王)이 바라제존자께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존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견성(見性)한 이가 부처입니다."

"스님께서는 견성을 했습니까?"
"나는 견성을 했습니다."
"그 성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품은 작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 무슨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지금 버젓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왕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내게 있단 말입니까?"

"왕이 작용한다면 그것 아닌 것이 없지만,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체(體)도 보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럼 작용할 때는 몇 군데로 나타납니까?"
"그것은 여덟 군데로 나타납니다."

왕이 그 여덟 군데를 말해 달라고 하자
존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

"태 안에 있으면 몸이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며,
눈에 있으면 보고,
귀에 있으면 듣고,
코에 있으면 냄새를 맡으며,
혀에 있으면 말하고,
손에 있으면 쥐고,
발에 있으면 걸어다닙니다.
두루 나타나면 온 누리를 다 싸고,
거두어들이면 한 티끌에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것이 불성인 줄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정혼(精魂)이라 부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마음이 열리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수심결에서/ 법정스님번역 -

 

 

 

우리 한시 속에서 지혜를 배우다

 

공자는 <시경(詩經)>을 묶으면서

"<시경>의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思無邪)다"라고 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뜻이다.

시를 쓴 사람의 생각에 삿됨이 없으니

읽는 사람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

 

이것이 저자가 책 제목에

3백수의 상징성을 굳이 내세운 이유다.

- '머리말' 중에서

 

 

5언절구,

다섯 자 단장(短章)의 깊은 울림!

 

 

자연이 등장하고 그 속에 사람이 깃든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도

우리에게 보내는 자연의 메시지다.

 

사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스스로 치유되는 한시의 정서 표현 방식은

세상을 제멋대로 주무르려고만 드는

현대인의 욕망을 향한 일종의 경고 같다.

 

 

 

 

7언시에 비해 들자 수가 줄어싿. 시인이 말을 아낀 만큼

감상자가 채워야 할 여백이 그만큼 더 넓어진 셈이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부터

수한말의 이건창(李建昌)의 시까지 총 300수를

작가의 생몰(生沒)연대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근 10년을 묵혀 둔 것들을 새로 다듬었다고 한다.

 

 

저자 정민 교수는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 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고 있다.

 

아침에 학교 연구실에 올라와 컴퓨터를 켜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 한시 한 수씩을 우리말로 옮기고 감상을 적어나갔다.

재워둔 곶감처럼 든든해서

이따금 하나씩 뽑아 혼자 맛보곤 했다.

 

이 책은 삼국부터 근대까지 명편 5언절구 3백수를 가려 뽑고

오늘날 독자들의 감성에 닿을 수 있게 풀이했다.

 

그동안 한시 관련 저서로는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 일기 <한밤중에 잠깨어>,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은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이 있다.

 

"시는 함축과 감성의 언어다"

 

 

 

 

 

 

 

우리 역사의 삼국시대, 북진정책을 펼치던 고구려는

중국 황실의 입장에서 볼 땐 눈에 가시 같은 오랑캐, 동이(東夷)였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 정벌을 감행했다.

우중문, 우문술 장군이 수나라 원정군의 사령관 격이었다.

 

당시 고구려에는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있었다.

다음 시는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이다.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다'란 시다.

 

 기찬 책략은 천문을 뚫고

묘한 계산은 지리 다했네.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

족함을 알아 그만두게나.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노자의 <도덕경> 44장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가 있다"는 글귀와

또 32장에 "처음 만들어지면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고 나면 그칠 줄 알아야 한다.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는 글귀가 있다.

그러니까 을지문덕의 메세지는

"이길 만큼 이겼으니 이제 그만하시지!

까불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돌아가라"는 말이다.

 

"이 자식이 뭘 믿고 이리 까불어?" 

 

황제국,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수나라의 대장군이

이 시를 받고 분기탱천해

평양성으로 진군을 서두른다.

