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2016. 7. 30. 08: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우연과 필연

육왕(育王)의 면(勉) 시자(侍者)는 내 친척 조카이다.

 어려서부터 뜻이 있어 참선을 공부했으나 불행히도 단명하였다.


(중략) 임종할 때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

났지만 본래 나지 않았고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네.
비마는 집게로 꼬집었고
구지는 손가락을 세웠네.

내가 일찍이 그가 깨닫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예전에 옥궤(玉几)에서 전단 숲 경안(經案) 옆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규(珪) 장주(藏主)가 어떤 스님과 강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님이 ‘어떤 것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라고 묻자, 규 장주는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머리 위에 올렸다가 다시 합장하면서 ‘소로소로’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환희로운 곳을 얻게 되어 급히 요사채에 이르러


달(達) 수좌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웃으며 ‘네가 돌아왔구나.’ 하였는데


이로부터 차츰 가슴 속이 상쾌한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규 장주를 만나 그 이야기를 물었더니


그는 얼굴만 빨개질 뿐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천천히 다시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당시 그런 모양을 지은 것은 그 스님을 놀려주려 하였을 뿐,


실제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중략)
이제 규 장주가 그 승려를 놀려주려 했는데 면 시자가 환희로운 곳을 얻은 것을


살펴보니, 부처님 회상에서 어린 사미가 가죽 공으로 장난삼아 늙은 비구의


머리를 때려 그로 하여금 사과(四果)를 증득하게 한 일과 나란히 할 만 하다.

- 산암잡록


 


석가모니는 출가 후 6년 간 선정(禪定)과 고행(苦行)을 하였으나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날 새벽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육조 혜능(慧能)은 더벅머리 나무꾼 시절에 우연히 누군가가 금강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허(鏡虛) 스님은


‘나귀의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쳤다’라는 화두를 들고 있었는데,


사미가 ‘콧구멍 없는 소’ 이야기를 꺼내자 깨달았습니다.

이 외에도 복사꽃을 보고 깨닫고,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다 깨닫고, 시장 바닥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다 깨닫고,


먼 데서 닭 우는 소리를 듣다 깨닫고, 물레방아가 도는 것을 보다가 깨닫고,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거나 발로 짓밟히다 깨닫고, 선지식의 말을 듣다 깨닫고,


홀로 경전을 보다 깨닫는 등 우연히 깨달음을 얻은 사례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우연의 결과일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필연적인 조건 아닌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깨달음은 앞의 다양한 사례에서 본 것처럼 어떤 인연을 계기로 해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매순간 무수한 인연을 마주하고 살아가므로,


우리는 매순간 깨달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깨달음이라는 사건은 비록 어떤 인연을 계기로 일어나지만


깨달음 자체는 인연의 소산이 아니란 것입니다.

깨달음의 인연이 도래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 아닌 조건은


이 일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인 관심, 즉 발심(發心)입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현상 세계에 대한 고통과 불만족에서 비롯된


구도심,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기도 모르게 인생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세상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일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간절한 구도의 마음, 자신도 알 수 없는 의문 속에 빠져들게 되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잡념이 사라지게 됩니다.


저절로 순일무잡(純一無雜)한 마음의 상태가 되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마음이


고요하게 됩니다. 이 때 마치 너무나 고요해서 유리 같은 수면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 파문이 이는 순간 물의 존재를 확인하듯, 어떤 인연을 통해 분명히 있었지만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살아있는 마음의 실체를 깨닫는 일이 벌어집니다.

깨닫고 보면 모든 인연이 본래 자기의 한 마음을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그 동안 제각각 따로 분리되어 있는 줄 알았던 현상 세계가


온통 하나의 마음, 자기 자신이란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홀연히 꿈에서 깬 것처럼 이전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주었던 현실감이 사라집니다.


애초부터 매순간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결국 다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이 마음이 고요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고요합니다.

깨닫고 보니 우연인 줄 알았던 것이 필연이었고, 필연인 줄 알았던 것이 우연이었습니다.


이 일을 깨닫는 것이 눈 먼 거북이 구멍 뚫린 나무판자 가운데 고개를 내미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면서도, 이보다 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있을 수 없을 만큼 쉬운 일이란


사실에 어이가 없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깨달으면 지극히 쉬운 일입니다.


간절한 구도의 마음,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큰 의문에 사로잡히면


저절로 그러한 일이 벌어집니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보면


어떤 늙은 비구가 젊은 비구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청했습니다.


젊은 비구들은 늙은 비구를 놀려 줄 셈으로 공양을 요구하여 얻어먹고는 가죽 공으로


늙은 비구의 머리를 네 차례 때리면서


“이것이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청했던 늙은 비구는 그 인연으로 정말 아라한과를 증득했습니다.


지극하고 순수한 한 마음이야말로 깨달음의 필연적인 조건입니다.


 


- 몽지님

가시리- SG워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