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속지 말라

2016. 8. 7. 11:4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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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속지 말라

낭중(郎中) 전익(錢弋)이 진정(真淨) 스님을 방문하여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동사(東司)’라고 불렀는데, 진정 스님은


행자에게 동사가 있는 서쪽으로 인도하게 하였는데, 전익이 갑자기 말했다.
“동사(東司)라고 해놓고 어째서 서쪽으로 갑니까?”
진정 스님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동쪽에서 찾지.”
대혜(大慧) 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아! 조주(趙州) 스님이 투자(投子) 스님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났을 때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투자 스님이


‘밤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날이 밝거든 찾아오게.’라고 한 것도


이 말보다 좋지는 못하다.”

- 종문무고





이 공부를 하는 데 있어 명심할 것은 말에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란 것은 태어난 이후에 배워 익힌 것으로 말이 나타내는 모양, 소리, 뜻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말은 흔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비유처럼 말이 아닌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 드러내는 표상보다 말 자체, 말이 일어나는 출처(出處)와


말이 사라지는 낙처(落褄)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랑(淨廊), 동사(東司), 서각(西閣), 북수간(北水間), 칙간(厠間), 해우소(解憂所),


통숫간, 변소, 화장실…. 이 모든 말들이 가리키는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말의 모양, 소리에 속지 않는다면 모두 동일한 의미,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이란 것 역시 ‘볼 일을 보는 곳’, ‘대소변을 보는 장소’ 등등 또 다른 말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낱말마다 고정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무심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끝없는 말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말의 모양, 소리, 뜻은 전혀 실다운 것이 없습니다.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어떤 모양의 말이든, 어떤 소리의 말이든,


어떤 뜻의 말이든, 그 표상에 속지 말고 그 말이 일어나는 원점(原點), 말의 근원,


또는 그 말이 사라지는 귀결점(歸結點)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말이 없지만 끝없는 말이 거기에서 나타났다 거기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의 원점, 말의 귀결점, 거기, 그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예화 속의 벼슬아치 전익은 진정 스님을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진정 스님은 행자를 시켜


절의 화장실인 동사(東司 ; 동쪽 건물이란 의미)가 있는 서쪽으로 안내합니다.


무심코 따라가던 전익은 문득 호기심이 나서 묻습니다.


‘동쪽 건물이라면서 왜 서쪽으로 갑니까?’


이것을 ‘부처를 물었는데 어째서 뜰 앞의 잣나무, 마른 똥 막대기,


삼베 세 근이라고 합니까?’라는 의문으로 대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말에 길들여져서 말의 틀, 말의 논리, 문법, 화용론(話用論)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어떤 한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은


 언어의 감옥 안에, 언어는 곧 생각이므로 생각의 감옥 안에 갇힌 죄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벗어날 수 없는 중독 상태에 있기 때문에 십중팔구는 말에 속아 넘어가고,


 말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생활은 물론 선을 공부하는 마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진정 스님 같은 이는 말을 가지고 말의 틀, 굴레를 부숴줍니다.


‘그래, 많은 사람들이 말만 따라가서 동쪽에서 찾곤 한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어리석음을 전환시켜 깨달음의 인연을 일으키는 말을 일전어


(一轉語 ; 심기일전의 말), 또는 전신구(轉身句 ; 몸을 바꾸는 말)라고 합니다.


짧고 간단한 말 한 마디로 자기도 모르게 빠져 있던 미망(迷妄)을 스스로 돌아보고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선지식의 기봉(機鋒)입니다.

뒤에 부록처럼 대혜 스님이 진정 스님의 그 한 마디에 대해 찬탄한 내용은


화두공안의 본질에 대한 일종의 힌트입니다.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무’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뜰 앞의 잣나무’는 ‘뜰 앞의 잣나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른 똥 막대기’란 말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론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밤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날이 밝거든 찾아오게’란 말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십시오. 또 속았습니다.




- 몽지님



 

목숨의 노래 / 문정희 

 

당신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습니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두고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습니다

맨발로 당신과 함께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타오르다 죽고 싶었습니다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보라.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
죽음이라는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소유한다는 것은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이 어느 한 사람만의 소유가 아니었을 때
그것은 살아 숨쉬며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도 대화한다.

모든 자연을 보라.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하찮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자.
그대를 스치고 지나는 것들을 반기고
그대를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라.

그리고 비워두라.
언제 다시 그대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