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괴로움이란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괴로움’ 그 자체에 어떤 실체적인 관념과 느낌들을 개입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괴로움이란 느낌에 노예가 되어 버리지요. 괴로움이란 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수행자들의 소중한 일상이 아닌가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지금 내 마음 속에서 느끼는 괴로움은 ‘지금’ 괴로운 것은 아닐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즉, 마음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여 괴롭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얽매이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과거에 이미 지난 일은 지금 이 순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이미 지금의 나가 아니고 과거 나의 행동, 말, 생각등 그 많은 업장이라도 지금까지 나의 것으로 묶어 두어서는 안됩니다. 과거에 지은 죄나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마음 현실까지 가져와 얽매이지 말고 현재심에 떠오른 순간 그 마음 놓아버리면 그만이라 합니다.
본래로 죄에는 자성이 없기에 마음 따라 일어난 것이지 그 속에 어떤 ‘죄’란 고정된 관념이 본래부터 있던 것은 아닙니다.(죄무자성종심기) 그렇기에 마음 속에서 죄의식이란 그 마음이 멸하면 이미 ‘죄’ 또한 멸하는 것입니다.(심약멸시죄역망) ‘죄’나 ‘마음’이란 본래로 공한 이치를 깨달아 알면(죄망심멸양구공) 그것이 바로 진실된 참회라 천수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시즉명위진참회)
과거에 얽매이는 마음은 이처럼 ‘참회’ 수행으로 녹이면 그만이지 현실까지 끌고와 얽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우리들 대부분은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어찌될까… 얽매이고 있습니다. 미래에 얽매이는 마음 때문에 현실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계획일 있다면 고민하고 머리 굴려 분별심을 증장시킬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마음 바쳐 소중한 ‘서원’을 세우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성공이란 말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집착할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3 수험생에게 있어 목표는 ‘현실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되어야지 고정지어 ‘서울대’ 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행복, 성공이란 것은 고정되게 ‘서울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가도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못 되는 사람이 있고 다른 대학을 가도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못 되는 사람이 있으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못 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이러저러하게 되어야지’ 하고 고정되게 계획을 잡아 두기 때문에 그 계획이 무산되어 갈 때 괴로워하고 현실을 그르치게 됩니다.
목표는 ‘서울대’ ‘대기업’ ‘사법고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에 올곧이 깨어 있고 집중하여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미래 준비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한 ‘괴로움’의 실체는 어리석게도 과거나 미래로 마음을 흘려 보내기에 일어나는 하등에 쓸모없는 ‘괴로움’, 괴로워 하지 않아도 될 괴로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직 현실에 충실하면 괴로움은 많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즉 과거 미래심만 실체가 없기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현재심 조차 불가득이라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설법중에 한 법우님께 “설법하는데 그렇게 졸고 있으면 어떻합니까” 하고 제법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이고 인상을 써서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순간 그 법우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조금 전 했던 말을 듣고 마음이 어땠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눈치를 채고는 그제서야 환희 웃으며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좋습니다.” 하더군요…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란… 순간 순간 상황따라 조건따라… 잠시 마음이 괴로웠다가 또 그 상황이 바뀌면 금새 마음이 즐거워 지기도 합니다. 그렇듯 현실의 마음은 잠시 인연따라 행복하고 인연따라 괴로운 것이지 언제까지고 고정되게 괴로운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현재심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 불가득인 것입니다.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어디에서 ‘괴로운 마음’의 실체를 찾으실 건가요… 이 세상 어디에도, 이 마음 어느 곳에도 그 고정된 실체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인연따라 잠시 왔다 가는 상황 상황의 연장인 인생… 그 인연 인연들을 모두 실재시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어서 그 인연과 인과를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과거심이든 미래심이든 현재심이든 그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은 오직 ‘현재’ 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심을 잘 다스린다면 ‘괴로움이란 어디에도 없는 관념의 틀’에서 사뭇 쉽게 벗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를 다스리는 힘이 바로 ‘관’ 수행입니다. 가만히 마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마음이 일어남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관찰하는 순간이 이미 놓여지는 순간임을… 그 순간이 지고히도 순수한 텅 비어지는 순간임을…
[망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라.] [망상이 일어나면 알아채라. 알아채면 없느니라’] 고 하신 지눌 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그 관 수행을 쉽게 풀어 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구나.. 겠지.. 감사..’ 수행인 것입니다. 마음 알기, 구나 - 관 수행 마음 다루기, 마음 돌리기, 겠지 - 정사유 수행 마음 나누기, 감사 - 긍정 명상, 회향 수행
그렇기에 우리 ‘사이버 수행결사’의 첫 번째 수행문이 ‘구나.. 겠지.. 감사..’ 가 된 것입니다.
바른 신심 굳게 세워 몸은 생활 속에 있지만 마음은 출가 수행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심출가가 진정한 출가인 것입니다.
이렇게 ‘선재결사’에 동참하신 모든 법우님은 수행자이기에 어디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참으로 당당한 법입니다. 더욱 정진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