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기적인 동물/강병균교수

2016. 2. 28. 14:2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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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인 동물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그림같이 아름다운 태고의 자연이 숨 쉬는 미국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두 사람이 등산을 하기로 했다. 한 사람이 신발끈을 단단히 매느라 시간을 끌었다. 빨리 등산을 하고 싶어 조바심이 난 나머지 한 사람이 물었다. 자네는 왜 그리 신발끈을 튼튼히 매는가? 곰을 만나면 도망가려고 그러네. 그래봤자 사람이 곰보다 빨리 뛸 수 없으니 헛수고 아닌가? 자네보다만 빨리 뛰면 되지!

하하하. 곰은 욕심이 없어서, 또 냉장고가 없어서, 먹이를 한 번에 한 마리만 잡는다. 그래서 곰이 친구를 잡으면 자기는 안전하다. 그러므로 자기 친구보다만 더 빨리 도망가면 된다는 소리다. 곰이,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자기 친구를 지나쳐, 앞서 달리는 그래서 잡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자기를 좇아올 리는 없다는 논리다. 신발끈을 맴은, 삶(등산)은 같이 할 수 있지만 죽음은 같이 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톰슨가젤은 천적 사자 앞에서 대놓고 선전한다. 자기가 엄청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한 번 도약에 10m 거리를 뛸 수 있는 가젤은 엄청난 높이로 '통, 통, 통, 통' 점프(stotting)를 반복하며 자기 실력을 과시한다. 봐라. “네가 이런 고속(高速) 스프린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니? 날 좇아오다간 고픈 배만 더 고파진다. 그러니 헛수고 하지 말고, 나보다 느린 내 동료들이나 좇아가렴.” 사자더러 자기보다 느린 자기 동료들이나 잡아먹으라고 권하는 소리다. 물론 가젤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젤은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그리하는 것이다. 사자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점프 가젤에겐 맘이 안 내킨다. 알 수 없는 먼 옛날부터 점프를 한 가젤은 잡아먹히지 않아 살아남았고, 그 가젤을 안 좇아간 사자 역시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런 습성을 가진 가젤과 사자가 후손을 남기고 그 습성은 유전되었다. 이 모든 일이 무의식적으로 벌어진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아는 동물은 없다. (우리 마음의 사바나에도 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경쟁은 이해함이 없이 벌어진다(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 진화의 특징이다. 푸른 하늘 아래서 한바탕 살육이 벌어지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자는 사체를 뜯어먹고 다른 동물들은 풀을 뜯어먹는다. 어느덧 하얀 뼈만 홀로남아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채 누워있다. 갑자기 하늘이 돌변해서 소나기가 쏟아져 내려도 그건 애도의 눈물이 아니다. 비가 그치면 그 비를 흠뻑 마신 풀은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그 풀을 먹고 살이 쪄 몸이 둔해진 가젤을, 배고파 몸이 가벼워진 사자는 바람같이 덮친다. 그러면 다시 소나기가 왔다가고, 해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벌거벗은 몸을 내보이며 찬란하게 비친다.

명문대 대학원 박사과정 남학생이 박사자격시험에 떨어져 쫓겨나게 되었다. 지도교수의 권고로 유럽명문대학에 지원을 했다. 여자친구는 유학을 가게 되면 그 전에 결혼을 하자고 했지만, 여자 부모는 미온적이었고 남자부모는 일단 합격여부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드디어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기세등등해진 남자부모는 "감히 잘난 내 아들을 넘보다니" 하며 "헤어지라"고 했고, 아직 직업이 없는 남자를 탐탁하지 않게 보던 여자부모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생활력이 없는 남자가 강대국들 틈에서 눈치만 보는 사이에, 불쌍한 여자만 공중에 붕 떴다. 유학을 가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을 떠안으려는 믿음과 사랑이 없다. 양측 부모의 이기심만 치성하다. 두 남녀의 마음도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금이 갔는지 모른다.

중국춘추전국시대에 각 제후국들은 무력을 과시했다. 자기가 전국패자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강하니, 누구도 자기를 넘보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다가는, 날래고 건강한 가젤을 좇아가다가 잡기는커녕 남은 에너지마저 허비하는 사자 꼴 난다고 경고한다. 잡아먹으려면 다른 나라나 잡아먹으라는 소리다. 다른 나라들이 다 잡아먹히면,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자기도 잡아먹히겠지만, 그건 먼 훗날 얘기고 또 남들도 다들 자기들보다 느린 애들만 믿고 있어서, 말이 안 통한다. 이때 그러지 말고 약자들이 힘을 합쳐 강대국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소진의 합종책(合從策)이다. 작은 이기심을 큰 이기심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서로 돕는 것이 오히려 이기심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멋을 내며 자기 능력과 미를 과시한다. 이 일에는 남녀노소의 차이가 없다. 보스와 이성(異性)이,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일부러 짬을 내어 자기를 봐줄 것인가? 저절로 눈길이 자기에게 향하도록, 열심히 일하고 멋을 내어 튀는 수밖에 없다. 자기는 유능하고 근면하고 아름다우니, “자르려면 다른 사람들을 자르라”는 소리다.

열심히 선행을 하는 사람도 근본적으로 뜻은 동일하다. 염라대왕이, 누군가를 지옥으로 잡아가야 한다면, 착한 자기는 놔두고 남들을 잡아가라는 소리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건 다 환경 탓이고 다른 사람들 책임이다.) 설마 천국과 지옥의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을 리는 만무하므로, 천국과 지옥행은 절대평가이지 상대평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불행(幸不幸)은 상대평가에 기초한다. 아무리 잘 살아도 주변이 더 잘 살면 불행하다. 월스트리트에서 연봉 100만 불(약 11억 원)을 받는 펀드매니저의 부인이 우울증에 걸렸다. 주거지인 최고급아파트 빌딩에 사는 다른 부인들만 보면 속이 상했다. 그네들이 더 큰 다이아 반지에, 더 고급 옷에, 더 비싼 차를 몰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너무 너무 불행했다. 더 이상 심적 고통을 못 견디고 정신과를 찾았더니, 의사의 처방은 한 등급 낮은 아파트단지로 이사 가라는 것이었다. 남편을 들볶아, 이사 가자마자 거짓말처럼 우울증이 사라지고 몹시 행복해졌다. 그 동네에서 제일 잘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세의 행불행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행과 악행도 상대적으로 평가한다. 남보다만 덜 악행을 하고 더 선행을 하면, 지옥행을 면하고 천국행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는다. 이 모두 의식의 장난임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그리한다. 무의식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자기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아직 멸종하지 않은 다른 종들처럼,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자기 이익을 챙기며 삶으로써,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제 얼마 전에 자의식(自意識 self-consciousness)이 생긴 인간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자기가 하는 행동 뒤에 숨어있는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35억 년만에! 그러면, 그 의도를 이해함으로써, 그보다 더 나은 길을 의식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 타인이 아닌 자기가 행복해야 한다는 이기심과, 타인보다 자기가 더 행복해야 한다는 이기심과,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오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티수행이 중요한 이유이다.

아!, 하지만, 참나주의자(眞我主義子 true atmanist)들이 반대할지 모르겠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점에. “그거 성악설이 아니냐?”고 핏대를 올리면서. 하지만 참나주의자들에 의하면 나쁜 짓은 참나가 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연쇄살인은 (연쇄살인범의) 참나가 벌인 일이 아니다. 어떻게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참나가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은, (설사 참나가 있다 하더라도) 참나가 아닌, 가아(假我 참나가 아닌 가짜나)에 해당하는 말이므로 전혀 분노할 일이 아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행복의 비결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 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