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본 깨끗한 땅 정토淨土/현웅스님

2016. 11. 20. 16: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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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본 깨끗한 땅 정토淨土
                  서울 육조사 玄雄스님
-교양마당(3)

 



 

우리들은 날마다 환경 따라 악 선을 만나고 산다.

우리마음이 일고 꺼지는 것 따라 그 대하는 것이 다르다. 

열고 막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그런 곳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속에서나 출가 집안에서 법인 것이다.

어느 때는 열고 어느 때는 닫고 하는 것은 마음에서 온 지혜의 일이다.

사람 본성에서 오는 지혜는 이를 구별하여 잘 쓴다.

 

괴테가 신학에는 독을 바로 알아야 바른 선을 알듯이 불교에도 계율을 두어

악과 선을 가까이, 멀리 또는 놓고 들고를 지혜롭게 하는 것이 계율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눈이다.

보조는 이 글을  처음 공부하는 이가 익히는 초심에 놔두는 것을 보면 선지식의 

밝은 눈이 절로 드러남을  알 수 있다.

 

 善 知 持犯 開遮라 ! 범하고 열고 막으라는 말은 악과 선이 번갈아 가면서

있는 삶 속에 양쪽을 열어 놓고 진리에  싹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그 싫어하는 것이 또 다른 악이 되어

돌아옴을 모르고 살기가 쉽다는 것이다.

선을 먼저 취하여 그 선에 머물면 그 선 또한 얼마 안가 어리석음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남는다. 이 선에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도자는  그 양 쪽을 사이를 지혜로  둘러보고  놔두면  알 수없는 곳에

이르게 된다. 我가 없는 곳입니다.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곳엔 양쪽을 벗어난 지혜와 자비 사랑만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나게 하는 눈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성인들이 만든 종교의 근본 종지는 선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대상인 것이다. 성인들의 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앙은  믿음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엔 이렇게 열고 막는 지혜를 요한다.

믿음만 있고 지혜가 적으면 어리석어지고 믿음이 없고 알기만 하며는 인간은

아만에 젖는다. 불은 법구경에 설하고 있다.

진리는 믿음 속에 알고 아는 것 속에 믿음이 있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벗어난 것입니다.
싫은 마음 좋은 마음이 사람을 구속합니다.

 

진리가 있는 자유를 막는다. 괴텐 그것을 알고 오랜 세월을 지나 그의 구도 과정을

파우스트를 통해 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린 그에게서 동양의 선을 본다. 

 

괴테의 눈은 동양을 향하여 있고 동양의 禪은 서양사람 마음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통 종교는 어느 한 쪽을 취한다. 그러나 지혜가 갖추어진 진리의 눈은  그 둘을

놔두고 넓은 자유의 길로 들게 한다.  그것이 종교에서 종자가 가지고 있는 글의

의미이기도 하다.  진리의 山 마루에 있는 것이 宗 인 것이다.  

 

선악은 마음이 일어난 뒤에 경계를 만나 마음이 만든 것들이다.

괴테는 그걸 미리 아는 서양인 구도자이다.  정성 과 기도가 다 하는 곳에 덮어진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은  마가렛과 심청에서 본다.

그녀들의 기도와 정성이 닿는 곳! 구름 벗어난 푸른 하늘만 있는 곳이다.

이곳은 상대가 없어 다툼이 없고  사랑과 열반이  있는 곳이다.

사랑의 본체는 볼 수가 없지만 그 “무엇의 알 수 없는 힘“만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젊은 시인 파우스트는 여기에 이르기 전 까지는 마왕에게 예속 되어

많은 시련을 맛본다. 그의 생명 바탕에서 온전한 지혜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다.

남들이 싫어하는 악을 택하여 든다. 아니 어쩔 수없이 그런 곳에 스스로를 참여

시켰는지도 모른다.

파우스트가 그 런 곳에 빠져 있는 동안  마가렛은 그녀의 기도 속에서 은밀한 소리를

듣고 곧, 신의 얼굴을 만난다. 이제는 선과 악이 교차하는 어두운 삶은 그녀를 떠난다. 

사랑에 든 여인이 된 것이다.  파우스트 또한 그녀의 이런 사랑이 묻어 있는 발아래 

마왕의 눈을 벗어난다. 이제는 마왕도 괴테를 찾는데 형상이 없는 곳에 있는 파우스트를

보지 못한다.  만날 수가 없는 곳이다.

 

파우스트는 “ 알 수없는 힘” 속에 그의 몸이 든 것이다.  생명만 펄펄 살아  숨 쉬는 곳

진리만 있는 곳! 예수가 말하는 은밀한 곳에 있는 신의 눈! 바로 여기다. 

 마왕과 황제의 회개는  “이 알 수없는 힘” 앞에서 시작된다. 

형상이 없는 진리 속에서는 파우스트가  보이지  않는 곳!.

불교로 보면 번뇌가 소진 되는 곳에 돌아 간 것이다. 귀의불이 이것이다.

 

마왕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끝난 곳, 바로 여기이다.

