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25. 22:1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산 채로 죽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그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그 무엇도 흔적을 남길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오고 가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말이 없고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온갖 것을 느끼지만 느낌이 없고
온갖 소리가 일어나지만 소리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즉 살아있는 채로 죽었습니다.
여기서는 깨달은 사람이라도 숨을 쉴 수 없으니
깨닫지 못한 사람조차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 묻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존재감을 제거해 버리며,
움직임 그대로 정적입니다.
이것은 지금 말하는 이 말조차 말이 되지 않고,
이해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살아있는 채로 죽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죽음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조물주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단박 죽고 단박 자취를 감추어버립니다.
아니 본래 죽었고 자취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지에 올라서야 그러한 것도 아닙니다.
깊은 탐구를 통해서 이것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능력을 얻어야 이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본래 그렇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고, 움직임, 사고, 정신적 물질적 관여 없이
본래 그렇습니다. 본래 죽었고,
본래 아무것도 없으며, 본래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며,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움직임의 반대가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있으되 죽었으며,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다 있으되 아무것도 없으며,
온갖 생동하고 움직이는 가운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본래 이렇습니다.
언제나 이랬습니다. 앞으로도 이럴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렇습니다.
지금 눈앞에 환한 빛이 들어오고, 가깝고 먼 곳에서 사람의 소리,
물건이 굴러가는 소음,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글자를 따라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을 따라 갖가지 이해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하나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텅 빈 이것이 드러난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것들입니다.
드러나는 것들은 무상하여 수시로 나고 사라지지만
본래 텅빔은 늘 한결같습니다. 비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살아있지만 죽었습니다.
바로 지금 아무것도 그것이랄 게 없어서
죽었지만 모든 것이 찬란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 릴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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