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22. 20:3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반야심경
몽지님 반야심경 법문
간절하게 본래 있는 것을 찾지 않을 때 쉬게된다.
자각(깨달음)의 성품은 비치는 모양과 상관없는 것이다.
입벌리기 전의 일로 잡으려는 마음을 놓을 때, 은총처럼 피동적으로 찾아오게 된다.
얻어내고 덜어내어서 분별 대상이 없는 텅빈 밑바닥까지 가서 분별심을 내지 않게된다.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생각으로 나갈 수 없는 둘없는
경험할 자가 사라지면서 섬광처럼 순간에 합일되는 때가 온다.
관자재 보살 觀自在菩薩
만약 이를 믿거든 다만 고요히 앉아 있으라
(삼천대천 세계나 반야심경 전 글자가 이 마음을 뜻한다.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허공같은 금강선정이다. 견성하면 정해(쌍수)를 등지한다.)
앉아서 그 자리가 지극히 고요해지면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이 움직일 때에
한 무위진인이 몸뚱이 위에 언제나 드나들고 있을 것이니,
(견문각지의 작용을 말한다. 기쁨과 슬픔이 있는 것처럼 비출 뿐이다.)
여기에서 이 관자재 보살이(스스로 비추고 있는 원초적 에너지로 無味한 앎이 없는)
자재로이 노닐면서(힌두교의 춤추는 시바로 '작용'이다.
솔개가 나르는 이치나 물고기가 헤엄치는 이치는 같은 것이다)
시방세계의 어느 곳이든 두루 돌아다니며 노닐지만 부처의 행하는 자취는
볼 수가 없으며, 바로 지금 이 자리를 여의지 않으면서 언제나 깊은 물처럼
맑고도 고요하여 그대가 찾아보아도 볼 수 없는 줄 알 것이니, 보지 않는
그 가운데서 바로 보게 되며, 바로보는 그 가운데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여시 여시) 관음보살을 만나보게 되면 사물에 응하고
형상을 따르더라도 무엇이 모자라거나 부족함이 있으리오.
(크고 작고 좁고 넓은 것이 이 안에 들어있다. 꿈도 이것이요
경험되는 것도 다 이안에서 일어난다. 늘 진여속에서 여여하고 딱 맞다)
일어날 때나 앉을 때나 언제나 서로 같이 따르니, 같이 일어나고
같이 넘어지며 같이 기뻐하고 같이 웃으며 같이 소리치고 같이 떠들게 되리라.
알겠는가?
(안다 해도 30방 모른다 해도 30방, 입다물고 있으면 60방이다)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알게 되리라.
*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알게 된다.
동산양개 선사가 운암스님께 묻기를
"무정이 설법한다니 누가 듣습니까?"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 들을 수 있습니까?"
- 내가 듣는다면 자네는 내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네.
그러고는 불자를 들고 묻기를
"자네는 들을 수 있나?"
- 아니오, 들을 수 없습니다.
"나의 설법도 등지 못하면서 어찌 무정물의 설법 듣기를 바라는가?
아미타 경에 물과 새와 나무가 모두 염불 염법 염승을 하는다는 말 읽어보지 않았는가?"
하니 그 말에 동산이 깨달은 바 있어 다음의 게송을 지어 운암에게 보였다.
*
야대기 야대기 (也大奇 也大奇) 참으로 기이하고 기이하다
무정설법부사의 (無情說法不思議) 무정의 설법은 생각으로 알 수 없네
약장이청성불현 (若將耳廳聲不現) 귀로써 들으려면 소리조차 안 나지만
안리문성방시지 (眼裏聞聲方始知) 눈으로 들어야 비로소 알게 되리
행 行
행이란 수행이라는 말이다
천리 길을 가려고 하면 한 걸음부터 시작되니, 자! 그럼 보아라.
이 처음의 한 걸은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한손바닥 소리는 어디서 일어나는가? 자동차는 어디서 굴러가는가?)
만일 이 처음 한 걸음이 일어나는 곳을 알면 바로 생사의 근원을 알게 될 것이니,
옛사람이 말하기를
"가다가 물길이 다한 곳에 이르면, 앉아서 구름 이는 그때를 바라본다" 고 하였다.
(소리가 일어나는 곳 사라지는 곳, 비상 비비상처도 다 여기다)
보지 못했는가.(생각이 아닌 진실처를 . .)
석상스님이 석두 선사에게 묻기를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나면 그치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석두 선사가
"돌(口出)!"하며 꾸짓고는, 다시 묻기를 "이런 저런 생각을 일으킬 줄 아는 것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니 석상스님이 크게 때달았다.
다만 이와같이 몸소 궁구해 보면 생각생각이 바로 이 자리를 여의지 않으면서
무릇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 어언삼매(語言三昧)이니,
그 생각이나 말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어째서 들을 줄 아는 그것을 스스로 돌이켜 듣지 못하였는가?"
하였으니, 스스로 돌이켜 들어보면 그것이 부처의 입에서 생겨나서
부처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리라.
옛사람이 이르되
"부처의 간 곳을 알고자 하는가? 바로 지금 이 말하는 여기에 있다네" 하였다.
보공은 이르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 한마디 말을 잘 들어보아라.
지금 누가 이 입을 움직이고 있는가? " 하였다.
