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과 알바트로스/강병균 교수

2016. 4. 24. 12: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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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알바트로스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자기가 지은 업(業)은 절대 없앨 수 없다고 한다. (많은 경우에 업의 해소란 업으로 인한 안팎의 장애를 관리가능한 정도로 줄이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면 해소된 걸로 간주한다.) 남이 지은 업은 부처님도 대신 받아줄 수 없다고 한다. 부처님이 하실 수 없는 몇 안 되는 일인 ‘부처삼불능(부처三不能)’ 중 하나이다.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살인마 앙구리마라는 부처님으로부터 감화를 받아 승려가 된 후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 이처럼 업은 작용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두 사람이 전생에 사람을 열 명씩 얼굴에 황산을 끼얹어 죽여 그 업으로 얼굴이 흉하게 뒤틀린 코끼리 얼굴을 한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필자가 모든 장애인이 전생에 지은 죄로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예를 들더라고 똑같은 오해를 살 수 있다. 윤회론이 가진 큰 약점이다.) 이들이 20살 되던 해에, 술에 취해 철길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만 기차에 치여 죽었다. 그리고 좋은 곳으로 환생하였다. 이 사람은 장애인으로 살기로 되어있던 인욕의 세월 100년을 20년으로 줄인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 사람은 용감한 의인이라고 평생 존경받고 살게 되었다. 전처럼 조롱받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텔레비전에 여러 차례 보도되어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장애인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앞날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업의 작용이 멈춘 것은 아니다. 전생의 업은 여전히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한 선행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괴상한 외모를 놀려댈 수 있다.)

그 업의 힘을 이기려면 반대 방향으로의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바로 이타적 행위로 인한 사고사(事故死)나, 그러다 자기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극복한 의지였다. (소위 영적 뉴톤역학이다. 제1법칙(관성의 법칙): 내부·외부의 영향이 없는 한 나쁜 성향은 나쁘게, 좋은 성향은 좋게 유지된다. 제2법칙(작용반작용의 법칙):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면 자기도 그만큼의 영향을 받는다. 악행을 하면 악행을 받고 선행을 하면 선행을 받는다. 제3법칙(질량가속도의 법칙):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에 비례하며, 방향은 가속도의 방향과 같다. 특정행위가 유발하는 업은 당하는 사람 수와 행위의 강도에 따라 그 크기가 결정된다. 업의 방향은 행위의 방향과 일치한다: 선업은 선과로 악업은 악과로 나타난다.)

악업(惡業)의 힘은 계속 작용한다. 악업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선하고 옳게 사는 게 더 힘이 든다. 악업이 클수록 더 큰 힘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악업의 힘을 거스르는 반대 방향의 힘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다. 그건 의지에 의해 올 수도 있고, 스승의 가르침이 유발하는 감화와 그에 따른 변화에 의해서 올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과거의 악업은 현재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걸 더 힘들게 만들 뿐이지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의지의 힘으로 노력을 배가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과거의 악업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선업을 쌓으면, 과거에 쌓은 악업을 이길 힘이 생긴다. 정강이에 모래주머니를 달면 걷기 힘들지만, 모래주머니가 무거울수록 더 힘들지만, 꾸준히 운동을 해 근력을 기르면 남들보다 힘들어서 그렇지, 전혀 걸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악업이 바로 모래주머니이고, 운동을 하려는 마음이 의지이고, 운동이 수행이다. 운동을 멈추면, 모래주머니가 발호(跋扈)해 걷지 못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나름대로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으며, 누구나 나름대로 수행을 한다. 모래주머니 무게를 이기지 못해 걸을 수 없는 당신을, 어떤 사람이 자비심을 일으켜 목적지까지 업고 데려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나면 다시 원상태이다. 타인의 도움은 일시적이지만, 근육강화 운동은 항상 걸을 수 있게 만든다. 업은 항상 작용한다. 악업은 항상 작용한다. 하늘로 도약하는 걸 방해하는 중력처럼 우리를 끌어내린다. 그래도 우리는 비상(飛上)할 수 있다.

12kg의 무거운 새 알바트로스(albatross)와 19kg의 더 무거운 새 코리 버스터드(kori bustard)를 위로 솟아오르게 하는 양력(揚力)을 생산하는 근력을 기르면 된다. 그러면 항상 작용하는 악업의 힘을 이길 수 있다. 창공을 날아다닐 수 있다. 까마득하게 높이 솟아오를 수 있다. 그런 양력을 생산하는 근력을 기르는 법은 불경 도처에서 그리고 세상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열심히 읽고 듣고 경험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거운 악업을 이긴 영적 알바트로스이고 코리 버스터드이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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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때의 흐름은 다만 나아갈 뿐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러하되 꿈속에 있으면서 그게 꿈인 줄 어떻게 알며 흐름 속에 함께 흐르며 어떻게 그 흐름을 느끼겠는가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고 흐름이 흐름인 줄 알려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 땅 끝에 미치는 큰 앎과 하늘에 이르는 높은 깨달음이 있어 더러 깨어나고 또 벗어나는 그 같은 일이 어찌 어느 우리에게까지도 한결같을 수가 있으랴 놀이에 빠져 해가 져야 돌아갈 집을 생각하는 어린 아이처럼 티끌과 먼지 속을 어지러이 헤매다가 때가 와서야 놀람과 슬픔 속에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인 것을... -소설 삼국지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나의 친구와 사랑하는 님의 내곁에 있을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울고 싶을 때는 
친구와 님이 내 곁을 떠나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고 싶을 때는 
친구와 님의 맘이 점점 변해 갈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울 때는 
친구와 님의 맘이 갑자기 차가워 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할 때는 
친구와 님이 나의 존재를 잊으려 할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웃고 싶을 때는 
친구와 님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울 때는 
친구와 님이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할 때는 
친구와 님이 내 곁에 머물러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스러울 때는 
친구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은 것은 
친구와 님이 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하게 느낄 때는 
친구의 손을... 님의 따스한손을... 
꼭 잡고 마주 앉아 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친구와 님이 내 곁에 없다고 생각 될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라고 싶은 것은 
친구의 맘속에... 님의 맘속에... 
내가 영원히 간직되는것입니다.

인생은 먼길을 돌면서
중년 이후 외모는 변해갑니다
삼단복부 이중턱 구부정해지는 허리 등
그리고 흰머리 빛나는 대머리
또 늘어진 피부 자꾸 자꾸 처지는 눈꺼풀 등
그래도 말년을 앞에 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德이 있기 때문입니다.
덕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쌓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인간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움과 절망이 인간을
구제할 수도 있습니다.
노년의 연륜은 미움과 절망까지도
품을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살면 이해도 지식도
사리 분별력도 자신의 나이만큼 쌓입니다.
그런 것들이 쌓여 후덕한 인품이 완성됩니다.
 이 세상에 신도 악마도 없는 단지 인간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젊은 날의 만용조차 둥글 둥글해지고
인간을 보는 눈은 따스해 집니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견고한 자갈을 물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시간은 인간에게 성실할 것을 요구합니다.
잉여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 없이는 시간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은
두렵고 잔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비우고 미완성에 감사합시다.
노년 이후에는 '진격'보다는
'철수'를 준비해야 합니다.
물러설 때를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합니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습니다.
따라서'잃어버림'을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