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5. 19:24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반야심경
무가애고 무유공포-몽지님 반야심경 법문
無가애
경에 이르시되 " 너는 어찌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연히 물질이
아닐 것이니 내가 아니겠는가?"고 하시었다.
모든 법의 참모습을 통달하고 나면 허공에 머리를 조아리는듯하여
의지할 것도 없고 기댈 것도 없게 된다. 마치 백 천 개의 등불이 그 빛을
한방에서 비추면 그 백 천개의 등불 빛이 온 방안에 가득히 차듯이 모든 것이
환화이며 허망한 경계이므로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서로 장애됨이 없게 되어
동쪽으로 가도 다함이 없고 서쪽으로 가도 끝이 없어서 종횡으로 마음대로
자재하니 허깨비 같은 경계가 능히 걸림이 없는 것이다.
본래의 근본마음자리는 천진하여 무량겁을 지내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청정한 본체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으며 변함도 없고 달라짐도 없으니
그래서 여래라 한다
여래를 알고 싶은가?
남쪽에는 천태산
북쪽에는 오대산
고 故
고라는 한 글자는 원만하고도 지극한 법칙이니, 가히 말할 수 없고
가히 말 할 수 없으며 말을 하더라도 아무 소용 없다.
말을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고라 한다.
법은 가히 설 할 수 없으니
이 이름을 설법이라 한다.
무유공포 無有恐怖
성품이 공한 줄 깨달으면 동서를 가리지 않고 남북을 나누지 않으며,
밝고 어두움의 구애를 받지 않고 만법으로 더불어 벗하지 않으며,
오고 감에 같이하는 짝이 없으니 부처님의 눈으로도 엿보지 못하며,
언제나 홀로 가고 홀로 걷지만 깨달은 사람은 열반의 길에서 함께 노닐게 되리라.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다함이 없고 아래로는 땅속으로 들어가도
끝이 없으니 산하대지 석벽과 땅이나 불이나 물이나 바람이
이것이 오고 감에 걸리거나 막힘이 없는 것이다.
(말뜻을 쫓지 않으면 '보인다 안보인다'가 분별이 없어 모두 같다.
점하나만 찍어도 선택적 주의집중으로 분별하게 된다.)
이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찰나 사이에 온 법계에 두루 다니면서
손바닥을 기울이는 사이에 천리를 달리고 가던 길을 돌아온 것이
하늘을 나는 듯 돌이키며 음양(시간)이 능히 옮겨 바꾸지 못하고
四聖과 六凡들도(성인과 범부들도) 능히 잡아 얽어매지 못하니
모든 성인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어서 기나긴 세월에도 언제나 한결 같아서
이것을 자재하신 대각금선大覺金仙이라 하며 격식을 벗어나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는 사람(格外超佛越租之人)이라 말하니, 결정코 의심할 것 없는
구경의 원만한 개달음이 온 시방세계에 두루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사람을 알고 싶은가?
흰머리 동자는(파도) 지혜가 뛰어나서
깊은 밤 삼경에(분별없음) 아득한 물 건너가네
마음대로 오고가며 그칠 사이 없으니
무슨 배가 필요하랴. 부낭浮囊조차 쓸데 없다.
(물이 물을 건너가는데 무슨 배움이나 방편이 필요하랴)
* 물에 물타고 술에 술타는 도리다.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구부정이 되어야 공부가 된 것이다.
깨달으면 十字街頭에서 아버지를 만난것처럼 확실하다.
한세상 사는 것 / 이외수 그대여 한세상 사는 것도 물에 비친 뜬구름 같도다 가슴이 있는 자 부디 그 가슴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 살아 있을때는 모름지기 연약한 풀꽃 하나라도 못견디게 사랑하고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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