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언제나 ‘과거’에 묶여 있으며 관심의 초점은 언제나 ‘미래’에 가 있다. 생각은 늘 과거의 연장이며 우리의 기대는 늘 미래를 꿈꾼다.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아름답고도 찬란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가 언젠가는 내 앞에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성공이나 부나 명성이나 지위일 수도 있고 혹은 여행이나 사랑이나 안정감일 수도 있다. 또 더 멀리 본다면 안정적이고 부유한 노후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 있을 소풍이나 여행을 기다리며 부풀어 있을 수도 있고, 주말에 있을 미팅이나 데이트를 꿈꿀 수도 있으며, 이번 휴가 때 있을 해외여행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아주 가깝게는 2~3분 뒤에 도착할 버스를 기다릴 수도 있고, 5분 뒤에 있을 쉬는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으며, 10분 뒤에 있을 점심 시간을 기다리거나 30분 쯤 뒤에 있을 퇴근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다.
심지어 그렇게 기다리던 주말 단풍놀이를 갔다가도 아름답게 피어난 오색 단풍을 즐기다 말고 빨리 집에 돌아가 편히 쉬며 좋아하는 TV 프로를 보려고 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기다려 오던 주말 산행을 가면서도 오를 때는 빨리 정상에 도착하기를 기대하고, 정상에 도착해서는 빨리 내려가 집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이쯤되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다림은 병적이고 자동적이며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진정으로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 어떤 과장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언제나 바로 다음 순간, 혹은 미래의 어느 순간을 꿈꾼다. 미래를 부푼 마음으로, 설레는 그리움으로 아련하게 기다린다.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전혀 다른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아주 굳게 믿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너무 부풀려져 있고 과장되어 있다. 심지어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어떤 것으로 확장되어 있다.
우리가 미래를 꿈꿀 때 그것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미래의 어떤 즐거운 일을 상상할 때, 기대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할 때, 우리 마음은 설렘을 넘어서 어떤 흥분 상태에까지 이르곤 한다. 그저 미래를 생각하기만 했는데도 충분히 우리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이처럼 미래는 언제나 환상적이며 가슴이 뛰고 그 가치가 너무 과하게 확장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꿈꾸던 바로 그 흥분되는 미래가 막상 현실로 되었을 때는 어떤가? 과연 내 상상 속의 그 미래가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환상적으로 펼쳐지는가? 대개 그렇지 못하다.
생각과 상상과 계획 속에서 꿈꿔오던 그 부푼 미래가 현실이 되는 순간, 그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바뀐다. 그리고 현실은 우리에게 별다른 매력이 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우리는 미래 그 자체를 진정으로 기다린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 즐기고 만끽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며,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서툰 것이다.
그렇게 부풀어지고 과장되어 있던 미래의 기대가 현실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평범하며 맹물처럼 밍숭맹숭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심지어 대단한 성취나, 너무도 간절했던 바람이나,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순간 조차 잠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흥분할 뿐 그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다시 별반 다를 것 없는 현실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꿈꾼다.
군 생활 2년 내내 전역만을 바래오던 이들도 전역하는 날 소감을 물어보면 모두가 ‘의외로 담담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사랑하던 이와 마음을 애태우다 결국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그 기쁨과 설렘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대학생활을 마감하며 그렇게 기다리던 취직을 이루었더라도 취직하는 순간 그것은 설렘과 흥분의 어떤 것이기 보다 생생한 현실 그 자체로 바뀌고 만다.
이렇듯 기다리던 미래가 현실이 되면 그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매혹적이지만은 않은 것임이 속속 증명된다. 그러면서 또 다른 설레는 미래를 찾는다.
이 현실의 실망감을 대신해 줄 또 다른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며 기다린다. 또 다시 그 기다림은 부풀어 오르고 설렘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것은 여전히 그냥 그럴 뿐이다.
미래는 언제나 부풀려 져 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할 때 그 생각과 상상은 현실이 아닌 단지 사고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사고와 생각은 현실을 왜곡한다. 현실을 과장한다.
현실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일 뿐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재는 말 그대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평범하다.
물론 그 평범한 현재 속에 깊은 비범함이 숨겨져 있지만, 우리는 그 뒤에 감춰진 현실의 깊은 심연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 채 겉에 드러난 평범함에 실망하고 만다.
옛 선사들은 ‘평범함이야 말로 가장 큰 도’라고 했고, ‘지금 여기의 현재야말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순간’ 이라고 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미래에 속으면서도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또 다른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것은 거의 병적이거나 장애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생 동안 매번 속지만 늘 그것을 잊고 또 다시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만 할 뿐, 죽기 직전까지도 ‘지금 여기’의 현재에 머물러 깨어있는 현존을 누려보지 못한다.