 

하지만 보급로를 이미 차단당해

주린 배를 움켜 쥐고 고난의 행군을 펼치는 군사들은

오로지 평양성 함락만이 그들의 살 길이었다. 

하지만 사기가 떨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을지문덕의 유인책에 걸려 들어 

살수(현, 북한의 청천강)에서 대패를 당한다.

 

 

 

<가을밤 빗속에秋夜雨中>

 

가을바람 괴론 노래

세상 날 몰라주네.

창밖엔 삼경의 비

등불 앞 만리 마음.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 최치원(崔致遠)

 

홀로 깨어 듣는 밤 빗소리는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게 한다.

저 비 맞고 낙엽이 지리라.

빈털터리의 겨울은 더 슬플 것이다.

재주와 능력이 있으되

알아주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열두 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천재가 

남의 나라 하숙방에서 처량하게

가을 빗소리를 들으면 쓴 시다.

 

제 살을 태우며 등불이 가물댄다.

흔들리는 마음은 만 리 길을 헤맨다.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가 없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떠오른다.

 

 

 

화가를 꿈꾸는

존시는 가난한 것도 억울한데

악성 폐렴에 걸려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다.

 

찬바람이 몹시 부는 11월,

그녀는 하릴없이

창 밖 건너 편 담벼락에 붙은

담쟁이 잎의 개수만 세고 있다.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비가 섞여 내리는 어느 날,

그녀는

여전히 담쟁이의 마지막 잎새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맘을 달리 먹는다.

 

긍정적인 마음이 쾌유를 만들었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 사는 노화가 베어먼이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실

그날 노화가는

존시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며

마지막 잎새를 담에 그렸던 것이다.

 

 

 

<용궁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龍宮閑居)>

 

강 넓어 큰 고기 마음껏 놀고
숲 깊어 지친 새 돌아오누나.
전원으로 돌아옴은 내 뜻이지만
진즉에 기미機微 앎은 아니었다네.

江闊脩鱗縱 林深倦鳥歸
강활수린종 임심권조귀
歸田是吾志 非是早知機
귀전시오지 비시조지기


- 전원발(全元發)

 

 

 

작가는 고려 후기사람이며

제목은 권조, 즉 지친 다. 

난계 김득배의 운에 차운했다.

 

넓은 강물엔 큰 고기가 물 만나 논다.

제멋대로 거칠게 없다.

깊은 숲에는

날다 지친 새들이 둥지에 깃든다.

따뜻하고 안온하다.

전원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기쁘다.

왜 진즉 내려오지 못했나 싶다.

 

나는 세상일에 지친 새,

좁은 보에 갇혀

그물에 비늘을 다치기도 했던 큰 물고기다.

진즉에 벼슬길이

재앙의 길임을 알았더라면

그 길에서 그토록

아등바등하지는 않았을 터.

이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연에 묻히고 보니,

지난날의 망설임이 마음에 부끄럽다.

아직 늦지 않았다.

멋대로 헤엄치다

수면 위로 튕겨 오르기도 하고,

마음껏 날다 저물녘엔 둥지에 깃들리라.

 

 

 

<들매화>

 

보슬비에 갈 길 잃고
십 리 바람 나귀 탄 채.
곳곳마다 핀 들매화
향기 속에 애 끊나니.

細雨迷歸路 騎驢十里風
세우미귀로 기려십리풍
野梅隨處發 魂斷暗香中
야매수처발 혼단암향중

- 이후백李後白(1520~1578년)

 

보슬비 속을 헤매 돌다 갈 길을 잃었다.

아니 이럴 땐 갈 길을 잊었다고 써야 할까?

나귀 등에 올라탄 채

십 리 길을 봄바람 맞으며 쏘다녔다.

미로(迷路),

길 잃고 헤맨 까닭은 셋째 귀절에서 말했다.

 

여기저기 피어난 들매화 때문에,

은은히 품겨오는 꽃향기 때문에,

그 향기에 떠오른 옛 기억 때문에,

보슬비 맞고 십 리 봄 길을 쏘다녔다.