경에 이르되 "한 세계가 있으니 극락이라 부른다. 그 국토에는 아미타라는
부처님이 계시는게 지금 현재에도 설법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잘 살펴 보아라 (諦觀) !
그 소리소리가 자기에게서 흘러나오며 생각생각 어느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하루 열두 때 가운데 항상 이경을 읽고 있으면서 부처님을 한 번 부르는
소리마다 한 소리가 따라 응하고 있으니 본래면목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된다면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본래 근원인가?
강물은 흘러가도 바다에 있게 되고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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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 古人
당의 대표 자연시인이고 화가인 王維를 말한다. 유마힐의 이름을 따서 호를
마힐摩詰이라 하였다. 종남별업終南別業의 한 구절이다
중세파호도(中歲頗好道) 중년의 나이들어 불도를 좋아하여
만가남산수(晩家南山수) 늙으막엔 종남산의 기슭에다 집을 짓고
흥가종매독왕(興來每獨往) 생각나면 언제나 혼자서 찾아가니
승사공자지(勝事空自知) 그 좋은 재미는 혼자서 알 뿐이다.
행도도수궁처(行到水窮處) 가다가 물길이 다한 곳에 이르며면
좌간운기시(座看雲起時) 앉아서 구름이는 그때를 보며
우연치림수(偶然値林수) 어쩌다 산에 사는 늙은이를 만나면
담소무환기(談笑無還期) 이야기를 즐기다가 돌아갈 줄 모르네
* 깨닫지 못하는 이는 이 말을 들어보라 / 보지공 화상의 십이시송 중에서
계명축시 鷄鳴丑時 닭이 우는 축시여!
일과원주 명이구 一顆圓珠明已久 한 알의 둥근 구슬 옛적부터 밝았는데
내외접득멱총무 內外接得覓總無 안팍을 살펴봐도 찾을 수가 없지만
경상시위혼대유 境上施爲混大有 모든 일과 행동 속에 온전히 나타나네
불견두 우무수 不見頭 又無手 머리도 안 보이고 손도 또한 없으나
세계괴시거불후 世界壞時渠不朽 세계가 무너져도 그것은 변치 않네
미료지인청일언 未了之人聽一言 깨닫지 못한 이는 이 말을 들어보라
지지여금수동구 只祗如今誰動口 지금 누가 이 입을 움직이고 있는가
심 深
깊다는 것은 골수에 사무친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 도를 알기 위해서는 버리고 또 버리어라" 고 하였다.
다만 고요히 앉아서 밤낮으로 돌이켜 비추어보라. 해골 속까지
다 비춰 보아 오온을 단박 사무치게 되면 가는 실오라기 하나라도
걸리지 않는 것이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과 같으리라.
(몸과 마음이 이루어지기 이전 부모미생전; 걸으면 진실한 한마음을 사무치게된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몸에 달라붙은 땀받이 적삼마저도
벗어 던지고 나서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서 구해 보면 모든 것이 텅 비어
나라는 것도 없게되니 자연히 집에 도달하게 된다.
(나로하여금 꼼작달삭 못하게 하는(생각 감정) 인연이 깨달음으로 이르게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이 가난해서
돌아가지 못 한다"고 하고(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줄 알면 -무소득이면 견성)
"그윽한 꼴짜기는 깊고도 멀어서 사람들이 누구 하나 도달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옛사람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난해의 가난함은 가난이 아니라
올해의 가난이 참으로 가난이다
지난해의 가난은 송곳 꽂을 만한 땅도 없더니
올해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구나
(마음이 가난한 자 - 생각 감각 등 소유할 것이 없는 자)
만약 이와같이 되면 비로소 '혀가 없는 사람이 말을 하고,
손이 없는 사람이 능히 주먹을 쥐는 도리를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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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 손지우손 爲道損之又損
노자의 도덕경에
"학문을 닦으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나날이 버리게 된다.
또 버리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에 이르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일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 위산의 제자 향엄선사에게 그의 사형이 되는 앙산스님이 그를 점검하기
위하여 묻기를 "자네 요사이 어떠한가?" 하니 "창줄간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송을 지었느니 "지난해 가난은 운운~" 하였다. 그러니 앙산이
"자네 여래선의 경지는 알았어도 조사선의 경지는 꿈에도 보지 못한 것같네"
하였다. 이에 향엄이 다시 게송을 지었다.
아유일기 我有一機 나에게 하나의 기틀이 있으니
순목시이 瞬目視伊 두 눈을 깜짝이어 그걸 보이네
약인불회 若人不會 그래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별환사미 別喚沙彌 이번에는 사미를 불러보리라
앙산이 이를 보고 기뻐하며 스승인 위산에게 가서
" 향엄사제가 조사선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옛부터 조사선과 여래선을 이 두 게송으로 많이 말해왔으므로 참고로 더해 두었다.
그것은 서로의 우열을 말한 것이라기 보다는 체용 혹은 표리관계이니
두 게송의 용심처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
* 무설인해어 無舌人解語
어떤 스님이 익주의 승복사 연교지선사에ㅔ 묻기를
"어떤 것이 확 트인 넓고 너른 말입니까?" 하니
" 혀없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지"라고 답하였다.
* 무수인능행권 無手人能行拳
농아선사에게 어느 스님이 묻기를
"하루 열두 때 가운에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하니
"손이 없는 사람이 주먹을 쥐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고 답하였다.
나오는 음악 : 나훈아 - 고향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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