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경록 / 영명영수선사

2016. 12. 18. 22:2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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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열 가지 기준과 뿔 달린 호랑이(戴角虎)


 

20161215일은 아미타부처님 성탄절입니다.

정토종淨宗 6조이자 법안종(禪宗)의 조사이신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님의 탄신일을

기념해서 정한 재일입니다. 중국 불교에서는 선도 대사님과 함께 영명연수 대사님을

아미타부처님의 화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뿔 달린 호랑이' 영명연수 선사의 삶과 가르침

 

영명(永明: 904~975) 선사는 중국 북송시대의 선승입니다.

법명은 연수(延壽)이고 호는 포()이며 영명사(永明寺)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세상에서 영명선사라 일컬었습니다.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어느 고을의 태수로 있었는데, 한재를 만나 가을이 되었어도 거둘 곡식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 태수는 정부에 보고하여 결재를 받기 전에 창고를 열고 비상용의 곡식을 풀어 백성을 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간신이 있어 조정의 허가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관곡을 소모한 것은 반드시 그 이면에 부정한 지출이 잠재할 것이며 공용을 빙자하여 사용하였다.’는 거짓 상소로 사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형을 집행하는 날 칼날이 목에 대이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집행관이 생각하기를 저런 사람을 벌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하고 다시 상소를 해서 죄를 사하고 출가를 허락하게 된 것이 영명연수선사의 출가의 동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취암 영명(翠巖永明)을 섬기며 온갖 대중 시봉을 갖추어 받들었고, 그 후 천태산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지낼 적에는 날짐승이 머리에 앉고 옷소매에 둥지를 쳤다고 합니다. 지자암(智者岩)에 올라가 두개의 제비뽑기(선정수행 또는 정토수행)를 만들어

 

하루는 일심으로 선정을 익히고

하루는 만행(萬行)으로 정토(淨土)를 닦으면서

지심으로 기도하여 일곱 번을 뽑아

모두 정토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정토(淨土)를 닦게 된 것입니다.

 

(원각경에서 부처님도 이런 제비를 뽑아 수행방법을 정하는 걸 일러주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명주 자성사(資聖寺)에 있다가 영은산을 거쳐서 혜일산 영명사에 있었는데,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영명사에서 15년 동안 있는 사이에 제자 1,700인을 제도하였고, 천태산에 들어가서는 1만 명에게 계()를 주었습니다.

 

평생염불을 하며 정토왕생을 원하였고, 저녁에는 별봉(別峰)에 가서 행도염불(行道念佛) 할 적에는 옆의 사람들이 하늘 음악[天樂]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귀신에게 시식하고 방생하기를 말할 수 없이 많이 하였고 40만 본의 미타탑(彌陀塔)을 찍어서 보시하며, 또 승속에 염불을 권장하여 정토종을 널리 퍼뜨리는데 전력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미륵보살이 화생하였다고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매일 108가지의 일과 조목을 정하여 지키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염불만도 10만 번씩이었다고 합니다. 생전에는 법화경13천 번 외웠고, 특히 법화경을 들에서 암송하면 양떼가 감응하여 엎드려 들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국청사에서 참회법을 닦고 있을 때, 밤 중에 절을 돌아보다가 보현보살상 앞에 공양한 연꽃이 홀연히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 일생동안 꽃을 뿌리는 공양을 하였고 또 관음보살이 감로수를 입에 부어주는 감응을 받고 설법하는 재주를 얻게 되어 종경록100권을 저술하였다고 합니다.

 

선사가 돌아가신 뒤 무주의 어떤 스님이 여러 해 동안 영명스님의 탑을 돌았는데 누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병을 앓다가 명부에 들어갔더니 전각 왼쪽에 어떤 스님의 탱화가 있는데, 염라대왕이 무수히 예배하는 것을 보고 물었더니, 맡아보는 관리가 말하기를, ‘그는 영명선사인데 염불을 잘 수행하여 지금은 극락세계에서 상품상생하여 계시오.’ 라고.......”

 



영명 연수선사는 팔만대장경을 요약했다는 종경록100, 만선동귀집6, 유심결1권 등 60여 부 외에도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종경록에 대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원우 연간에 보각 조심선사는 그때 이미 나이가 많았으나 손에서 이 책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이 책을 늦게야 보게 된 것이 한스럽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글과 노력으로는 미칠 수 없는 이치가 그 속에 다 모여 있다.”

