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칙 법안이 발을 가리키다(法眼指簾) /몽지님 법문

2015. 10. 3. 20: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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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칙 법안이 발을 가리키다(法眼指簾)

<시중>

의사가 많으면 맥이 어지럽고, 법이 나타나면 간악함이 생겨난다.

병이 없는데 병을 치료하는 것이 비록 지나친 자비이나,

조항이 있으면 조항을 따르는 것이 어찌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에 방해가 되겠는가?

示眾云。師多脈亂。法出姦生。無病醫病。雖以傷慈。有條攀條。何妨舉話。

<본칙>

법안이 손으로 발을 가리켰다. 그때 두 승려가 있었는데 함께 가서

발을 말아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다.”

舉。法眼以手指簾。時有二僧。同去捲簾。眼云。一得一失。

<송고>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으며, 학은 길고 오리는 짧다네.
복희(伏羲)와 황제(黃帝) 때 사람들은 치세와 난세를 모두 잊었네.
그 편안함은 용이 못 속에 숨어 있는 것과 같고,
그 자유로움은 비상하는 새가 올가미를 벗어난 것과 같네.
조사가 서쪽에서 와서 아무 일이 없었으니
그 속에 얻고 잃음이 반반일세.
풀잎은 바람 따라 허공을 맴돌고
나룻배는 흐름을 가로질러 기슭에 다다르네.
이 가운데 영리한 납승이 있다면
청량(清涼, 법안)의 수단을 살펴보라.

頌云。松直棘曲鶴長鳧短。羲皇世人俱忘治亂。其安也潛龍在淵。其逸也翔鳥脫絆。

無何祖禰西來。裏許得失相半。蓬隨風而轉空。舡截流而到岸。箇中靈利衲僧。看取清涼手段。

[사족]

이 공부를 해 나가는 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많은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눈 밝은 사람이

제시하는 단순한 방편을 통해 있는 이대로의 진실에 즉각 계합해야 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법령이 복잡할수록 범죄도 오히려 증가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리켜 보이는 일이 본래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이고,

병 없는 곳에서 병을 치료하는 노릇이지만, 그러한 자비심이 없었다면 어찌

이 일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 법안의 좋은 사례가 있으니 한 번 살펴보십시오.

공안을 참구함에 있어 가장 삼가야 할 일은 공안의 언구(言句)를 생각으로 헤아려

이해하는 것입니다. 법안의 솜씨는 그러한 우리들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찍이 “병정동자가 불을 구하는구나!”라는 말로 현칙 스님의

병을 치료했던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아이쿠! 천기를 누설하였으니 이 방정맞은 입을 한 대 때려야 할 것입니다.

법안이 손가락으로 발을 가리켰습니다. 언구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두 승려가 함께 가서 발을 말아 올렸습니다. 언구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다. 언구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언구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역시 또 다른 언구입니다.

그렇다면 언구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습니다.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지만,

곧음은 굽음 속에 있고 굽음은 곧음 속에 있습니다.

학은 길고 오리는 짧지만,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의 다리에 이어붙일 수 없습니다.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이란 분별을 일시에 놓아버려야 비로소

조금은 여기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 뭔지도, 불행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겉보기엔 한 없이 고요하지만 한 번 작용했다 하면 어디에도 걸림이 없습니다.

이 일을 가르치고 전한다 하지만 본래 갖추어져 있어서

따로 배워서 얻어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공연히 얻었다 잃었다 호들갑을 떨지 말아야 합니다.

얻었다는 그것이 잃어버린 것이고, 잃었다는 그것이 비로소 얻은 것입니다.

손으로 발을 가리키니 두 승려가 발을 말아 올렸습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습니다.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습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습니다.  
학은 길고 오리는 짧습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습니다.

풀잎은 바람 따라 허공을 맴돌고 나룻배는 흐름을 건너 기슭에 닿았습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습니다.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습니다.

 

 

 

     

    가을노래 / 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가을 편지 2 / 이해인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아름다운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생명의 고향 / 청화스님

 

우리 본래면목이 바로 아미타불이요,

마음이 청정하면 현실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이니

염불도 근본성품을 안 여의고 한다면 곧바로 참선이요,

참선과 염불이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禪)이란 가상(假相)과 가명(假名)을 여의고

불심(佛心) 곧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본체를 참구(參究)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 체성(體性)을 여의지 않으면 비단 화두참구(話頭參究)뿐만 아니라

관법(灌法)이나 염불(念佛)이나 주문(呪文)이나 다 한결같이 참선(參禪)입니다.

 

따라서 근본 체성을 떠난 공부는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중도실상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계를 관찰하고

상념하는 염불이 바로 실상염불(實相念佛)인데

그것이 또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는 염불선(念佛禪)인 것입니다.

 

       -생명의고향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