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보살님과 고구마 / 릴라 임순희

2015. 8. 29. 19: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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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공부모임 중에 지혜성 보살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작년 가을 찬 비가 내리는 날 범어사에서 만났던 일이 떠오르고 그 일이 있은 후

가졌던 공부모임에서 보살님의 변화를 느끼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법문 파일을 되돌려 들으면서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을 것같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노구에도 공부에 변함없는 열정을 보이시는 고구마 보살님 정말 감사합니다!


 

 


 

노 보살님과 고구마 / 릴라 임순희

2014년 10월 어느 날입니다.
오늘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노보살님과 저희 집 뒤편에 있는 범어사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전 11시에 대웅전 앞에서 뵙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찬 비가 내렸습니다.

연세가 많으시고 무릎관절도 성치않아 전화를 일찍 드렸습니다.

범어사에서 만나기는 그러니 지하철역에서 만나 근처 찻집에라도 가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밀린 일을 하고 있는데 9시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벌써 대웅전 앞에 와서 기다리고 계시답니다.

얼마나 이 공부가 목말랐으면 이리도 일찍 달려오셨을까?

2주 전부터 모든 법문 듣는 것을 접고 일상생활만 하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보살님은 3~40여년을 절에 가서 기도하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고, 칠순이 다 되어서

부처님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이 선방 저 선원 다니다가 무심선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제 모임도 알게 되어 몇 개월째 다니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법문은 다 이해하여 법문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기 일쑤입니다.

저의 공부모임에 와서도 연일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지. 마음뿐이지. 자성불이지.’

웃음 띈 얼굴로 맞장구를 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거나 표정을 보면 공부가 굶주린 사람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명랑한 에너지가 샘솟는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노 보살님이 지금은 많이 풀이 죽어 있습니다.
보살님은 그동안 잠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종일 법문을 들어오셨습니다.

일년 가까이 중독되다시피 들으셨습니다. 그냥 법문 듣는 게 즐겁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부를 하는 것같고 안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문만 듣다보면 깨달음의 체험도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한 일이고 공부를 하지 않는 일이어서

죄를 짓는 것같답니다.

그러한 심정을 전해 듣고는 한 달 정도 법문을 듣지 말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뭔가에 강하게 의지하고 있었고 듣다보면 언젠가 깨달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지금 있는 이대로 자신의 자리를 직관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같았습니다.

지난 2주 동안 두어번 전화를 주셔서 ‘법문을 한 시간만이라도 들으면 안될까이?’

하고 말씀하셨는데 저를 믿고 따라보시라고 거듭 부탁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니 공부모임에 와도 표가 나게 생기가 사라졌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으니 안절부절 못합니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시면서도

‘법문을 들으면 안되겠지요?’라고 물어보십니다.

2주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보살님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얘기를 나누어보는

것도 좋을 것같아 범어사로 와보시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이 그 날인데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립니다.
“보살님,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좀 기다리셔야겠어요. 제가 마저 할 일이 있거든요.”
알았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만사 제치고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서둘러도 안될 것같고, 혼자 두어시간 일없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았습니다. 날씨도 쌀쌀하니 가스렌지에 고구마를 올려

쪘습니다.

11시쯤 찐 고구마를 들고 범어사에 올라가 보니 노 보살님이 대웅전에서 부처님

반대편으로 앉아 먼산 바라보기를 하고 계십니다.
사람도 들락거리고 해서 설법전 뒤편 처마 밑에 야외용 방석을 깔고 고구마를 꺼냈습니다.
“보살님? 고향은 어디세요?”
“고향은 진주 반성이지. 시댁은 고성이고.”
“혹시 고구마 하면 생각나는 거 없으세요?”

어르신들 누구나 고구마는 익숙한 먹을거리입니다. 어렸을 적 간식거리로 고구마

먹어보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보살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그 시절로 빨려 들어갑니다. 고구마에 얽힌 추억이 실감나게 나옵니다.
“아이고, 말도 말아. 어릴 때 고향에 고구마밭이 천지였지. 그 고구마가 얼마나 큰지

어린 아이 머리통만했어.

그것을 쪄도 먹고 썰어 말려서도 먹고.가을 겨울 내내 징하게 먹었지...... ”

노 보살님은 마치 그 시절 고향 속의 어린 아이가 된 듯 공부는 뒷전이고 신이 나서

말씀하십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조금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생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그 시절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보살님, 보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는 아예 흔적조차 없었는데,

이렇게 생각이 일어나니 고구마에 얽힌 일들이 마치 지금의 일처럼 일어나잖아요.

고향도 가지 않았는데 고향에 온 것처럼 옛날 일들이 고구마줄기에 고구마 딸려나오듯

생생히 일어나지요?”
“그렇지.”
“그것보세요.

이 한 생각이 바로 온갖 것을 만들어낸다구요. 다 보살님이 생각해야 드러나잖아요.”
“맞지.”
“지금 이렇게 생각이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보살님이 찾는 마음이란 말이에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나오는 생생한 이 자리. 저라고 별 수 있겠어요?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대로 드러나고 적게 배운 사람은 적게 배운대로 인연에

맞게 드러나잖아요. 온갖 그림은 다르지만 이 자리는 누구나 똑같아요.

누구나가 이것 하나 가지고 쓰는 거라구요. 보살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이 마음자리에서 먹고 자고 앉고 눕고 한단 말이에요.

체험을 기다리는 마음도 바로 이 마음인 것이고, 법문도 바로 여기에서 들었구요.

부처님도 지금 고구마에 대한 옛일이 생생하게 일어나는 이 마음자리뿐임을

깨달은 거예요. 그런데 뭘 더 기다리고 바라겠어요?”

보살님은 멍하니 바라보십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도 있는 거 아이가? 이거 없는 사람이 어딨노?”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진짜지요.특별한 거라면 그게 평등한 것이겠어요?”
“아이고, 나는 뭔가 천지가 달라지는 체험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지.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뭔가 와락하고 일어난다고들 해서.”
“그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미 있는 이 마음을 확인하는 것뿐이라구요.”

“아이고, 나는 뭔가를 찾아왔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 아침에 일어나 법문은 듣지

말라고 하지. 이게 뭔지는 궁금하지. 그래서 하루종일 찾아도 없어. 이 바보 멍텅구리야.

그것도 모르냐? 서울대학 들어가는 것도 이것보다는 쉽겠다고 했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못찾으니 포기할라 했어. 오늘 여기 앉아 있으면서 이제

이 공부 안할란다 그 생각했지. 이 공부 안하고도 자식 잘 키우고 잘 살아왔는데.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걸 어떡하냐.

살아오던 대로 죄 안짓고 착하게 살면 되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 그런데 이걸 쓰고

있으면서도 밖에서 찾아왔네. 아이구 멍텅구리야.”
보살님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했습니다.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이걸 모리고.아무리 찾아도 없어.’ 소리를 연신하십니다.

특별한 체험을 기다린다면 지금 이미 현존하는 일이 아닙니다.

늘 항상한 일, 지금 있는 일, 언제나 스스로가 발딛고 선 자리를 돌이켜 볼 뿐입니다.
지금 이렇게 한 생각이 일어나는 이것은 지극히 온당한 일이고 자연스런 일이며,

누구나가 갖추고 있는 마음자리입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것이 모든 것이자 모든 것의 출처와 낙처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이 글을 읽는

이 자리, 헤아림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기. 초등학교도 못나왔다면서 배운 게 없어

공부를 못한다고 한탄하시던 노 보살님이 고구마를 잡수시다가 이미 있는 이 자리를

돌이켜 보고는 찾는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범어사를 내려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