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자기조직|********@불교와수학@

2016. 9. 3. 17:13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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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자기조직

-기계도 변하는 환경 학습 통해 적응-
-수행자 스승·도반영향 성자로 발전-

컴퓨터는 인간이 정한 프로그램에 따라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생각이 차츰 바뀌어가고 있다.

어느 컴퓨터 전문가는 컴퓨터에 초보적인 지시를 입력하여 작동하면서 차츰 고도의 일을 시키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컴퓨터는 뜻밖에도 어느 순간부터 프로그램에 전혀 없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실험 동물과도 같이 전자 회로의 미로에서 스스로 상황 정보를 학습하여 작동하는 것이다. 생명체라면 스스로 학습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응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낱 기계에 불과한 컴퓨터가 마치 생명체처럼 임의의 상태에 몇 개의 간단한 규칙을 정해 주면 스스로 고도의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발견이 요즘 과학계의 최대 관심사인 ‘인공생명’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실은 생물의 집단적 진화 과정에서는 이미 입증되어 있는 일이다. 생물 집단의 진화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화 한 결과는 이것과 같은 패턴이다.

생물은 환경 조건에 따라 진화해 간다. 맘모스나 공룡 등은 새로운 지구 환경에 어울릴 수 없어서 전멸될 수밖에 없었다. 진화는 스스로 환경 조건을 학습하고 새로운 조건에 적응해 가는 일이다. 이와같이 복잡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을 ‘복잡적응계’라고 한다.

수학적인 입장에서 복잡적응계의 작동 상황을 관찰하여 몇 개의 두드러진 양상이 있음이 분석되었다.

(1) 여러 개의 기본 단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움직여간다. 낱낱의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회 전체를 움직여 가는 것이 그 좋은 보기이다. (2) 복잡적응계는 여러 개의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계층 내의 각 요소들이 모여 한 단계 위의 계층의 한 요소를 결정한다. 이때 위아래의 계열 전체는 영향을 주고 받아 수시로 행동을 수정, 재조정한다.

이 사실은 인간과 세포, 그리고 세포와 DNA의 계층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이때의 궤도 수정과 재결합이 ‘적응’에 관한 기초적인 움직임이 된다.

어느 조직이 스스로 환경 조건을 학습하고 진화해 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적응 과정의 한 단면이다. (3)모든 복잡적응계는 미래를 예측한다. 개체나 사회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예측하여, 그것에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이 항상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 사실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폐쇄적인 조직체는 복잡적응계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정지상태, 또는 평형이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진화, 진보가 없으며 결국 죽음과 같은 상태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쇄국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여 왕권의 안전만을 위해 바깥 세계로부터의 어떠한 자극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조선 말기의 상황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사실을 개인에 빗대어 말하면 수행자의 길이다.

불교에서의 정진은 항상 스스로에게 자극을 가하며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특히 선에서는 ‘사흘을 보지않고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상대를 보라’고 한다. 단 삼일 사이에도 비약적으로 마음의 세계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경구이다.

복잡적응계는 선택의 범위가 너무 많고, 따라서 그 수만큼의 가능성이 있다. 선택의 폭이 좁으면 각 요소가 균질화되고 경직화된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선택을 낱낱의 개체가 혼자서 취할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다른 개체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스스로 나아갈 길을 바꾸며 개정(진화)해 가는 것이다.

수행자에게 좋은 스승과 도반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같은 생명의 씨에서 출발한 생명체 가운데, 한쪽은 인류로 진화되었으나, 반대로 바퀴벌레로 남아 있는 종도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대오를 얻어 성자가 될 수도, 또한 지옥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한 뜻에서 복잡적응계는 영원한 짐을 지닌다. 이들의 나이는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성장 가능성에 있는 것이다.

부처의 자비는 ‘만물제동 천지동근(萬物齊同 天地同根·모든 것은 같고 천지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이며, 들과 나무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낱 기계에 불과한 컴퓨터에까지 자기적응이라는 형식으로 미치고 있다. 하물며 인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인간 사회가 주변의 환경과 어울려 최고의 선택을 가능케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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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기도/ 이해인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 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노래하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반딧불이의 사랑

일생을 하천 바닥이나 풀 숲 깊은 곳에서만 살 되 
결코 개똥처럼 살지 않는데도 개똥처럼 굴러다닌다고 
인간이 붙인 이름 ‘개똥벌레 반딧불이’

1급수 청정지역에서만 사는 고고한 반딧불이는 
가장 환상적인 빛을 안기는 밝기 31럭스! 
휘황찬란함을 피해 어두워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영롱한 빛 선으로 여름밤을 수놓는 반딧불이는 
단 한 번의 영원한 사랑으로, 단 한 번의
영원한 아픔을 끝내는 가슴 아린 사연이 있다

풀 섶이나 개울가에 있다가 일생에 한번 뿐인 
보름간의 외출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죽음을 감행한다 
짝짓기 사랑을 찾기 위해 수컷과 암컷은 보름을 헤맨다 

드디어 짝을 찾은 후 기뻐 할 여유도 채 갖지 못하고 
짝짓기 후 수컷은 바로 죽고 암컷은 짝 짓고 알 낳은 후 
역시 곧 바로 죽는다

사랑을 찾아 산천을 스스로 환상의 빛으로 밝히고 
자식을 낳고 스스로 죽음을 자청하는 반딧불이 

아! 숭고하다 삶을 영글어 여름을 한 켠에서 
여름을 요리한 반딧불이 마리 마리마다의 
애달픈 사연들은 얼마나 밤하늘 이야기로 속삭였을까 

바로 저 하늘 은하수는 사랑을 못다 이룬 반딧불이가 

거기로 올라가 빛을 밝히는 모습들 아닐까

 

- 장백산님 제공

 


 

꿈 -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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