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4. 11:01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32>진리의 다양성
- 현대 수학의 公理는 진리 아닌‘가설’-
- 임제스님 1천년전‘사고의 전환’선도 -
비(非)유클레이데스 기하의 등장은 서양 사상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버금가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자체로서는 별다른 응용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나 수학의 연구 방법, 더 나가서는 수학을 보는 ‘눈’을 크게 바꾼 것이었다. 그때까지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의 ‘진리성’이 영구 불변이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공리(公理)는 현실 세계의 실체(實體)를 비추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약속(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순이 없으면 어떤 공리를 내세워도 상관이 없다. 공리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성보다도 유통질서(流通秩序)를 유지하는 화폐의 ‘신용’ 쪽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유클레이데스 기하에 덧붙여 여러 기하학들이 제각기 동등한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비단 기하학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대수학, 해석학 등의 분야에서도 여러 공리계가 연이어 나타났다. 이젠 수학이라면 으레 공리계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유클레이데스 기하는 여전히 각별한 권위와 지지를 누릴 수 있었다. 자연 현상의 유일한 설명 원리인 뉴턴 물리학이 여전히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은 더 이상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문자 그대로 뉴턴 역학의 지반이 무너지고 대신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자연 해석의 권위있는 이론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물리학은 이제 자연계의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고전적’인 것이 되었으며, 대신 이 자리를 메운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었다.
상대성 이론을 기하학과 관련시켜서 본다면 유클레이데스 기하에서와는 다른 공간을 모델로 성립한 것이다. 뉴턴은 현상 그 자체에 시간, 공간이 밀착되어 있다고 보았으나 아인슈타인은 거리나 시간 등이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입장을 취했다. 있는 자리마다 독자의 세계가 있다. 곧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이다. 따라서 거리의 정의를 유클레이데스 공간과는 다른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요컨대 우주 공간을 ‘유클레이데스적’인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공간(=우주관)은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외 관련해서 양자역학(量子力學)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이 탄생하였다. 극미의 세계에 일어나는 확률론적인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절대 진리를 전제하는 이론은 모두가 부정될 것이다. 이처럼 기하학의 영역에 국한시켜 생각해 봐도,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은 물리학이나 기타 자연과학의 유일한 길잡이가 아니라 여러 수학(기하학) 체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유럽 세계는 여태 ‘진리는 하나’라는 신앙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들은 이 진리를 줄곧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제 무엇이 옳은지는 공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공리를 자명(自明·스스로 명백함)한 명제로 간주한다면 그 결과는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한낱 선입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진 것이다. 진리가 아니라 당분간의 유통이 보장된 가설이 아니었던가! 20세기 수학의 의상(衣裳)은 행동이 부자유한 진리라는 구시대의 의상을 떨치고 행동이 가벼운 ‘약속’이라는 평상복으로 바꿔 입은 셈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사고의 전환’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 등은 모두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을 선도한 것이 수학이었고 또한 그보다 천여년전 임제는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을 통해 진리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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