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할과 번뜩임

2016. 5. 14. 21:56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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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할과 번뜩임

- 임제, ‘고함’으로 논리초월 깨침 이끌어-
- 뉴턴, ‘떨어진 사과’본순간 대법칙 발견-

선문답에서 ‘할(喝)’이 자주 등장한다. 만화적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제자의 물음에 대해 답이 궁해지면 스승이 ‘할(喝)’ 한 마디로 얼버무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한 수도승이 임제 화상에게 “스승님은 불법의 큰 이치를 누구에게 이어 받았습니까?”하고 물었다. 임제의 스승은 만벽(萬蘗)이다. 제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임제 자신도 그렇게 답할 수도 있었지만 임제는 “나는 세 번 그것을 묻고 세 번 두드려 맞았다”고 답했다. 이때 그 제자는 그 뜻을 다시 물으려 했다. 그러자 임제는 ‘할(喝)’하고 “허공에 못질하지 말라”고 했다. 처공(處空)은 임제의 진여원성(眞如圓成), 즉 완전한 세계이다. 그 세계를 누구에게 가르침 받았는가를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무한(무한정)의 세계이며 관념화하는 것은 마치 쇠못을 허공에 박는 일과도 같다. 이때 임제가 제자에게 전하고자 한 바는 너도 ‘이 과정을 네 스스로 온몸으로 터득하라’는 것이며 그것을 ‘할(喝)’ 한 마디로 표현했다. 대오(大悟)의 길은 남에게 지시 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스스로 열어 가야 한다. 그러나 제자는 논리로써 이해하려 머리를 움직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임제는 즉시 ‘할(喝)’을 던진다.

수학의 여러 대천재들이 대발명을 할 때의 계기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뉴턴은 농장에서 휴식하고 있을 때 우연히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또 아인슈타인은 햇살이 구름 사이에서 산너머로 가는 것을 보고 상대성 원리의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는 이야기 등 어떤 분야일지라도 학문적인 진리와 법칙을 얻는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것과 유사한 경험을 한다.

필자 자신도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하나의 개념과 그에 관한 정리를 수립한 적이 있었다. 그에 관련되는 거의 모든 자료들을 몇 번이나 검토하고 이들의 공통되는 법칙을 찾으려 몇 개월 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무심코 땅 위에 그려진 타원형의 모양을 보고 있을 때 개미 한 마리가 그 초점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간 애매했던 여러 성질이 마치 두 개의 초점이 겹치는 것처럼 하나로 표시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대과학자는 이러한 체험을 여러번 경험한다. 20세기의 최대의 수학자 포앙카레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오래도록 한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면 어느새 그 문제에 관련되는 일이 무의식의 밑바닥에 가라앉게 된다. 비록 뇌의 표면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은 늘 생각하고 있다. 마치 암탉이 달걀을 품고 있으면 어느새 그 속에서 병아리가 스스로 크는 것처럼 무의식 속에서 문제가 스스로 정리되어 간다. 어느 순간 암탉의 사소한 움직임으로 병아리는 알에서 깨어난다.
이 순간 암탉의 역할을 하는 것은 스승의 ‘할(喝)’이며 뉴턴에 있어서는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와도 같은 것이다.

이런 계기가 대뇌에 섬광과 같은 번뜩임을 가져온다. 이 과정은 도저히 말(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지다. 신비적이라고 할까? 의식되지 않은 또 하나의 내 세계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아무리 쉬운 문제일지라도 스스로 풀어라”고 말한다. 스스로 푼 한 문제가 남이 가르쳐 준 10문제 보다 학습 효과가 훨씬 크다. 해답을 구하는데 고생하지 않으면 힌트, 또는 ‘할(喝)’을 얻을 기회가 없다. 과학자(수학자)로서 성공한 사람은 연구하는 대상(문제)을 스스로의 무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안고 있는 사람이다.

스승은 ‘할(喝)’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가 오래도록 안고 있는 문제가 무의식 속에 정착되어 스스로 하나의 모양으로 형성되어 가고 마지막 과정에서 ‘할(喝)’의 의미를 갖는다. 임제는 3번이나 얻어맞고서야 대오(大悟)를 얻었다.

처음과 두 번째의 ‘할(喝)’은 기(機)를 얻지 못했지만 3번째에는 대오(大悟)를 얻었다. 아무리 맞아도 무의식 속에 선기(禪機)가 충분히 자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金剛經 四句偈(금강경사구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진실)를 보리라.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 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응당 색(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진실)를 보지 못하리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 화엄경 -  

 

탐욕에서 근심이 생기고 탐욕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탐욕에서 벗어나면 무엇이 근심이 되고 무엇이 두려우랴.

 

해는 낮을 비추고 달은 밤을 비추며

무기는 군사를 빛내고 선정은 도인을 빛낸다.

 

부처님께서는 이 천하에 출현하시어

모든 어둠을 비추시느니라.

- 법구경 

 

 

저  언  덕

1)  저희들이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까지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한량없이 지은죄를 

     거룩하신 부처님의 명호를 항상 불러
     지혜로써 저 언덕에 건너가기 원하옵니다


2)  저희들이 무량 복 많이 지어 현세로다

     여러가지 신통력과 방편으로
     다시 돌아와 여중생을 제도하며 극락세계 이루면서 
     영원한 불국토에 이내 몸을 장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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