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즉다 다즉일|********@불교와수학@

2016. 8. 13. 22:01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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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즉다 다즉일

-세포 하나가 인간의 생명 좌우하듯-
-개인의 연기고리 인류미래에 영향-

지난 호에는 생로병사의 전과정에서 저마다의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 여지가 있음을 말했다.

생물학에서는 ‘개체발생(個體發生)은 계통발생(系統發生)을 되풀이 한다’는 명제가 있다. 처음의 생명의 씨가 원시의 바다에 발생한 이래 작은 세포에서 올챙이와 같은 물고기, 그리고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하였으며, 그것은 마치 태아가 어머니 자궁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되어 가는 과정과도 같다. 전인류의 진화의 역사를 태아는 10개월이라는 밀도 짙은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세포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생명체이며 이들은 이 순간에도 생로병사를 되풀이하면서 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한다. 세포와 인간, 인간과 인류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으며, 이들 사이의 차원도 다르다. 그러나 자신이 의식하건 말건 낱낱이의 인간은 인류의 진화 발전에 나름대로의 책임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천문학적인 수의 세포가 우리 몸에 있다. 갓난아이의 세포수는 몸무게 1kg당 약 1조(兆)개, 3kg의 아이라면 3조개의 세포, 체중 50kg의 사람이면 50조의 세포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낱낱이의 세포는 모두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사람 세포의 핵에 포함되는 유전자의 기본 정보양은 약 30억의 화학 문자로 쓰여져 있다. 이들은 인간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생로병사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세포가 병들게 될 때 인간은 중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행동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면, 때로는 절망의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낱낱이의 인간은 전인류의 생존 양식에 엄청난 책임을 지니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세포 하나가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고, 한 개인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은 ‘一卽多, 多卽一’, 즉 ‘부분이 전체와 같고, 전체가 부분과 같다’는 불교 철학의 국면에서도 유효하다.

불교 철학의 무게는 과학이 발달할수록 현실감 있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마다 작은 생명체가 고유의 사명과 의미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똑같이 생긴 인간이 둘도 없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유전공학의 발달로 고등 동물의 클론화가 성공해서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켰다. 이 기술은 인간의 신체 어느 부분의 세포로부터도 같은 유전자를 뽑아 낼 수 있으며, 따라서 같은 유전자로 된 복제 인간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은 그 실현이 종교적, 윤리적 문제와 관련해서 유보 상태에 있으나 이론적으로는 복제 인간의 탄생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에 관련된 중대 관심사는 ‘같은 세포로 복제된 수많은 인간은 모두 완전히 같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복제 인간일지라도 절대 같은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인도 밀림에서 발견된 두 명의 늑대 소녀가 있었다. 8살 3살 정도로 짐작되는 마아니와 카마로 이름지어진 이들은 기구한 운명으로 유아 때부터 늑대의 굴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생김새는 분명히 인간인데도 이들의 행동은 완전히 늑대와 같아서 말도 못하고, 일어서서 걷지 않고 늑대처럼 기어다니며, 손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음식을 핥아 먹었다. 이 두 소녀는 끝내 인간 사회로 복귀할 수가 없었다. 늑대 사회에서 살면 인간도 늑대처럼 된다는 실례이다.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환경적 요소를 불교에서는 연(緣)이라고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요소는 ‘나’의 됨됨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기의 고리가 인간을 결정한다. 최근의 카오스 이론에서는 단 3개 정도의 요인으로 모델화한 일기예보 조차도 그 변화과정을 정확히 추적할 수 없음을 밝혀내고 있다.

하나의 현상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하찮은 것으로만 보이는 것도 전체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고, 새로이 바꾸어진 환경이 또 한 번 그 인간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물은 흘러감에 다시 못 온다 해도  / 조병화

 

헛되고 헛된 것이 생이라 하지만
실로 헛되고 헛된 것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생각일 뿐
언젠가 너와 내가
강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물은 흘러감에
다신 못 온다 해도
강은 항상
그 자리흐르고 있는 것

이 세상 만물 만사가
헛되고 헛된 것이라 하지만
생은 다만 자릴 바꿀 뿐
강물처럼 그저 한자리 있는 것이다

너도 언젠가는 떠나고
나도 떠날 사람이지만

언젠가 너와 내가 같이 한 자리
강마을 강가 이야기하던 자리
실로 헛되고 헛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그 사실이다

해는 떴다 지며
떴던 곳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감에
사람은 혼자서 살다가 가면 그뿐
그 자리엔 없다 해도

실로 헛되고 헛된 것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생각일 뿐
강물은 흐름에 마르지 않고
너와 내가 떠남에 실로 있었던것이다
언젠가 너와 내가
강 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언젠가 너와 내가 강 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갠지스 강의 저 물결을 보라,


저기에 소용돌이가 일고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본래 소용돌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데도 없다"


<잡아함경>


 

삼라만상은 본래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각자의 느낌을 사실인냥


이름을 붙이고


모양을 만들고


갖가지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름이 그대로 사실인양


믿고  따르므로


집착에 의한 마음의 苦 의


그물을 뒤집어 쓰게 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