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6. 18:19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21>화엄철학과 귀납법
- 자연수 서로 의존하며 상충없이 존재 -
- 화엄철학 ‘수학적 귀납법’과 맥같아 -
낱낱의 수는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전체적 관계를 보지 않고는 그 본질을 이해할 수도 없다. 불교의 연기관(緣起觀)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상대를 존재케 하는 관련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불교는 모든 것이 본절적으로 공(空)이며 그것은 곧 연기로서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공↔연기의 입장이다. 화엄에서는 일체법(一切法)은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이 되고 서로 상충하는 일없이 상대의 존재를 가능토록 한다. 화엄철학을 수립한 현수대사 법장(法藏, 643∼712)은 <오교장>(五敎章)의 ‘십현연기무애법문의’(十玄緣起無碍法門義)에서는 자연수의 본질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편의상 一에서 十까지의 수가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十은 자연수 전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一에서 출발해서 차례로 一을 더해 가면서 二, 三, …, 十이 되고 거꾸로 十에서 차례로 一을 빼어 一에 도달한다.
문명 사상 인류가 맨 처음으로 생각한 수는 1, 2, 3 정도였고 그것은 차츰 1, 2, 3, 4, … 로 확장되어 갔다. 이들 수 전체의 모임을 자연수라 한다. 이처럼 자연수는 인간에게 가장 친근하고 자연스럽다. 자연수는 1에서 시작하고 차례로 1을 더하면서 새로운 자연수를 만들고 한없이 커져 가는 것이다.
자연수 사이에는 이와 같이 자연의 순서가 있으며 모두가 그 바로 앞에 있는 수와 그 뒤에 이어지는 수로써 결정되어 있다. 연으로써 이루어지고 연기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상즉상입(相卽相入)이다. 자연수 모두가 상대의 존재를 확립하면서 상충함이 없이 함께 존재한다. 一은 一이면서도 二이자 三, … 十이다. 이 사실을 인간세계에 옮겨 생각하면 나의 존재는 조상의 존재를 확립하고 또한 조상이 있음으로써 내가 존재할 수 있고 후손도 있다. 이 논리를 그대로 인류 전체에 확장시켜 갈 수도 있다. 자연수가 1에서 1을 차례로 더해 가면서 상호(相互) 의존의 관계를 기반에 두고 있다. 그것은 현대 수학의 ‘수학적 귀납법’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수학자는 그 동안 막연히 수를 다루어 왔으나 마침내 큰 모순에 봉착했다. 즉 수학의 위기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나타난 수학 기초론에 등장한다.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는 자연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자연수에는 특수한 것이 있다. 이것을 1이라 이름 짓는다. (2) 임의의 자연수 x에,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x1가 있다. (3) 두 개의 자연수 x, y의 뒤에 바로 이어지는 x1 y1가 같을 때는 x와 y는 같다. (4) 어느 자연수의 바로뒤에 이어지는 수는 1은 될 수 없다. 때문에 1은 특별한 수이다.
이 사실에서 자연수에 관한 귀납법이 유도될 수 있다. 수학 교과서에서는 ‘수학적 귀납법’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수에 관한 임의의 명제가 (1) 1일 때 성립하고 (2) 임의의 자연수 n에 대해 성립한다면 그 바로 뒤에 있는 자연수 (n+1)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이 증명법은 무한히 존재하는 자연수에 관한 명제의 증명에 대해 이용되는 것이다.
가령
1+2+3+4+……+n=1/2n(n+1)라는 공식은
n=1일때 1=1/2·1·2=1
n=2일때 1+2=1/2·2·3=3
n=3일때 1+2+3=1/2·3·4=6
이와 같이 해서 무한히 많은 n에 대해 공식이 성립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일이 모든 n에 대해 검증할 수는 없다. 모든 n에 대해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수학적 귀납법이다.
(1) n=1일 때는 1=1/2·2·1=1로써 공식이 성립됨이 증명된다.
(2)n=k일 때(k는 임의의 자연수) 1+2+……+k=1/2·k·(k+1)가 성립한다고 가정하면 양변에 (k+1)를 대입하여 결국 1/2(k+1)(k+2)가 됨을 증명하면 된다. (이에 관한 자세한 것은 고1의 수학 교과서 참조)
이 증명법의 본질은 법장이 一, 二, 三, …, 十의 수에 관해 설명한 각 수들 사이의 연기의 관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법장은 페아노보다 1300년 이상 앞선 사람이다. 수학적 훈련도 없고 현대 수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수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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