꽃향기에 취해 보슬비에 젖어

옛 생각에 잠겨 길을 잃고 헤맸다.

들매화 때문에.

 

 

 

<옛 뜻.古意>

 

첩은 빗속의 꽃
님은 바람 뒤 버들 솜.
꽃 좋아도 쉬 이우니
솜은 날려 어딜 가나.

妾似雨中花 郞如風後絮
첩사우중화 낭여풍후서
花好亦易衰 絮飛歸何處
화호역이쇠 서비귀하처

- 이수광(1563~1628년)

 

좋은 꽃 어렵게 피웠더니

무정한 비에 땅에 진다.

꼭 내 신세 같다.

님은 바람에 갈 데 모르고

떠다니는 버들 솜 같다.

 

비에 지는 꽃잎처럼

얼마 못 가 시들 청춘인데,

안타까워라

님의 마음을 잡아둘 길이 없구나.

 

나를 까맣게 잊으시고

산지사방 이리저리 갈피 못 잡고

다니시는구나.

나는 님만 바라보고 있건만

님은 한눈만 판다.

딴전만 부린다.

그나마 시들고 나면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 아닌가.

 

제목을 고의(古意)라 했다.

행간에 슬쩍 감춰둔 뜻이 있단 뜻이다.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길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비온 뒤 꽃잎은

여기저기 땅바닥에 떨어진다.

특히,

봄철의 백목련은 피었을 땐

그 고운 자태가 아름답지만 

땅에 떨어지면 정말 지저분하다.

 

지금은 첩이 거의 없지만,

조선 때만 해도 축첩을 했다.

남편 한 사람만

쳐다 보고 사는 첩의 신분인데 

자기를 잊고 먼 곳으로 다니며

다른 꽃을 찾아다니는

님의 바람기를 잡을 수가 없다.

 

우중화,

정말 그 신세를 멋지게 표현한 듯하다.

 

 

 

<늙은 말,老馬>

 

늙은 말 솔뿌리 베고 누워서
꿈속에서 천 리 길을 내달린다네.
갈바람 나뭇잎 지는 소리에
놀라서 일어나니 해는 저물고.

老馬枕松根 夢行千里路
노마침송근 몽행천리로
秋風落葉聲 驚起斜陽暮

- 최전崔澱(1567~1588) 

 

지난날은 꿈이었지 싶다.

빠진 이빨로 여물을 씹다가

지친 몸을 솔뿌리 위에 누인다.

곤한 잠 속에서는 여전히

힝힝대며 천 리 길을 내달린다.

 

장하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적토마의 꿈은 찾을 길이 없다.

갈기를 휘날리며

붉은 땀방울을 흘리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쓰다듬는 주인의 손길에

의기양양하여 채찍질 없이도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가을바람 잎 지는 소리에

부시럭 눈을 뜨면

또 하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다.

나도 가야지.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늙은 말의 꿈은 슬프다.

 

정년 퇴직한 직장인들이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비록

주인이 타던 말을 표현한 시이지만,

 

결국에는

말의 주인인 자신 또한 그런 심정이리라.

마치

경주마마냥 실컷 부리며 몰고 다녔던

영업직 종사자라면

낡은 자신의 승용차를 바라보는 마음이

특히 더할 것 같다.

나도 정년 퇴직한 사람이다.

운이 좋아 고문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뚝뚝.滴滴>

 

뚝뚝뚝 눈에선 눈물지고
가지마다 꽃들이 하나 가득.
봄바람 이 내 한 불어가
하룻밤에 하늘 끝 다다랐으면

滴滴眼中淚 盈盈枝上花
적적안중루 영영지상화
春風吹恨去 一夜到天涯
춘풍취한거 일야도천애 

- 권필(1569~1612) 


떠도는 삶이 아파

눈에서 뚝뚝 눈물이 진다.

그 마음 알지 못하겠다는 듯

가지마다

벙긋벙긋 꽃들이 피었다.

