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1. 17:3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문] 어떻게 하면 부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답]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으면 그게 부처를 보는 거요.
그러면 질문자가 왜 부처를 보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 졌소?
보는 게 있고,
듣는 게 있고,
아는 게 있는 사람은 부처를 볼 수
없소.
어떤 말도 그
자체가 치우침이기 때문에 언어화되고 개념화된 말로써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는 없소.
법성(法性)이라 함은 일체 만법의 성품이라는 말인데, 그게 곧 부처요,
진리라는 말과 같은 소리요.
이 법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사고,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적으로 이것이다, 혹은 이것 아니다 하고 포착될 수가 없소.
그러나 인간이 사물을 파악하는 방식은 나면(生) 나는 거고 사라지면(滅)
사라지는 거고, 있으면(有) 있는 거고 없으면(無) 없는 거고, 이렇게 서로
배타적으로밖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그 법성을 등지고 마는 거요.
있되 있음이 아니니 있음에 머물 수가 없고, 없되 없음이 아니니 없음에
머물 수가 없다는, 언뜻 듣기엔 아리송한 말이 그래서 나오는 거요.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어법으로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참으로 실상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는 거요.
그러함에도 마음공부를 하면서까지 뭔가 확실하게 단정을 지으려
한다든가 확실하게 걷어잡을 수 있는 묘한 도리가 없을까 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다면 그런 사람은
정말 깨치기 어렵소.
있되 있음이
아니고, 없되 없음이 아니니, 있음에도 없음에도 머물 수가
없다는 말씀을 잘 받들어서 머릿속에 또 하나의 새로운 알음알이를
꾸역꾸역 처넣었다면, 그 사람은 오늘 가장 위중한 병을 얻은 거요.
만약 있음에도 머물지 않고 없음에도 머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바로 참으로 한량없는 마음 아니겠소?
그러니 법문도
들을 줄 모른다는 핀잔을 면치 못하는 거요.
어서 부처를
보고야 말겠다는 일체의 바람을 다 놓고,
다 놓은 그 자리에도 머물지 않아서, 이 세상에는 도무지 보아야 할 법도,
들어야 할 법도, 알아야 할 법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사무쳐,
그 마음이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마치 허공에 바람 가듯
그렇게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를 보는 것이요,
나아가 제가 바로 부처와 한 몸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오.
-현정선원 법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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