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 과 정신분석학 / 일붕 서경보 스님

2015. 4. 3. 19: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禪 과 정신분석학   / 일붕 서경보 스님

 

 

신경쇠약은 흔히 미국병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노이로제는

미국 같은 데서는 큰 문제가 되어 정신과 의사나 정신치료가의

수도많고,여러가지 유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색있는

몇 개의 정신분석학과 禪 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하나는 ,정신분석에는 성인이 된후의 노이로제나 여러가지

행동의 이상 등을 어릴때 대인관계나 성적만족 / 프로이는 젖먹이 시절부터

성적인 것을 찾아볼수 있다고 했다 /  의 특이성 부터 설명하겠다.

즉 과거에 특히 상당히 오랜과거에 주의한다. 이런견해는 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의 역학 을 연구한 게수탈트 , 심리학의 레빈 등의 견해라

할수있다. 이에 비하여 禪은 현재를, 즉 지금여기를 중요시 한다.

 

그럼 여기에서 禪 을 통해 정신질환을 치유한 예를 들겠다.

부산 동래의 범어사 근처에 살고있던 50대 한남자가 눈을 감고

잠이 들려고 할때마다 수많은 뱀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어려서 부터 특히 뱀을 싫어하던 사람이다.

그는 의사를 찾는등 각 방면의 치유방법을 생각했으나 전혀 효험이 없어

마침내 범어사의 노장스님을 찾게 되었다 .

 

자초지종을 들은 노장스님은 이것은 강박관념의 일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남자에게 ' 괴로워도 옆 사람에게 호소하지 말고 뱀이나타나면

 몇 마리인가, 어떤 형태로 움직이는가를 자세히 관찰하여

보고하라' 고 했다  그 중년남자는 오랬동안 괴로움을 겪던 터였으므로

노장스님의 지시를 지켜 뱀이나타나면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막상 보려고 하면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는것이었다.

 

그 남자는 그후부터 무언가 개운한 기분이 들더니 3년이 지나자

자연히 치유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누렸다는 실화가 있다.이것은

정신분석 처럼 이 사람이 어릴때 부터 어떻게 자라왔는가? 성생활은

어떠했는가? 하고 파고 들어간것이 아니라 현재의 태도를 직접

바꾸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현제에 '지금 '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현제 사태에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데에 과거의 움직임을 아는것도 크게

쓸모가 있으므로 과거를 연구하는것도 결코 무의미 하지는 않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태인 것이다.

한편,생각해 보면 정신분석은 괴로움이나 마음에 얽힌것을 분석하고

이것을 제거하려고 하므로 외과수술과 견줄수 있지만 禪은 괴로움

 그 자체의 매듭을 풀어버리려고 하는 두가지 길을 취한다.

 

또 다른방법은 유명한 로저스 교수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의사나 상담역은

될수 있는데로  무심무아가 되어 따뜻한 마음으로 상담하러 온 사람이나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을 감싸주어서 무엇이나 말할수 있도록 여유있는

기분을 갖게하고, 혼자서 생각케 하여 여러 가지 발언을 시키는 가운데

 

자연히 그 괴로움이 풀어진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거의 지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비 지시적'으로 어디까지나 상대가 중심이 되도록하여 

' 상담하러온사람 중심 ' 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善으로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도 따뜻하고 무엇이나

용서하는 분위기로 감싸준다면 자기 조종력이라는것이 충분히 작용해서

문제가 자연히 해결된다고 본다.

 

이것은 정신분석이 오히려 인간의 성질의 근본에 여러 가지 사악한

욕망이 숨겨져있다고 보는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기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자기모습의 엇갈리는 주장따위가 치료와 동시에

적어진다는것도 연구되고 있다 한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일, 화해하든가 하는 말도 쓰이지마는

그런 태도가 나아가면 타인을 받아들이고,용서하고 화해하기 쉽게된다.

" 있는 그대로 "라는것도 같지만 禪이 자기에게 투철하다는데에

가까워지는것이다. 로저스 교수의 방법에 대해 말한다면

 

자기 조종력을 높이기 위해 禪의 방법을 쓴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전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도 있으며 ,때로는 지시적인 태도 도

취하고 필요하다면 몽둥이로 때리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등

 

일종의 쇼크를 주는일도 있으며 여러가지 방법을 활용함으로

로저스 방법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과학적인 연구는 물론 로저스 쪽이

훨씬 진보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禪인 훨씬 폭도 넓고 또 깊이도

있다고 하겠다. 로저스박사는 1961년 동경에 와서 강연회 등을 연 일이

있는데 그의 제자들 중에는 禪을 상당히 공부하여 제법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일본 메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禪은 건강법을 내포하면서 그것을 초월하는 것을 갖는 것처럼

정신치료학을 내포하면서 그것을 초월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30억 전재산 기부… 77세 총각 아들의 눈물

기사입력 : 2012.12.24 03

5년간 38명에 장학금, 민정기씨
자신을 위해서는 돈 안 써… 입고 있는 옷·세탁기도 주민센터 직원들이 사 줘
"사회에 모두 환원하고 가라는 아버님 말씀에 따를 뿐"

서울 종로구 필운동 골목길에 들어서자 나무 대문이 두꺼운 구옥(舊屋)이 나왔다. 집 마당엔 낙엽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1.5L짜리 생수병은 꽁꽁 얼어 있었다. 냉장고 문은 붉게 녹슬어 있었고, 그 안에 있는 반찬은 김치뿐이었다. 안방에는 이불과 신문, 옷가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방안에선 한기가 느껴졌다.

이 방의 주인은 민정기(77)씨. 최근 30억원 상당의 재산을 장학 재단으로 등기 이전 중인 자산가다. 하지만 민씨가 이날 입고 있던 점퍼와 바지는 모두 인근 주민센터 직원들이 사줬다. 집안의 세탁기와 청소기, TV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전 세탁기가 생기기 전까지 민씨는 손빨래를 했다. 김기선 사직동 주민센터장은 "매번 성금을 내시는데 본인한테는 전혀 투자를 안 해 보다 못한 직원들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회사 생활과 사업을 한 민씨는 1970년 즈음부터 이 집에서 아버지 고(故) 민병욱씨와 살았다. 25년 가까이 한동네에서 산 김종구(61)씨는 "'회사 생활과 장사 때문에 결혼 시기를 놓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형제는 모두 출가했다고 한다. 3남 2녀 중 막내아들인 민씨는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아침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해삼을 사와 논에서 잡은 우렁과 함께 밥상에 올렸다. 아버지가 2003년 병원에 입원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 수발을 들었다. 2005년 초 민씨 본인도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이틀 만에 퇴원해 병구완을 계속했다. 이듬해 어버이날에 그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잘했다'는 말 한 번 안 한 아버지가 훈장을 보여드렸을 때는 눈물을 흘리셨다"며 울먹였다. 아버지는 반년 뒤 세상을 떴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유달리 강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자식들을 모두 서울 등지로 유학 보냈다. 민씨는 전남대 문리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민씨는 아버지 재산으로 장학 재단을 세웠다. 재단 이름은 아버지 호와 이름을 따 '제봉민병욱장학재단'으로 지었다. 들어간 부동산은 공시지가로 20억원에 달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장학금을 받은 인원만 38명. 1억8335만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민씨는 "'세상에 태어나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평소 뜻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재단 재산은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김명좌 법무사는 "민씨가 보유한 땅과 상가를 모두 장학 재단으로 등기 이전하는 중"이라며 "시가로 32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민씨가 재산을 모두 내놓는 건 작년 말부터 건강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씨는 "요즘엔 꿈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며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인 장학 재단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