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없다|마음공부 생활수행

2016. 7. 16. 20:4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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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다



'나'는 없습니다(無我).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가 없는 이유는
'나' 홀로 만들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며,
'나' 스스로 배워 익힌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몸도 내가 아니며,
마음, 생각 또한 내가 아닙니다.

이 몸이란 부모님을 의지해 태어난 것이며,
마음, 생각들이란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살아오며 부딪쳐온 이 모든 환경들로부터
배워 익혀 온 것들에 불과합니다.

어느 하나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결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몸이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또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육신의 지수화풍 또한
이 우주의 지수화풍을
잠시 인연에 맞게 빌어다 쓰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 쌀이 있습니다.
분명 쌀과 나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물(수)과 열(화)의 인연을 지어주고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밥이 됩니다.
밥은 밥이지만 우리가 밥을 먹고나면
밥은 더이상 밥이 아닌 '나'가 되는 것입니다.
살이되고 뼈가 되어 내 몸이 되는 것입니다.

물도 물이지만 마시고 나면 '나'가 되고,
과일도 과일이지만 먹고나면 '나' '내몸'이 되며,
공기도 공기지만 들이마시고 나면 '나'의 호흡이 됩니다.

본래부터 나였던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잠시 인연따라 나에게로 오면
그것을 보고 '나'라고 이름지어 집착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시간이 흐른 뒤까지
지금 이 모습, 이 세포 그대로의 나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나'는 변화합니다.
어떤 살저름을 보고 나라고 이름지을 수 없습니다.

손가락이 잘렸다면 그 잘린 손가락을 보고
나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몸에서는 한치라도 '나'를 찾아볼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 생각, 가치관들이 '나'일까요?
내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생각이며, 가치관이며 선악관들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내'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말이거나,
배운 말이거나,
살아오며 환경에 의해 익혀온 이야기일 뿐입니다.

가정환경, 학교, 사회, 역사, 책, 사람들...
이 모든 주변 일체의 환경에 의해
내 마음, 내 생각이 만들어 진 것일 뿐입니다.

만들어지지 않은 순수한 생각을 꺼내어 보십시오.
만들어지지 않은 순수한 말을 꺼내어 보고,
만들어지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일으켜 보십시오.

입을 여는 순간 우리는 익혀온 말을 하고
익혀온 생각, 생각의 조각을 짜맞추는데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익혀온 관습, 생각, 가치관, 선악관, 고정관념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온통 어지럽혀 놓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자라고 익혀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나름대로의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주워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선악이며, 성격이나 몸매의 좋고 나쁨,
유식과 무식에서, 능력의 많고 적음, 근기의 우열...
이 모든 것들은 본래 있지도 않습니다.
본래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온 천지 가득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린 '나'라고 하는 통 속에
주워담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나름대로 주워담고는
좋으니 나쁘니, 잘났느니 못났느니
행복하니 괴로우니, 크니 작으니, 똑똑하니 어리석으니...
숯한 분별을 일으킵니다.
그 분별 속에 우리네 중생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 놈만 놓으면, 나만 없어지면
그만 온갖 분별이 딱 끊어져 온통 환히 밝아지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게 제 스스로 '만큼의 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밖을 탓하고 삽니다.
그러니 본래 '내 생각' '내 마음' 또한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성격이 나인가요?
성격 또한 환경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해갈 것입니다.
지금의 성격이 '나'인 것 또한 아닙니다.

과연 무엇을 보고 '나'라고 이름 붙이시겠습니까?
어디에서 '나'를 찾으실건가요?

'나'는 없습니다.
'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 수레가 있습니다.
바퀴가 수레인가요? 바퀴살이 수레인가요?
손잡이가 수레입니까?
수레는 어디에도 없지만
인연따라 잠시 수레라는 이름이 붙은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 수레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런 분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연따라 잠시 만들어진 것에
숯한 분별을 지어 형상화 하고,
상(相)을 지어 '나'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때부터 '나'는 거짓 생명력을 지닙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봅니다.
제 스스로 '거짓나'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만들어 놓은 거짓나의 인연놀음에
울고 웃고를 숯하게 반복하며 어리석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어디에 '나'를 붙이시겠습니까?
무엇을 '나'라고 하시겠습니까?
'나'가 본래 없을진데
무엇을 괴로워하며 무엇을 행복해 하시겠습니까?

'나' 없는 자리에
그 어떤 깨달음을 붙일 것입니까?
'나 없음'이면 그대로 깨달음인것을...


내인생의 소중한 시간들
   

어느 때인가
내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작은 돌 하나까지도
내게는 다 삶의 의미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내 인생의 가장 큰 의미는
내 이웃들의 슬픈이, 기뿐이,외로운이,
미운이,착한이, 가난한이......
이 모두는 내 삶의 이유이다.

내 소중한 이웃이 없다면
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하고 미워하고, 함께 울고 웃고,
괴로워할 수 있기에
내 인생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난한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
아! 그러나 이 소중한 삶의 시간들은
너무도 짧다.한정돼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삶의 순간 순간이
시간속에 묻혀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졸인다.

더 사랑해야지.
더 크게 울고 웃고 괴로워해야지.
이 귀한 삶의 시간들이
그냥 소홀히 지나쳐가지 않도록.


- 지혜의 숲에서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엔

왠지 모르게 그리움은

더욱더 물밀듯 서서히 밀려와

고요히 잠든 내 영혼을 불러 일으켜

세차게 흔들어 놓습니다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

한줄기 비가되어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쏟아지는 그리움으로 비에

내마음 조차 흠씬젖고 싶습니다

 

창밖에 비가 내려 땅이 젖지만

내안의 마음도  생각으로

젖습니다

 

 

 

장마가 다시 시작 되었군요..

한동안은 지금이 장마철 맞나 싶게

불볕더위만 이어지더니..

지역에 다라 많은 비가 온다 합니다

대비들 하셔서 피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습한 기온에  건강챙기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과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