하늘에 닿아있는 사람 근본 성은  선에 속하지도 않고 악에 속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걸 공자는 천명에 닿아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 닿기만 하면 양면으로부터 자유가 된다. 악과 선으로부터 벗어난다.

 

뉘우침 속에 무거운 짐은 없다. 선악마저 놔지는 곳이니 !

이렇게 본성으로 돌아가 있는 사람은 죄가 없다.  이곳이 부처가 살고 있는 곳이다.

다툼이 없는 곳 ! 그의 눈은 대하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어느 쪽도 버리지 않고

쓰는 진리의 손과 발이 된다.  

 

 6.  혼란을 뚫고 나온 지혜의 눈

 

여기 괴테가 눈 뜬 뒤 짓고 나온 노래가 있다. Salut demeure chaste et pure (청결한집 )

알 수 없는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혼란이 이~ 일 때
나를 관통하여 뚫고 나오는 이 신비는  그 무엇인가!

사랑이 나의 존재를 점령하려고 하네!
오, 마가렛이여!
여기 너의 발아래에 내가 지금 있어요.
이렇게  무릎을 꿇고!

안녕! 처음이다. 순결하고 순수 하여라,  안녕!  순결하고 순수 하여라!
분명하구나, 이런 일이 나에게  오다니
때 묻지 않는 신성한 영혼, 나를 휘 감싸고 있네!
오막살이집 이 작은 몸에 가난한 마음이 드니,  풍요로움만 있네!
진리가 충만한 오막살이 작은 집, 이  몸이 그 집이네!
살아 숨 쉬는 이 행복! 싱싱하네! 얼마나 많은 풍요로움인가,
이 가난한 마음이 든 지금
이 오막살이 작은 집, 몸 안에 행복, 얼마나 많은가를 모른다네!

오! 스스로 존재하는 그대여! 네가 그녀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든 것은
바로 여기구나!  아이가 너의 날개 아래서 잠든 것이 바로 여기로구나!
너의 두 눈 아래서 내가 성장한 것도 바로 여기다.

여기에서 너의 숨결이 그녀의 영혼을 감싸고 있구나,
너는 사랑으로 그 여자를 환하게 만들었다 주변에는 하늘의 천사들이 

둘러 앉아 있고 바로 여기구나! 그렇다, 바로 여기!
C'est l?! oui, c'est l?!
순결하고 순수 하여라, Salut! demeure chaste et pure,

안녕! 순결하고 순수 하여라, 분명하구나!
싱싱하고 살아있는 존재가 숨 쉬고 있는  이곳이구나! 안녕! 순결하고 순수 하여라,
(그가 눈뜨고 난 뒤 짓는 노래이다.)

 

그렇다. 사실 神은 지금 이 순간에 있지만 진리의 체성으로 있는 이름일 뿐!

도 또한 그 작용을 나타낸 이름인 것이다.  道는 내가 알고 모르고 하는 곳에 있지 않다.

그냥  내가 앉고서고 하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멀리하고 있을 뿐이다 .

 

이 세상은 음과 양이 교차 하는 곳에 이 몸을 두고 있다.

어느 쪽으로 집착하는 즉 미혹에 들고 옳고 그름, 나쁘고 좋은 것에 합류하고 만다.

그리고 일고 꺼지는 일만 반복한다.  사람은 이쪽 아니면 저쪽에 들어가 있다.

도를 잃은 탓이다.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있는 진리를 등진다. 

 

마왕은 내가 만든 것 !  만든 자가 사라지면  모든 것은 헛것인 것이다. 
구름 벗어난  푸른 하늘 드러나.  마음이 빈 곳! 마왕은 붙을 곳이 없네! 
온 세상이 밝습니다. 눈에 뵈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진리 아닌 것이 없네!
모든 죄악이 멸해 지니 정토가 드러나고 이 땅이 곧 그 땅이네! 
‘정성이 지극 하는 곳에 하늘 문 열리고 마음에 가린 것 없는 곳!
“가난한 마음“ 속 풍요로움만 있네!

 

신이 천사들을 보내어  내 옆에 두게 한다. 심청이 정성 속에 깃든 것,

마가렛 기도 속 신령스러운 마음이여 ! 미혹의 문 열고나오니 눈만 떠 있네!

성경은 논 두덕 밭 두덕에서 은밀하게 기도하는 자!  신은 응답한다 가 그 것이다.

정성이 다한 곳에 탐 진치가 녹아져 빈집 되고 오관 육근 뿌리 비어 마음만  드러났네!

바람 불고  새소리 있는 곳 시냇물 소리 또한  도 아닌 것이 없어  청정하고 순결한 눈, 

만상에 살아  숨을 쉬네! 이를 예수의 십자가 저 넘어서 본다.

 

그의 눈이 진리, 곧 신에 닿아있을 때 십자가에서 온 고통 놔 둘 수 있었고 그의 마음

가난 속에  들어 몸만 십자가 틀에 사랑과 용서로 남는다.

육신의 고통 놔져 버려 진리의 빛 되었네. 우리들은 그의 죽음을 종교 속에서

왜곡하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