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플러스 사고|********@불교와수학@

2016. 10. 2. 19:34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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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플러스 사고

-‘일체 유심조’지혜 긍정적 사고 도와-

세포는 on, OFF 두 가지 선택을 하는 (0, 1)의 2진법의 구조이며, 인생을 거대한 건반을 갖는 피아노에 비유할 수 있음을 말했다. 이 인생 피아노가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살다 가고, 또 앞으로 등장하는 전인류의 수보다 더 많다. 또한 앞으로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
공자는 “사람이 이성을 대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을 갖고 공부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발이 무거워지는데 애인을 만날 때는 날아가고 싶은 심정으로 달려간다. 공자는 그리운 애인을 만나는 마음으로 학문을 대하면, 안되는 공부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흥망사에 관통하는 진리는 어려서부터 성을 자극해 온 민족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없는데 반해, 학문을 숭상하고 정신생활을 중시하는 민족은 존속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일부 열대 지방에서처럼 어려서부터 온몸을 흔들며 성의 자극을 일상화하는 곳에서는 문명이 발전할 수 없는 미개의 상태로 있다. 한국이 어려운 역사를 지녔음에도 문명국으로써 존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문을 숭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성은 본능이기에 누구나 쉽게 자극을 받는다. 그것을 억제하여 남은 에너지를 학문이나 정신 생활에 쏟을 때 성숙한 인격이 형성되며 민족적으로는 문명을 꽃 피우게 된다.
필자는 인생이 거대한 피아노임을 거듭 말한다. 그 가운데 성에 관한 부분만을 계속 두드린다면 정신의 건반은 계속 잠자고, 결국엔 퇴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on과 OFF의 선택이 다양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이며, 쉬운 말로는 ‘플러스적 발상’을 하는 것이다. 플러스적 사고는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도 ‘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불교적인 지혜가 요청된다. 어디서나 어느 순간에도 잠자고 있는 유전자를 on으로 돌릴 기회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은 연기로 이루어지며, 그것이 또 하나의 연기의 씨가 되어 다음 순간의 일을 결정한다. 가령 지금 병에 걸려서 병실에 누워 있는 상태를 가정해 보자. 돈도 들고, 활동도 못하니 틀림없이 불행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병상에 있음으로써 조용히 신변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인간관계와 미래의 설계를 검토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학의 시대에 심각한 폐단은 모든 것을 합리의 틀에서 생각하려는 경향이다. 과학은 실증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일단 이 사고에 얽매이게 되면 합리의 틀을 초월하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의 얽힘을 보는 눈이 없어지는 것이다. 물질적 현상은 표면상 합리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물질적 관계를 일으키는 요소에 마음의 세계가 있다. 플러스적 사고로 유전자를 자극하고, 그것을 적극적인 국면으로 돌리는 것이다. 복소수의 입장에서 보면 실수의 세계는 수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 불교의 마음의 철학은 플러스적 사고의 전환을 의미한다.
실수의 세계를 현실의 물질적인 세계이며, 마음의 세계는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허수의 세계이다. 같은 실수일지라도 그 뒤에 붙는 허수의 위치에 따라 전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유전자가 신비스러운 움직임을 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마음(허수)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유전자를 담고 있는 세포는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데, 유전자의 세계는 그보다 한 단계 차원이 작은 극미의 세계에 있다. 그 방대한 유전자의 수 가운데 지금 알려져 있는 것은 겨우 10% 정도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마음의 세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눈부신 과학의 성과에 매여 그것만을 주목할 때, 그 범위를 좁게 보고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 눈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수의 세계를 실수만으로 보고 있을 때는 차원높은 복합적인 세계를 외면했었다. 마음 세계, 특히 플러스적 사고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일은 오히려 불합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금강산 풍경

내 나이 뒤돌아 보며ᆢ
문득 가던 길을 멈춰서서 뒤돌아 봅니다.

꽃이 피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아지랑이 피고 새가 울고 희망에 들떠서

꿈에 부풀던 세월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세월이 영원한 줄 알았지요,
하지만 행복하던 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알몸으로 서서 살아가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세월이 왔습니다.

태풍도 불고 폭우도 와서
힘들었던 세월이 더 길었습니다.

하지만 간혹은 나무 그늘 아래서 매미 소리에
화답하는 안온함도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무지개 뜨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제 가을!
가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라지요?

어떤 열매가 열릴까요?
어떤 씨앗을 뿌렸나 더듬어 봅니다.

사랑을 뿌렸을까?
희망을 뿌렸을까?

행복을 뿌렸을까?
보람을 뿌렸을까?

혹여 슬픔을 뿌린 건 아닌 지,
절망을 뿌린 건 아닌 지,
미움을 뿌린 건 아닌 지,

이제 좋은 결실 만을 기대해 보면서
세장남은 달력을 보며 세월의 빠름을 생각하네요,

얼마 남지않은 한해 후회없는 마무리를 염두에 두시고
삼천리 금수강산의 천혜의 가을비경을 미리 감상 하시면서

9월의 날들을 멋지게 출발하여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when a child is born (나지리노 OST) - Michael Ho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