그렇듯 매 순간의 현재에 늘 미래를 꿈꾸고 있다 보니 생생한 지금 여기의 현재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현재는 언제나 밍숭맹숭하고 평범할 뿐이다. 현재는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현재가 평범하고 미래가 장밋빛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를 무시하고 늘 과거와 미래로 마음을 내 보내면서 상상으로 과거와 미래를 초대하기 때문에 현재가 그렇게 초라하게 바뀐 것일 뿐이다.
현재 그 자체가 초라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를 무시함으로써 현재가 그 빛을 잃은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우리의 삶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니까. 그렇게 꿈꾸고 기다리며 설레여 했던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 그것은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삶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 삶은 언제까지고 희뿌옇고 빛을 잃으며 그저 그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달 뒤에 해외 여행을 가게 된다. 그 여행을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없다. 오직 한 달 뒤에 있을 여행을 꿈꾸며 부풀어 있다. 그 여행에 대한 환상은 실제 여행보다 더 과장되어 있다.
막상 여행을 가는 날 아침이 되면 혹은 여행지에 도착하여 계속되는 일정을 소화해 가며 유적지를 찾아 돌아다닐 때가 되면, 그 여행이 내가 꿈꿔오던 그 설렘과 흥분과 환상의 여정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금방 증명이 된다.
그러면서 이 오래고 지겨운 여행이 빨리 끝나고 안락한 나의 보금자리로, 그리운 일상으로 되돌아 갈 날을 기다린다. 물론 그 또한 설레는 가족과의 조우나 친구들과의 만남이라는 과장된 기대를 동반한 채.
이처럼 끊임없이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환상을 먹고 산다. 끊임없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다림은 계속된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현재에 있다.
우리의 그런 부풀려지고 과장된 미래에 대한 꿈이 단지 환영이고 신기루임을 바로 보고 ‘지금 여기’의 현실로 되돌아오는 순간, 우리의 모든 방황과 혼돈과 기대는 사라지고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 된다.
진째배기 알맹이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미래는 그것이 아무리 환상적인 계획이나 성취일지라도 단지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낸 과장일 뿐이다.
가만히 사유해 보라.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는가? 지금 이 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하는가? 현재에 온전히 만족하는가?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미래의 어느 순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 우리 모두는 늘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으로써 무한한 에너지는 생명력의 원천인 현재를 축소시키고 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부풀려지고 과장된 미래를 분명히 보라. 분명 그것은 과장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생각이고 사고일 뿐이다.
완전히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라. 완전히 지금 여기를 즐기라.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라. 지금 이 자리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클라이막스다.
내가 그렇게 꿈꿔오던 모든 것이 성취되는 순간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이 말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 모든 순간은 사실 바로 ‘지금’에 있다. 그 어떤 순간도 기다릴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살고, 얼마나 깨어있느냐에 따라 그 기초 위에 모든 미래는 펼쳐지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모든 미래는 나온다.
그렇기에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다림은 언제나 거짓을 양산해 낸다. 기다림은 언제나 실패와 좌절로 끝날 뿐이다.
왜 그런가? 기다림의 끝에는 언제나 당신이 기다려 오지 않은 현재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 있는 현실을 보는 순간 당신은 또 다시 좌절할 것이다. 당신의 속성은 현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미래를 생각 속에서 상상해 만들어 냄으로써 그 공허감을 채우려 할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미래를 기대하는데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기대의 끝에서 만나게 될 ‘현재’와 함께 공존하고 누리며 그 안에서 함께 사는 법을 깨닫는 것이다.
이 무한한 정신착란의 병적인 증세를 도대체 언제쯤 그만 둘 것인가. 바로 지금 그만 둬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 머물라. 기다리지 말라. 미래의 무언가를 바라지 말라. 그것이 우리의 모든 꿈을 이루어지게 하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순간이다.
매 순간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늘 살피라. 어디로 가려고 하는 마음을 지켜보라. 다음 순간을, 미래를 추구하고 있는 그 마음을 지켜보라.
매 순간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라. 지금 여기의 삶을 다만 지켜보라.
그랬을 때 본래적인 삶의 신비와 접촉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것이며, 경이로운 것인지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과장되고 부풀려진 미래 대신 그 자리에 차분하고도 평온하며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이라는 신비가 들어 차게 된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행복하라.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평화로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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