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린다왕은 나아가세나 스님께 물었다. 「스님은 모든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작은 씨알 하나를 땅에 심는다고 합시다. 그 씨알은 싹이 터서 점차로 성장하고 무성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다시) 씨앗을 받아 땅에 심으면 또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 종자(種子)의 연속에 끝이 있습니까?」 「스님이여! 끝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간의 근원적 시간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닭이 생기고 또 그 닭에서 알이 생겨납니다. 이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끝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그때 스님은 땅 위에 원을 그리고 왕에게 물었다. 「이 원의 둘레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생성(生成)의 변화과정은 비물질(非物質)이 물질(物質)로, 물질이 비물질로 반복 순환됨에 있어서 시간의 근원(根源)과 시작과 끝은 없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삼세(三世)라고 한다. 삼세를 통하여 짧은 시간과 긴 시간이 있다. 짧은 시간은 찰나(刹那: 10분의 1초)라 하고 긴 시간을 겁(劫)이라 한다. 흐르지 않는 본체의 시간 속에 들어가면, 즉 열반(涅槃: Nirvana)하면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이 없는 것이다. 길고 짧음은 우리의 인식작용에 의한 것뿐이며 공간의 넓고 좁음도 인식작용에 의한 것이지 길고 짧고, 넓고 좁은 것이 인식작용을 떠나면 이러한 주. 객관적인 대상은 없어질 것이다. 법성게(法性偈)에서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헤아릴 수 없이 멀고 아득한 시간도 한 생각에서 나오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한 생각은 곧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이라 했다. 그래서 우주(宇宙 = 宇宙時間)도 〈한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광속(光速)을 절대속도라 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마음을 떠난 절대는 없는> 것이다. 빛이 1초에 30만km를 달린다면 2초에는 60만km, 3초에는 90만km를 달리니, 이것도 역시 시간에 대한 상대(相對)요, 대기의 상태 또는 물체의 장벽에 있어 투과치 못함은 역시 공간의 상대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시간과 공간에 절대적인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이 글을 생각할 것이다. 다음은 제일 멀리 여행하였던 곳을 생각하여 보자. 경주, 부산, 제주도 더 나아가서는 일본이나 구라파, 인도, 미국, 소련 등지를 생각할 때 이곳과 가장 먼 거리의 고장 중 어느 편이 먼저 생각나겠는가? 그 생각(기억)은 몇 년 전 혹은 몇 십 년 전이라도 똑같이 날 것이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다. 절대(絶對)라는 것은 대상이 없는 상대(相對)가 끊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절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것은 오직 <한마음 깨달은 부처>뿐이 없는 것이다. 미린다왕문경의 내용을 읽어보자. 미린다왕은 나아가세나 스님께 물었다. 「스님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죽어 범천계(梵天界)에 태어나는 사람과 여기서 죽어 <카슈미르>에 태어나는 사람과는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합니까?」 「둘 다 동시에 도착합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은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습니까?」 「칼라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칼라시는 여기서 얼마나 됩니까?」 「약 2백 요오나자입니다.」 「카슈미르는 여기서 얼마나 됩니까?」 「12요오나자입니다.」 「대왕이여, 자! 칼라시를 생각하십시오.」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빨리 생각되었습니까?」 「어느 쪽이나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기서 죽어 범천(梵天)에 태어나는 것이나, 여기서 죽어 카슈미르에 태어나는 것이나 동시입니다. 빠르거나 늦은 것은 없습니다. 두 마리 새가 공중을 날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높은 나무에 다른 한 마리는 낮은 나무에 앉았다고 합시다. 어느 쪽의 그림자가 먼저 땅에 비치겠습니까?」 「두 마리 그림자가 동시에 비칩니다.」 「대왕이여! 대왕께서 말한 경우도 꼭 이와 같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스님이여!」… 이상과 같이 마음은 시간과 공간과 거리를 초월하여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을 떠난 모든 개체나 물질(色)이나 비물질(空)은 대상이 있으며 상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조물주(造物主)가 있다면 조물주 이전의 시간은 어떠한 시간이었겠으며 조물주 이전에는 누가 있었겠는가? 또한 조물주는 누가 만들었나? 조물주가 혼자 본래 스스로 있었다면 이것은 자연이다. 조물주가 있다면 어느 공간에 있겠는가? 조물주니 신이니 하는 따위는 마음의 장난이며 인간의 마음이 어두운(無明)탓에 집착으로 마음이 짓는 환영(幻影)이나 사상(思像)인 것이다. 신은 마음이 만들었고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의식작용을 지배하며,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하느님이니 천신이니 조물주니 하는 것은 마음의 무명(無明)에서 오는 집착된 생각의 사상(思像)인 것이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시간과 공간을 함용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하며 모든 신(神)을 만들어내는 원천인 것이다. 다음으로 고대 인도사상과 불교사상을 살펴보면서 불교생명관(生命觀)의 실체를 밝혀보자. |