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富者)/강병균 교수

2016. 2. 20. 15: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부자  (富者)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엄청 부자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그렇습니다.

 

영화관은 나를 위해 일 년, 열두 달, 365일 문을 열고 기다립니다. 관리비를 안 주어도 알아서 운영합니다. 가끔 가서 수고했다고 팁으로 만 원짜리 한 장 던져주면 고맙다고 연신 절을 합니다. 내 소유나 다름없읍니다. 재산세에, 소득세에, 직원관리에,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되니 행복한 소유자입니다. ‘영화를 보는 곳’이라는 영화관의 본래 목적에 비추어 보면, 내가 진정한 소유자입니다.

 

미국 영화관도 내 소유입니다. 자주 갈 일이 없어서 가뭄에 콩 나듯 들려도, 정말 관리를 잘하고 있읍니다. 한 편 댕기러 들어가며 건네는, 10불짜리 팁 한 장에 ‘Thank you, thank you" 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충실한 외국인 청지기들에게 감사합니다.

 

음식점도 내 것입니다. 밥맛이 없을 때 들리면 밤늦게는 물론이고 꼭두새벽에도 문을 열어놓고 기다립니다. 청소, 설거지, 문단속, 위생관리, 일체 걱정할 필요가 없읍니다. 자기들 책임하에 정말 열심히 음식점을 돌봅니다. 어쩌다 한 번씩 들리는 나 같은 주인을 위해 저리 봉사하는 것을 보면, 몇 천원 금일봉을 쥐어주는 제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자동차회사도 내 거입니다. 전(全) 세계 어느 자동차보다도 품질 좋은 차를 만들어주려고 밤을 새워 연구합니다. 그 큰 공장을 짓고 유지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싼 값에 차를 제공하려고, 붉은 띠 질끈 동여맨 이마를 들이밀며 재벌타도 기치(旗幟)를 내세우고 공격해 들어오는, 노조를 상대로 임금협상을 하려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까요? 자동차 한 대를 얻으려면 자동차회사를 통째로 소유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차라리 걸어가고 말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겁니다. 공장을 다 사지도 않았는데도, 그리고 어쩌다 한 대 가져갈 뿐인데도, 직원들은 제 눈치를 보며, 하시라도 가져가게, 진열장에 좋은 차를 대기시켜 놓읍니다. 저는 정말 현명한 소유자입니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마름회장은 저를 위해 봉사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새 버렸읍니다. 미안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런 마음은 진정한 소유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심입니다.

 

자동차수리소도 긴급출동소도 다 내 소유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문을 열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내 자동차 사고에 대비합니다. 출동소는 전국에 널려있읍니다. 소유만 하고 책임은 전혀 없읍니다. 나는 축복받은 소유자입니다.

 

백화점과 식품점에 가보면, 뻔히 다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내가 찾을까 싶어 온갖 상품과 식품을 전시해 놓고 있읍니다. 가서 가져오고, 수고한다고 몇 푼 쥐어주면 다입니다. 물건이 팔리지 않을까 불량품이 있을까, 음식이 상할까 썩을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자기들이 알아서 대신 걱정해 줍니다. 보살도 저런 보살들이 없습니다.

 

숙박업소도 다 내 부동산입니다. 주인님이 불편할세라, 여름으로 겨울로 에어컨과 히터로 방을 식혀두고 덥혀두고, 24시간 현관에 불을 밝히고 혹시 내가 들를까 기다립니다. 전 세계 수백만 개의 호텔과 여관이 다 그리합니다. 지구상에 아무것도 없을 때 여행하던 사람들은 밤을 새우기 정말 불편했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숙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비용이 너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은 세상에 숙박업소가 넘치니 벼락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아무 때나 들러서 마음껏 잠을 잔 다음 가뿐하게 기지개를 펴면 됩니다. “참 잘~ 잤다, 난 정말 부~자야” 하고 말입니다. 계절에 맞추어 온수·냉수로 샤워를 하면 여독(旅毒 餘毒)이 날아갑니다. 물론, 머슴들에게 잊지 않고 용채를 건네는 것은 경우를 아는 주인의 기본입니다. 

 