 

그리고는 그 요점만을 골라서 세 권의 책으로 만들어 명추회요라고 이름 지으니 세상에 널리 퍼졌습니다. (<종경록>의 핵심을 담은 <명추회요>는 성철스님이 평생 애송하여 <마음을 바로 봅시다>(상하 권)란 제목으로 번역한 바 있습니다.)

 

선사는 염불도 열심히 하였지만 선의 깊은 도리를 깨달은 대 선사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선사들과는 달리 드넓게 신자들을 자비로 접하고 부처님의 모든 법을 고루 행하였습니다. 율사로서 계율도 설하고, 선사로써 선의 도리도 펴며, 신자들도 접하는 대자대비행을 평생 했다고 합니다. 항상 옆에 따르는 제자들이 2~3천명이었으며 법회 때마다 10,000명의 도속들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영명연수선사는 앞서 얘기했듯 매일 자신이 행해야할 선행 108가지 수칙을 정해 놓고 빠짐없이 평생 실천을 했다고도 합니다.

영명연수선사가 치문경훈에서 말씀해주신 내용을 적어봅니다.

 

 

예불이란 부처님의 공덕을 공경하는 것이요

염불하는 것은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

계율을 지키는 것은 부처님의 행위를 따라 행하는 것

경전공부는 부처님의 이치를 밝힘이요

좌선은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함

참선은 부처님의 마음에 합일하는 것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부처님의 도를 체득하는 것

설법은 부처님의 바람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본래 청정한 마음에는 하나의 번뇌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문 가운데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여덟 가지 일은 사방사우(동서남북과 그 네모퉁이)와 같아서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다면 옳지 않다.

모든 성인의 그 법규는 하나라 6바라밀을 또한 겸해서 수행할지니, 육조대사가 말씀하시되 공이라 집착하는 사람은 한 모퉁이에 막혀 있어서 경전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말하나니 스스로 어리석게 되는 것은 오히려 그럴 수 있거니와 불경을 비방함이 되는 것이니 죄장이 깊어지는 것이다. 삼가 조심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아미타불의 후신(後身)으로 불리우기도 한 선사는 종경록에서 깨달음의 열 가지 기준을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1. 완벽하게 견성해서 마치 대낮에 물건을 보듯,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는가.

 

2. 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대처하며, 색깔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발을 들어 올리고 놓으며, 눈을 뜨거나 감는 것이 모두 밝고 뛰어나 도()와 상응하는가.

 

3.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들의 말을 깊이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들을 모두 살펴도 의심스런 곳이 없는가.

 

4. 온갖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따진 뒤 능히 네 가지 변재(辯才)를 갖추어 모든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가.

 

5. 언제 어디서든 지혜가 막힘없이 드러나 생각 생각마다 깨어 있어 어떤 법에도 방해받지 않고 한순간에도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6. 일체의 순경계(順境界)와 역경계(逆境界), 좋은 경계 나쁜 경계가 나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알아 차려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가.

 

7. 온갖 밝은 법문이 마음에 있으니 하나하나의 미세함을 보아본체가 일어나는 곳을 알며 생사의 뿌리에 어지럽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가.

 

8. 일상의 행주좌와(行住坐臥) , 공경히 마주 대하고 있을 때, 옷 입고 밥 먹을 때, 일을 맡아 처리 할 때에도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가.

 

9. 부처가 있다 없다, 중생이 있다 없다, 칭찬이나 비방, 옳다 그르다 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10. 온갖 지혜에 대하여 모두 밝게 통하여, ()과 상()이 모두 통해 이()와 사()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떤 법도 그 근원을 알 수 있으며, 세상에 온 어떤 성인의 말에도 의문이 없을 수 있는가.

 

또한 연수선사가 남겨주신 유명한 사료간이 있습니다.

 

참선수행도 하고 염불수행도 하면

마치 뿔 달린 호랑이 같아

현세에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장래에 부처나 조사가 될 것이다.

 

참선수행은 없더라도 염불수행만 있으면

만 사람이 닦아 만 사람이 모두 가나니

단지 가서 아미타불을 뵙기만 한다면

어찌 깨닫지 못할까 근심 걱정 하리오.

 

참선수행만 있고 염불수행이 없으면

열 사람 중 아홉은 길에서 자빠지나니

저승 경지가 눈앞에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 그만 휩쓸려 가버리리.

 

참선수행도 없고 염불수행도 없으면

쇠 침대 위에서 구리 기둥 껴안는 격이니

억 만겁이 지나고 천만 생을 거치도록

믿고 의지할 사람 몸 하나 얻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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