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념의 존속

2016. 5. 8. 20:54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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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념의 존속

-禪 … 기존의 틀깨고 자신의 세계 구축-
-수학… 선구자의 길 따르며 새경지 개척-

지난호 본 난에서 ‘언어도단과 기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제는 언어도단의 ‘진여(眞如)의 세계’를 그의 일갈(一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제자의 행동에서 보였다. 또한 그것은 마치 수학에서의 무한에 관한 개념화와 기호화나 개념화 과정과 일맥상통했음을 말했다. 그러나 선(禪)은 지식이 아닌 마음에서 얻은 닮음이다. 같은 행동일지라도 사람마다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수학은 지(知)의 세계에 속한다. 그 속에서 여러 지식을 흡수하면서 그 틀에서만 통하는 생각과 논리가 정착되어 있다.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면 어떤 의문도 발생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지식도 그 세계에 머무르고만 있다면 새로운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임제화상은 이 상황을 ‘흑만만지(黑漫漫地·어둠이 세상에 가득하다)’라고 표현한다. 선(禪)은 모든 기존의 틀을 깨고 또 깨고 부정을 거듭하며 스스로 문제를 설정한다. 얻은 지식, 기존의 틀 모두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수학의 선구자가 처음 무한을 인식하고 일단 기호화가 끝난 후 후학들이 그 길을 따라가는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

임제가 죽음에 임하게 되자 조용히 앉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은 후 나의 정법(正法)을 잊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때 한 제자가 나서며 “어찌 감히 스승의 정법을 멸하게 하는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임제화상은 “그렇다면 나의 정법이란 무엇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할(喝)’이라고 일갈(一喝)했다. 그 말을 들은 임제는 “진여의 세계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구나. 이 미련스러운 놈! 이제 나의 법도 사라질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말을 그친 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말 그대로 ‘너는 안되겠다’는 부정적인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그 제자는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본래 임제의 세계는 분별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그의 정법이 정립된 것이라면 이미 기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정법의 세계는 자신 하나의 세계이며 진여세계는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으며 굳이 ‘나의 정법을 없애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까지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 내용을 말하라는 것은 더욱 격에 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 나의 법이 사라질 때가 되었다’는 말이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 선에서의 진여의 경지는 나에게만 나타나는 독자의 세계이므로 임제가 사라질 때는 이미 그 세계도 없어지며 그 제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야 된다. ‘부모를 죽이고 스승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여라’라는 말도 있다. ‘죽여라’로 표시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강렬한 구도정신이다. 스승의 법이 사라질 때가 됨으로써 오히려 제자의 세계가 열린다. 이 점이 수학과는 다르다. 처음 무한 세계를 온몸으로 인식한 수학자는 그것을 기호화(개념화)함으로써 제자에게 전한다. 기호화할 수 없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수학은 그것을 기호화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진입할 수 있다. 수학자는 스스로 개척한 무한의 내용을 기호화하고 후학은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가령 처음 발견된 무한의 세계를 ‘∞’로 기호화하면 무한을 더한 것, 즉 ‘∞+∞’ 또는 곱한 것(∞×∞), ……… 등 온갖 무한을 생각하며 새롭게 기호화·개념화한다. 무한세계보다 더 큰 무한세계, 무한세계를 무한개만큼 겹친 세계, 수학자의 상상력은 팽창해 간다. 그러나 이들 사색의 결과는 반드시 기호화(개념화) 되어야만 수학자의 공통 재산일 수 있다. 무분별과 분별의 세계가 지닌 근본적인 성격이 기호 또는 개념화의 존속 유무에서 나타난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 신경희

  

송글거리는 당신의 웃음이

가을낙엽위에 젖어있습니다.

 

송송 썰어 오이 냉채 만드시어

얼음 띄어 내놓으시던 어머니

 

돋아난 주름진 환한 웃음

아침햇살처럼 따뜻했습니다.

 

아버지의 등 굽은 모습에

옷소매를 적시시며 세월을 익히셨던 어머니

 

난초의 고고함 보다는

강가의 억색풀처럼 삶을 이겨 나갔던 당신

 

땀 방울 흘리시듯 눈물을 흘리시며

천정만 바라보시는 나의 어머니

 

방울방울 가슴에 맺혀지는 이 서러움

지금 당신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울먹이지도 못하고 눈물 감추어야 하는

당신의 딸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어머니...

나의 어머니...

 


 

 

아버님 전상서 / 신경희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해질녘 창가에 서면
겨울나무 가지의 눈송이 처럼 맑은 당신
울먹이는 마음을 달래며
미소짓는 당신을 뒤로하였습니다.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 찾아오면
비맞은 낙엽처럼 눅눅해지는 마음은
내 멀리 있으되 늘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던 당신에게 달려갑니다.
고열로 누워있을 때면 잠못 이루는 당신이 곁에 있어

 

 

나는 행복했습니다.


꿋꿋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잘 키워주신 당신
한 마음, 일심의 마음은

'건강하십시요'.
식탁에 둘러 앉아 옛 이야기 나누며
따뜻한 탁주 한 잔 올리며 찾아 뵈올 때 까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낭송: 고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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