전 세계 농토가 다 내 거입니다. 소작농들은 뙤약볕, 찬바람, 눈비 다 맞아가며 농사를 지어 쌀, 콩, 밀, 보리를 생산해 바칩니다. 열대지방에선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제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기릅니다. 쥐꼬리만 한 수고비를 쥐어주고 나면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해마다 수고비는 내려갑니다. 그래도 고맙답니다. 더나 내려가지 않으면 다행이라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이런 사람들이라면 온 우주를 맡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 세계 바다도 다 제 거입니다. 가까운 밤바다에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조업 중인 오징어 몸부림에 출렁이는 목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원양어선들은 인정사정없는 새까만 해적들이 출몰하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변까지 가서 물고기를 잡아옵니다. 어떻게 우리 어머님이 물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기특하기도 합니다. 장자의 거대한 물고기 곤(鯤)이 붕(鵬)으로 승천하며 일으키는 곤륜(崑崙)산맥만 한 폭풍우를 뚫고, 집채만 한, 63빌딩만 한, 설악산 공룡능선 같은 파도가 이는 먼바다로 나가 목숨을 무릅쓰고 물고기를 잡아 대령합니다. 참다랑어가 칼치처럼 물을 가르면 하인들 얼굴에 날카롭게 주름이 베어지고, 돌돔이 바위 틈 깊숙이 숨으면 주름은 더욱 깊어집니다.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몇 마리 먹는 것도 아닌데, 주인의 입맛을 섬기려 하인들이 몸을 사리지 않으니 정말 복받은 부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온 우주가 내 것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폭죽을 수백 개씩이나, 우주를 가로질러, 수경(京) km를 운반해 우리집 하늘위에서 불꽃놀이를 벌입니다. 그걸 일부러 개최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그 코딱지만 한 바이킹 우주선 한 대 띄우는 데 수천억 원이나 들었답니다. 추운 겨울 귀뚜라미 보일러로 30평 오막살이 난방을 하는 데도 제법 돈이 드는데, 하늘 한가운데에 난로를 설치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습니까? 태양 말입니다. 자연이라는 정원을 덥히는 초대형 천연 난방기구입니다. 태양은 매일매일 원자력발전소 무량대수 개분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우리는 그 에너지를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부자입니까?

 

해가 넘어간 밤하늘에 달도 별도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그럼 아무도 밤길을 거닐며 벚나무 밑을 찾아, 꽃이 만발한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달님과 별님을 노래하지 않을 겁니다. 문학은 사망하고 우리들 가슴에는 어둡고 황량한 모래바람만 불 겁니다. 시인들과 정인(情人)들이 밤잠을 미루고 늦도록 자연과 사랑을 찬미하도록 하늘에 달과 별을 뿌리려면 얼마나 돈이 들까요? 밤하늘을 밝히려면 자그마치 100해 개의 수소가스등(燈), 즉 별이 필요합니다. 100해는 1,000억 곱하기 1,000억입니다. 1뒤에 0이 22개나 달려있는 수입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지요. 별 하나의 수소가스 양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이니, 전체 별들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이미 하늘에 달과 별들이 설치되어있으니,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부자입니다.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 부자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가 우리의 손길만 기다리며 존재를 지속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 안 사라질 거라 합니다. 가끔 지구를 향해 큰 돌을 던져대며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든 관리인인 신(神)은 정말 우주를 잘 운영합니다. 자연이라는 정원에 철따라 갖가지 꽃들을 피우고, 새들과 짐승들을 놓아기르며, 멋들어지게 정원을 가꿉니다. 잊지 않고 “참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야료(惹鬧)를 부린다고 하니, 그것만 조심하면 됩니다. 호사가들은 150억 년 전에 엄청난 폭발사고가 있었고 그게 그 신이 벌인 일이라고 쑥떡대지만, 무료함보다는 가끔 그런 사고도 나야 세상은 재미있는 법이지요.

먹고살 만한 중산층의 배부른 소리가 아니냐구요? 글쎄요.

 

외팔이 억만장자가 나머지 팔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1조 원이라도 지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지 멀쩡한 우리는 모두 1조 부자입니다. 팔이 하나만 있으면요? 팔이 둘 다 없는 억만장자는 팔 하나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1조 원이라도 지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이 하나만 있는 사람도 엄청난 부자입니다. 숨이 넘어가고 있는 억만장자는 목숨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이 아깝지 않을 겁니다. 그러므로 목숨이 붙어있는 우리 모두는 부자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부자입니다. 불교 가르침에 의하면 일체유심조라 마음먹기 나름이라 하지만, 이 사실은, 마음의 장난이 아니라,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진실입니다. 우리가 부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온 우주를 소유한 것을 모르고, 작은 땅덩어리나 물질덩어리에 집착해 평생 거기 묶여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 빈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덕에 우리야 편히 살지만, 그들이 어리석은 중생인 것은 분명합니다. 욕망은 정말 이상한 물건입니다. 타인의 소유욕으로 인해서 우리는 편히 삽니다. 이마트, 음식점, 옷가게, 영화관, 백화점, 청과물점, 신발가게, 컴퓨터회사, 자동차회사, 이동통신사, 가전제품회사 등에 대한 소유욕이 없으면 사바세계의 편의(便宜)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 소유욕이라는 끈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곳에, 우리하인으로, 꽁꽁 묶어둡니다. 정말 욕망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물건입니다. 필시 그래서 이 세상을 욕계(欲界)라 부르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하여 우리가 부자가 된다니, 이 세상은 정말 이상한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이상한 부자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이상한 부자’입니다. We are strange quillionaire moguls in the wonder land!

 

죽어가는 자는 살아있는 자를 부러워하지만, 살아있는 자는 죽어 다른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꿈꿉니다. 이 세상은 정말 이상한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자기가 부자인 것을 모르는 이상한 부자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이상한 부자’입니다. We are strange quillionaire moguls in the wonder land!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불교교리·용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야 / 릴라  (0) 2016.02.28
무념무상[無念無想]   (0) 2016.02.28
분리의 종식  (0) 2016.02.20
삼신불 (三身佛)  (0) 2016.02.20
아름다운 가치 / 空性  (0) 201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