 

눈물로 어룽진 꽃잎들이 더 소담스럽다.

봄바람아 불어라.

쌩쌩 불어라.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밤새도록 불어라.

안타까운 내 마음을 먼 데까지 전해다오.

봄바람아 불어라.

쌩쌩 불어라.

보고픈 맘,

그리운 생각,

그곳까지 전해다오.

밤새도록 불어라.

하늘 끝까지 불어라.

 

작자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시정(時政)을 풍자하는 시를 많이 지어

권귀(權貴)의 미움을 받았다.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풍자하는

궁류시(宮柳詩)를 지었다가

그때

일어난 무옥(誣獄)에 연좌되어

광해군의 친국을 받고

귀양가는 도중에 사망했다.

 

허균은

그의 시에 대해

아름다움과 여운을 높이 평가했다. 

궁류시란

광해군의 비 유(柳)씨와

그 친촉의 전횡을 풍자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화가지 위의 뱁새를 읊다> 

그물눈 촘촘해 걸릴까 싶어
작은 놈도 날개를 퍼덕이누나.
설령 매화가지 빌려준대도
마침내 네가 편히 쉴 곳 아닐세.

罹應密網 마묘亦飛翰
괘리응밀망 마묘역비한
縱借梅枝一 終非爾所安
종차매지일 종비이소안


- 정석경鄭錫慶(1689-1729)

  
뭔가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봄 맞은 매화가지 위에서

조그만

뱁새 한 마리가 깝죽거리고 있다.

 

그물 줄이 촘촘해

다른 새들이 겁먹고 안 오는 동안,

하도 작아

그물에도 걸리지 않을

뱁새만 와서 찧고 까분다.

 

모처럼

뜻을 펼쳐 보겠노라고

날개깃을 퍼덕이며

이 가지 저 가지 제멋대로 오르내린다.

 

뱁새야!

여긴 네 놀 곳이 못된다.

딴 데 가서 놀아라.

아마도

얼어붙은 정국을 틈타

갑자기 출세한 소인배 하나가

겁도 없이 함부로 설쳐대는 양을 보다가

눈꼴이 시어 지은 시(詩)지 싶다.

 

 

 

<국화.黃花>

 

국화꽃 담박하다 누가 말했나
국화꽃 담박한 듯 더욱 짙다네.
근심 잠겨 적막할까 염려가 되어
일부러 가을 겨울 골라 피었지.

誰道黃花澹 黃花澹更濃
수도황화담 황화담갱농
人愁寂寞 故故發秋冬
파인수적막 고고발추동

- 이건창李建昌(1852~1898)


국화꽃이 담박하다고 말하지만,

그 담박함 속에 짙은 향기가 있다.

빛깔도

흰빛에서 노란색, 보라색에 이르기까지

없는 빛깔이 없다.

 

모든 꽃들이 다 지고,

잎새들 물들어 땅에 질 적에,

여름내 매운

기운을 속으로만 간직해두었다가,

푸른 하늘 열리고

공기가 알싸해진 뒤에야

꽃망울을 부푼다.

 

텅 빈 가을 들판 보며

적막한 근심에 빠져들 사람들

마음 따뜻해지라고

일부러

가을 지나 겨울 되도록

참고 참아 꽃을 피우는 것이다.

 

 

 

"세상을 멋대로 주무르려 하는

내게 새와 꽃과 바람이 경계한다"

 

자연에 가탁해 마음을 표현하고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방식은

바람이나 말 같은 다른 자연과 동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인 사랑도

달, 꽃, 까치 소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새라는 

소재를 통해서도 눈물겨운 형제애,

티끌세상을 벗어난 드높은 달관,

부조리한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

 

다양한

주제들을 녹여냈던 선인들은

꽃에는 황홀한 자연에 대한 도취,

뜻대로 되지 않고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길의 안타까움,

 

인고의 세월을 견뎌

끝내 이겨내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담기도 했다.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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