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 릴라

2016. 2. 28. 14: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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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지금 이렇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르기만 하면 누군가 대답하기도 전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서암 언 화상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아!” 하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어서 “깨어있어라!”,
“예!”,
“훗날 남들에게 속지 말아라!”,
“예, 예!” 하고 말하였습다. 

"주인공아!" 바로 이것입니다.
"예"도 물론 다른 것이 아니지만, 부르는 것이 이미 이 일입니다.

부르는 것이 응하는 것이고, 묻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이 일이지 따로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서암 언 화상은 주인공아, 예, 깨어있어라, 예,

훗날 남들에게 속지 말아라, 예 예 모든 곳에서 이것을 확인했습니다.
대답하는 놈이 따로 없고 부르는 놈이 따로 없는 것입니다.
둘이 되어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이지만 대화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저 매 순간 이 하나뿐임을 스스로 분명히 했을 뿐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서암 화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 한 개의 마음 바탕에서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습니다.
오직 이 한 개의 일이 온갖 영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온갖 소리 사이에 틈새가 없고, 온갖 동작과 동작 동작 사이에 다른 일이 없습니다.

균일하고 편만하게 모든 것이 이 하나의 일로써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푹 안심입니다. 달리 찾을라치면 이것이 분명할 뿐입니다.
마음을 일으키기도 전에 이미 당연한 일이니

애써 노력하는 어리석음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의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정변에 눈도 꿈쩍 안 합니다.
이것은 온갖 사랑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온갖 고통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을 어떠한 차별이나 구속 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인연 따라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차별 없는 사랑이고 이것이 누구 혹은 무엇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에 손을 내미는 자비이며,

이것 하나이기에 어떠한 장애도 없는 자유입니다.

모든 움직임, 생각함, 느낌, 들음, 봄 가운데서 드러나는 모양을 따라

길을 잃지 마시고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장애 없이 드러나는 여기를 돌이킬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이것을 떠나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해질 뿐이며, 여기에 나머지가 사라질 뿐이며,

이 하나뿐 임에 감사하고 마음 놓을 뿐입니다.


- 릴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