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자유|********@불교와수학@

2016. 5. 21. 17:18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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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자유

불성·수학의 본질은 ‘무한한 자유’
기존틀 버려야 새로운 세계 열려

칸토르는 1845년 덴마크의 부유한 유태계 상인의 아들로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후에 할레(Halle)대학 교수에 취임, 만년에는 그곳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무한(無限)에 대한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주위의 격심한 핍박을 받았던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못한다 … 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드디어 무한론의 결론을 었었다. 그것은 오랜 나의 연구생활에서 가치가 있다고 믿어 온 전통적인 수학을 거부하는 일이었으나 그 결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흔히 ‘어느 철학자도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풍조를 반영하지 않는 자는 없다’라는 말을 듣는다. 고고함을 내세우는 철학도 결국은 절대의 진리일 수 없고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천재의 창조력은 단순히 그 시대의 풍조를 반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상의 기반을 제시하고 세계는 이들 천채가 만든 틀 속에서 인류의 문화를 다듬는다.

1883년 칸토르는 무한을 주제로 한 <집합론>을 발표하였다. 그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고 외쳤다. 칸토르 이전에는 신처럼 여겨지던 대사상가들도 있었다. 특히 칸트는 ‘수학적인 진리는 선험적이다’라고 주장했고 모든 수학자는 이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종래의 고정화된 수학관은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라는 유클리트를 믿고 있었다. 칸토르는 고전적인 수학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였다. 그것은 곧 ‘수학의 본성은 자유’라는 외침이다.

칸토르가 발견한 것은 무한의 수학이다. 희랍 이래의 전통은 유한만을 다뤄왔고 무한을 다루는 일은 금기 사항이다. 아무리 선배, 스승의 업적이 위대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수학자는 그것에서 새로운 경지로 스스로 발전해 나아갈 자유가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당시 수학계의 대가들은 일제히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특히 크리네거는 “신은 정수만을 만들었다. 그 이외의 수는 인간의 장난의 소산이다”라고 말하며 무한론은 한낱 장난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정수는 유한 수학이기에 무한수는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임제록>에는 임제와 좌주(座主)(교종계 사원의 주지) 간의 대화가 실려있다.

좌주=성각(聲覺·부처의 말씀으로 수행하는 것), 연각(緣覺·외부의 자극을 통해 대오를 얻는 것), 보살의 삼승(三乘)과 모든 경전에 부처의 가르침이 있다.

임제=삼승이나 경전에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좌주=그렇다면 석가모니께서 사람을 속인 것인가?

임제는 이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고 오히려 “부처는 어디에 계신가?”라고 되묻는다. 이때 좌주의 말문이 막힌다. 좌주의 입장은 경전이나 기존의 법에서만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이다.

임제는 기존의 틀은 어떤 것이라도, 심지어 석가모니가 금구직설(金口直說)한 것도 전부가 아님을 ‘불성의 대지는 괭이나 호미가 갈지 않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설명한다.

이 대화 내용은 칸토르가 말하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성에 있다’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부처의 말씀일지라도 저마다의 대오의 길을 스스로 열어 가야 하는데 그것은 곧 어떤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 곧 자유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성의 본질은 자유’라는 뜻이다. 칸토르와 임제는 인간의 가능성(불성)이 무한임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칸토르는 당시의 수학 대가들의 공격에 시달려 정신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수학은 임제의 주장과도 같이 그 자유성을 존중함으로써 계속 발전해 간다. 

- 봄

섬진강 오백리길 10경


 


오 백리 섬진강길 그 어느 풍경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제 나름으로 열 곳을 골라 한 자리에 모아보려 합니다.

이름하여 <섬진강 10경>입니다.

섬진강이 흐르는 각 지자체별 10경은 있지만 섬진강 전체를 아우르는

10경은 아직 없는 것 같군요.

완성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중 첫번 째가 하동 악양 평사리 들판 부부송의 사계입니다.

평사리에 대한 소개글은 칼럼방에 올려 두었습니다.

 

*년말에는 탁상용 달력으로 제작도 계획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시기를!!

 

 


 

- 여름

 

평사리 부부송 / 김인호

 

 

늘,

지나치지 못하고

뒤돌아서게 하는 풍경

 

막 자리를 잡은 파란 모들과

어우러진 몇 마리 백로

평사리 들판 참 평안하시다

 

들판가운데 두 그루 소나무

평사리를 평사리답게 만들어 주는

늘 푸른 배경이다

 

그대의 평안을 위해

나도 저 소나무 같은

늘 푸른 배경이 되고 싶다.

 

 

- 가을

 

- 겨울

 


02. Love Is Blue - Paul Mau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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