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라|마음공부 생활수행

2017. 1. 8. 11:4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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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라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가.

어제나 그제, 혹은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이만큼의 세월 동안
내가 살아왔던 모습으로써 오늘을 똑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일은, 아니 조금 전의 일까지라도 모두 비워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써 세상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나 자신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
그건 정말이지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보라.
이 세상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야생적이며 자연적인 것들에게서는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다.
진리와 합일하여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서
똑같은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인간들만이 획일화되고 똑같은 것들을
다량으로 만들어 내고 키워내고자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더라도 똑같은 것은 아니다.
겉모습이 똑같다고 그 내면도 똑같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은 욕심일 뿐.

똑같이 교육받는다고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부모 아래서 키워졌다고 똑같은 성격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세상을 보는 눈이 똑같을 수도 없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똑같이 획일화된 모습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는 것은 진리를 거스르는 일일 뿐이다.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꽃밭에 나아가 꽃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같은 꽃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산에 가 나무들을 살펴보더라도
똑같은 모습의 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똑같은 소나무며 참나무일지라도
똑같은 산에서 똑같은 기후조건 아래에서 자라더라도
똑같은 모습은 있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똑같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전 인류의 시공을 통털어
똑같은 모습과 삶 생각을 가지고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어제의 하늘은 어제의 하늘일 뿐
오늘의 하늘은 전혀 다른 별개의 하늘일 뿐이다.
어제의 나무며 들꽃들과
오늘의 나무며 들꽃은 서로 같지 않다.

전혀 새로운 오늘이 있다.
전혀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
날마다, 아니 매 순간 순간 전혀 새로운 찰나찰나가 있을 뿐.

그것이 이 세상의 본래적인 모습이다.
진리의 본연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되어 흐르고
진리의 모습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매 순간 순간을 전혀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이들의 세상을 보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어제의 관념으로 오늘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제의 편견을 오늘까지 가져오지 말라.
어제의 선입견은 그저 어제의 것으로 놓아버려라.

세상을 보는 가장 밝은 시선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즉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견에 있다.

정견이란 곧
편견이나 선입견이 개입되지 않은
맑고 투명한 시선, 투명한 바라봄을 말한다.

즉 어제의 관념으로 오늘을 보는 것이 아닌,
지나간 과거에 만들어진 선입견으로 지금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듯
전혀 새로운 텅 빈 시선으로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미 지나간 어제는 어제로써 내버려 두라.
오늘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오늘이 있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온갖 선입견이며 편견들,
세상을 바라보는 온갖 걸러진 시선들을 놓아버리라.
투명한 시선을 가로막는
온갖 색안경들을 다 벗어던지라.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 조차 다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배워온 것, 경험해 온 것, 스스로 깨달았던 것들까지
과거의 것들은 다 놓아버리고
완전히 치우치지 않은, 걸러지지 않은
새로운 시선으로 '지금 이 순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을 바라볼 때, 배울 때,
혹은 진리를 공부할 때나 스님들의 법문을 들을 때,
과거에 배워왔고 익혀왔던 그 것들을 가지고 듣고자 한다면
점점 더 진리와는 멀어져 가게 될 것이다.

참으로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참되게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다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 처럼 보아야 하고,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처럼 배워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법문을 들을 때도
혹은 책을 읽을 때도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편견으로써 걸러 보며,
자신의 견해와 합당하는 것들만을 받아들이곤 한다.

그렇기에 똑같이 책을 읽거나 법문을 들었어도
사람들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들을
마음에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뜻에 맞는 글귀나 말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는
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수없는 법문을 듣더라도
참되게 읽은것도 들은 것도 아니며,
전혀 참과 가까와질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은 전혀 새로운 곳이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보여지는
일체 모든 대상들은 내가 처음 보는 것들일 뿐이다.

눈이 내려도 항상 첫 눈이며,
사랑도 항상 첫 사랑일 뿐이고,
바람이 불더라도 항상 새로운 바람일 뿐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
가까운 숲 길을 거닐어 보라.

늘상 행하던 일이라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그 일을 시작해 보라.
어린 아이가 되어 숲 길을 거닐어 보라.
처음 보는 듯 피어나는 봄 꽃을 바라보라.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이,
마음에 욕심이나 번뇌도 없이,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다만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라.
평소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깊이 바라보라.

그러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전혀 새로운 진리에 눈을 뜨게 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때
매 순간 순간은 기적과도 같은 진리의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