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寺刹)의 문(門)과 전(殿)

2015. 7. 18. 12: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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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寺刹)의 문(門)과 전(殿)

 

전통사찰을 참배할 때

: 입구-산문-해탈문(교)-일주문-천왕문-금강문-불이문-탑-대웅전-각 부속전각 등의 순서로 참배하는데

큰법당을 제쳐두고 스님 거처나 산신각 혹은 다른 전각과 건물을 찾아 참배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임을 알아둡시다.

 

사찰의 문(門)

1. 일주문(一柱門)

*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

* 절 입구에 양쪽 하나씩의 기둥으로 세워진 건물

* 일주문을 경계로 문밖을 속계, 문안을 진계라 부름

2. 천왕문(天王門)

* 일주문을 지나면 다음에 보이는 것이 천왕문.

*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문 : 일명 봉황문

* 동쪽에 지국천왕-비파 가짐 * 서쪽에 광목천왕-여의주,새끼줄 가짐

* 남쪽에 증장천왕-보검 가짐 * 북쪽에 다문천왕-보탑을 가짐

* 금강력사(인왕)-절의 어귀나 문 양쪽에 모신 수문장(반나체 모습)

3. 해탈문(解脫門)

*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문.

* 해탈에 이르는 문, 곧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공(空)과 대립적인 차별을 떠난 무상(無相)과 원하고 구하는 생각을 버린 무원(無願)을 말함

4. 불이문(不二門)

*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

* 중생과 부처, 선과 악, 유와 무, 공과 색 상대적 개념에 의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불교진리의 불이사상을 나타내는 문

 

사찰의 전(殿)

대웅전(大雄殿)

*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금당)

*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의 중심에 있다. 대웅전에는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한 삼세불(三世佛)과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삼세불로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羯羅菩薩)이 협시하게 되며, 다시 그 좌우에 석가의 제자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상을 모시기도 한다.

갈라보살은 정광여래(定光如來)로서 과거불이며, 미륵보살은 미래에 성불하여 미륵불이 될 미래불이므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삼세불을 봉안하는 것이다.

대적광전(大寂光殿)

*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대광명전)-화엄종 주불

* 주불이 아닐 경우는 비로전이라 부름

* 삼존불일 경우 석가모니불(화신)/비로자나불(법신)/노사나불(응신)

극락전(極樂殿)

*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한 주불전-주불전이 아닐 경우 미타전

*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의 미타 3부경에서 유래함

*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약사전(藥師殿)

*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불전-만월전으로도 부름

*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고 고통을 없애주는 여래불로 동방유리광세계를 관할하는 부처이다. 따라서 약사전(藥師殿)은 동(東)쪽을 바라보며 건축된다

* 아미타불이 서방 정토의 부처라면 약사불은 동방 정토의 부처이다.

미륵전(彌勒殿)

* 미륵부처님이나 미륵보살을 모신 불전-용화전으로도 부름

* 미래불(未來佛)인 미륵이 용화세계(龍華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사찰 당우 중의 하나.

* 미륵전을 본전으로 삼는 사찰은 대개 법상종(法相宗)의 맥을 전승한 사찰이다.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므로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며, 장륙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장륙전(丈六殿)이라고도 한다.

원통전(圓通殿)

* 원통은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관세음보살을 말함.

*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부속 전각일 때는 관음전이라 부름.

지장전(地裝殿, 명부전冥府殿)

*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염라대왕 등 10왕을 함께 모시면 시왕전

* 사찰에서 저승세계인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당우(堂宇)

* 대웅전의 바로우측에 직각 방향으로 대웅전을 향하여 서 있다. 명부(사후세계)의 십대왕이 모셔져 있다. 사찰 내 전각 중에서 가장 많고 화려한 조상들이 모셔져 있으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응진전(應眞殿)

*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도 그 제자들에 대한 신앙세계를 함께 묘사한 사찰 당우.

*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협시로 모시고, 다시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끝부분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봉안한다. 때로는 아난과 가섭 대신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羯羅菩薩)을 안치하여 삼세불이 이루어지게 배열하는 경우도 있다.

* 부처님의 제자 16나한을 모신 전각-500나한을 모신 나한전

팔상전(捌相殿)

*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모신 사찰 전각.

*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어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본존으로 삼고 있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좌우에 있다. 불상은 있으나 불단이 크지 않으며 벽에 붙은 팔상도와 불상 뒷면의 영산회상도가 주된 경배 대상이다.

* 팔상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나누어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으로,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존상을 모실 경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좌협시 미륵보살을 모시고, 우현시에 제화갈라보살(본래 정광불, 또는 연등불 여래라고 하며 아득한 과거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에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팔상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다

영산전(靈山殿)

*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도를 모신 전각-영취산 설법모임 그림

* 영산은 영축산(靈鷲山)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산불국(靈山佛國)을 상징한다. 영축산정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으로 불교의 성지(聖地)를 영산전을 통하여 현현시킨 것이며, 이곳에 참배함으로써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불국토인 영산회상에 참배하는 것이 된다.

*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하여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또는 500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칠성전(七星殿)

* 치성전여래를 모신 전각 또는 북두칠성을 부처님화한 전각

산신각(山神閣)

* 산신을 모신 전각.

* 사찰에 따라서는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른다. 또 삼성각(三聖閣)을 두어 산신(山神)·칠성신(七星神)·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도 흔하다.


*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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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바쁘게 허둥대며 일생을 보내지만, 마침내 스스로 한탄하게 된다.
     波波度一生, 到頭還自懊.  - 육조혜능의 무상송 중에서


내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부모이고 부모가 나입니다.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도 나이고 자식도 나이며 키움도 역시 나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늘 아래 살아 여러가지 꿈을 이루고 있다지만

이것이 진실로 꿈같은 일이어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진실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하늘아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늘이 내 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땅 위에 사는 것도 아니고, 내 아래 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분주히 산다고 하지만,

사실 꿈속에서 분주히 산다고 여기는 것일뿐 본래 그런 일이 없습니다.

만상이 꿈결처럼 펼쳐지나

언제나 그 자리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만상이 그대로 나여서 온갖 그림들이 나의 일이지만,

그 어느 것에 나를 묶어 둘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서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입니다.
이 온갖 천변만화에 갇혀 생사의 물결에 떠밀려 포말처럼 사라지느냐,
이 온갖 우주의 조화가 바로 자기여서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으면서 천변만화를 누리느냐.

어느 것이 진실한 삶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