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의 병 / 릴라님

2015. 12. 5. 19: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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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의 병 / 릴라님

중생의 병을 '있음'의 병에 비유합니다.

생각으로 드러나는 여러가지 관념과 가치, 감각으로 드러나는 여러가지 모습들,

감정의 덩어리들을 있다고 여기는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감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감정 또한 변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드러나기는 드러나는데 어느 순간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드러났다하면 무엇이 일어났거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정하는 방편의 말을 많이 씁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항상한 모습이 없습니다.

쉼없이 변화합니다. 어느 것이 그 구름의 정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조금 전에 본 구름이 한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지나도 그러한 모습으로 거기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일상사의 모든 것, 헤아리고, 알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전의 구름이 한 시간 후, 하루 뒤에도 그 모습 그대로 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을 자신의 가치, 신념, 감정에 부여해 버립니다. 

 이것이 병입니다. 이것이 번뇌입니다. 모든 말할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찰라찰라 결코 멈춰있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쉼없는 생각의 흐름에서 드러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참으로 멈춰있지 않은 것이 신비할 따름입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깨달음의 길입니다.
방편의 말로 없다, 없다 하는 것도 없다는 견해로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도 무엇이 있다는 견해에 많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있다는 견해가 너무도 심하여,

'없음'이라는 것조차 '없음이 있다'라고까지 여기는 지경입니다. 

 그러나 없다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러하다면 옳지 않다는 것도 역시

고정된 참이 아닙니다.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따로 없음. 사실 이것도 마지못한 말인 줄 알아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분별심은 자꾸 관념의 집을 짓고 머물려는 습성을 보입니다.

분별하고 취사선택하여 머물거나 배척하려는 습성이 실상과 배치되어

번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을 뿐입니다.

견해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따라 일어나는 온갖 견해가 그저

견해일 뿐이어서 실체가 없음을 명백히 보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봐야지 해서 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있다에도 머물지 말고

없다에도 머물지 말아야지 하며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텅빈 마음에서 일어난 환상과 같아서 어느 것도 머물 만한 것이

없다는 자각이 이루어져야 저절로 머물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실상을 깨달을 뿐입니다.

온갖 것이 지금 이렇게 스스로에게서 일어납니다.

온 우주가 자기를 떠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생각으로 실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뭐가 따로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냥 언제 어디서나 사물을 따라가지 않고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지 않을 때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 모두에게 평등하게 갖추어져 있는 천연의 성품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이 텅빈 자리에서 온갖 것이 의미가 되고 실물인 것처럼 드러납니다.

당처가 이렇게 비었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 따로 있을리 만무합니다.

이것을 철저히 깨칠 뿐입니다.

깨닫고 보면 있음도 빈 말이고 없음도 견해여서 어느 것에도 실체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옳음도 비었고 그름도 비었습니다.

온갖 것이 신령스럽게 일어나기는 일어나는데 아무런 자취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을 통렬히 깨치기만 하면 모든 가르침의 말들이 저절로 소화가 됩니다.

지금 당장 그렇습니다.

지금 눈앞에 드러나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지만 묘하게 살아 꿈틀대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